독서노트/<박민규>

<아침의 문>

묭롶 2010. 2. 1. 11:19

 

  매년 이맘때면 기다려지는 책이 있다.  바쁜 일상속에서 잊고 지내다 무심코 들린 인터넷 서점에서 어느날인가 당해년도의 <이상문학상>을 발견하는 순간의 기쁨과 이 책을 주문해서 받고 읽으면서 느끼는 기쁨은 매년 이때쯤이면 내가 누리는 호사 가운데 하나이다.

  중학교 시절 수업시간에 교과서 밑에 '이상'의 '날개'를 숨기고 몰래 읽으며 막연하게

문학이란 사람이 눈을 뜨고도 꿈 꿀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나를 문학에 눈뜨게 한 계기가 되었던 '이상(李箱)'은  이후로도 내 문학의 '이상(理想)'이자 이정표가 되었다.  그래서 나에게 이 책은 내가 걸어가야 할 방향을 지시해주는 길라잡이이자 교과서와도 같다.  매년 수상작가의 작품을 읽고 그 작품이 수상을 하게 된 수상평을 읽으며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문학이 갖춰야 할 기준을 정해진 틀이 아닌 유연한 틀 속에서 찾아나가는 수상작 선정기준에서 이 문학상이 갖는 의의를 되새겨 보게 된다.  아마도 '이상'의 작품세계가 그러했듯 이 작품상의 수상작 선정기준이 이 세상에 들이대는 다양한 뷰와 파인더가 이 작품을 유례없이 베스트셀러에 계속 올려놓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올해 이 책을 받아든 나의 기쁨은 더욱 컸다.  오랜만에 배수아의 작품을 읽게 된 기쁨도 컸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바로 박민규작가의 수상소식이었다. 

언제나 박민규작가의 문체를 읽게 되면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  그 시원함 끝에 왠지 모를 서글픔이 느껴져 눈물이 맺힐 때도 있었다.  그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피해가는(금기시하는) 것들을 비껴가는 법이 없다.  그 어두운 덩어리들을 끌어내 우리 눈 앞에 내밀지만, 그것들은(박민규의 문체) 혐오보다는 낯설음과 생경스러움을 불러 일으킨다.  흡사 아무 기대감없이 화장실에 갔는데 아주 엄청나게 굵은 똥을 쑥 뽑아내고는 정말 저 똥이 내 몸속에 들어있었던것인가?라며 신기하게 쳐다보는 것처럼, 통쾌하고 시원하지만 왠지 낯선 경험들을 선사하는 것이다. 

<아침의 문>은 生과死를 하나의 고리로 엮어 그 원형의 문을 들어가려는 자와 나오려는 자의 대비를 통해 우리에게 삶이 갖는 의미를 자문하게 한다. 

 

~얼굴만 한 크기의 원을 나는 바라보고 있다.  ~이제 곧 또 다른 세상을 보게 되리라 스스로를 다독인다.(P26)

~붉게 부푼 타원형의 문이 열리고, 입구는 곧 거의 완벽한 원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손을 뻗어 지금 막 머리를 내민 무언가를 그녀는 만져본다. (P32)

~그렇게 서로를 대면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왜? 라는 물음을 가슴 속에 울리며 그는 여전히 의자 위에 서 있다. 

그리고 보았다.  스르르, 끝끝내 문을 열고 나오는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아주 작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멀리서도 볼 수 있었다.

~ 인간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엎질러지는 거란 사실을 (P33)

 

살아있으되 삶의 의미를 갖지 못한 채 죽으려는 자와 탄생을 원치 않음에도 태어나는 한 생명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아니 살아왔던 인생 전체와 살아야할 인생까지를 고심하게 한다.

또한 갈수록 서로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괴물'이 되어가는 세태 속에서 '가족', '인간', '사랑', '삶'이 정녕 올바른 모습은 무엇이었나...또 어떻게 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되묻게 한다.

 

~가족 때문이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녀의 부모에 대해 설명하기란 쉽지가 않다. 

 너그러우면서도 무자비한 존재... 간섭이 지독하나 실은 딸에 대해 무엇 하나 아는 게 없는 인간들이었다. 

한집에 살면서 서로 괴물이라 부르긴 좀 그렇잖아?  그래서 만들어낸 단어가 가족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p22)

 

결코 쉽지않은 주제인 삶과 죽음을 통해 동 시대를 살아가는 아니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들의 아픔을 문체 속에 담아낼 수 있었던 작가의 역량에 감탄하게 된다.   매 작품마다 인생의 어두운 밑바닥에 눌린 바퀴벌레와도 같은 인간의 삶을 미사여구없이 직설적으로 드러내면서도 그 삶 하나하나의 의미를 조망하고 따사롭게 긍정의 힘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노력이 이번 수상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그는 아이를 내려다본다.  아이가 운다.  울고, 숨을 쉰다.

~그의 품에서 아이는 울다, 훌쩍인다.  바닥의 콘크리트보다도 무뚝뚝한 인간이지만,

적어도 콘크리트보다는 따뜻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P36) 

 

언제나 인생의 빛무리 속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 그 반대편인 어둠에 속한 사람들에게 시선이 향해 있는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까닭도 아마 같은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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