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묭롶 2010. 1. 25. 19:44

 

 <삼미슈퍼스타스의 마지막 팬클럽>, <핑퐁>, <카스테라>, 이상문학상 수상작 <龍龍龍龍> 등 내가 읽은 그의 작품들은 모두 새로운 시도, 새로운 문체, 새로운 소재 들의

집합체였다.  또 그렇게 평가받아왔다.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력'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던 그의 새 작품을 난 출판된지 조금 지나서야 접하게 되었다.

 

20살: 누구도 쉽게 규정지을 수 없고, 자기자신마저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함이 스무살 속엔 온통 뒤범벅되어 있다.  십 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언가를 결정짓기에는 혼란스러움이 앞서는 이 나이의 청춘들의 삶이 작품 속에 자주 머뭇거리는 행갈이 문체로 표현되어 있다.  그 머뭇거림을 표현하는 듯한 줄바꿈과 쉼표들은 연속된 시간의 삶을 앞에 두고 발자욱을 쉽게 디딜 수 없는 스무살의 삶과 절묘하게 일치하는 이중주와도 같다. 

 '죽은 왕녀': 이 작품에서 '죽은 왕녀'는 중층적인 의미를 지닌다.  결국 그 중층적 의미로 인해 작품의 끝까지 읽어나가던 독자는 몇 번의 반전을 맞이하게도 된다.  이 작품은 그 자체로 '죽은 왕녀(평생을 끊임없이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를 위한 '파반느'이자, 작중 인물이 '죽은 왕녀(요한, 그녀)'를 위한 '파반느'이기도 하며,  요한의 소설 속에서 '죽은 왕녀(그)'를 위한 '파반느'이기도 하다. 

 

'요한': 유일하게 이름으로 불려지는 남자, 그와 그녀보다 나이가 많은 것으로 설정된 인물이자 삶의 밑바닥을 경험해버린 남자, 그만이 이름을 갖는 이유와 그 이름이 갖는 의미를 짐작해볼 수 있다. 

작중 '그'에게 인생사의 여러 면을 이야기해주는 '요한'의 모습에서 일견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난 후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며 갖은 악마의 유혹을 물리쳤다는 성서 속 이야기를 연상하게 된다. 

 

우리는 어린시절부터 누가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美는 善이요, 醜(추)는 嫌(혐)이라는 고정관념을 머릿 속 깊이 각인시킨 채 살아왔다.  동화책에서도 언제나 왕자의 사랑을 얻어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되는 인물은 착하고 예쁜(신데렐라, 콩쥐)주인공이고, 그 주인공을 괴롭히는 인물들은 언제나 못생기고 성격나쁜 인물(뺑덕어멈, 신데렐라의 못생긴 언니들)들이었다.

그렇게 아름다움이 곧 선함이라고 받아들인 아이들은 그 선한 인물들을 방해하는 못생긴 반동인물들을  혐오하고 미워하는 감정을 자신도 모르는 새 키우게 된다.  어릴 때부터 각인된 고정관념은 커서도 인물의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게 만드는데, 뚱뚱함(비만)은 게으름의 상징이요,가난 역시 게으른 탓이라 판단하고, 특히  못생긴 것은 '죄'(특히 여자의 못생김)라는 생각까지 하기에 이른다.  한 사람을 구성하는 전부 중 외모는 극히 일부분일 뿐이지만, 그 외모를 이유로 '자신'이라는 존재마저 혐기忌 당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무수히 많다.

박 민규는 자기자신에게 죽을때까지 만족하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고 타인을 동경하며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며 자신보다 못한 자들을 미워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작중 인물 요한을 통해 고발한다.

 

~그건 단순한 불빛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들의 무수한 사랑이 여름날의 반딧불처럼 모이고 모여든 거야. 

 ~그것이 스스로의 빛인 줄 알고 착각에 빠지는 거지.  ~자신의 삶에서 사랑받지 못한다면 그 어떤 미인도 불 꺼진

전구와 같은 거지.  ~인간은 참 우매해.  그 빛이 실은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걸 모르니까. 

~자신의 에너지를 몽땅 던져주고 자신은 줄곧 어둠 속에 묻혀 있지. 

어둠 속에서 그들을 부러워하고... 또 자신의 주변은 어두우니까... 그들에게 몰표를 던져.  

~자신의 빛은... 그리고 서로의 빛을 믿지 않기 때문이지, 기대하지 않고... 서로를 발견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야. 

세상의 어둠은 결국 그런 서로서로의 어둠에서 시작돼.  p186(요한)

 

자신의 평범한 외모를 자신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며 그들을 미워하면서 또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하며 동경하는 보통인물들의 삶은 결국 자아없는 텅빈 알맹이와도 같다는 '요한'의 말을 우리중 누구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요한은 말한다, 세상을 어둠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결국 우리들이라고, 자기자신이 스스로 빛을 낼 생각을 하지 않고 끊임없이 누군가를 부러워하며 자신의 빛을 동경의 대상에게 집중하기 때문에 우린 행복해 질 수 없는 것이라고....,

 

~이상하네요?  아니, 당연한 거야.  인간은 대부분 자기(自己)와, 자신(自身)일 뿐이니까. 

그래서 이익과 건강이 최고인 거야.  하지만 좀처럼 자아(自我)는 가지려 들지 않아. 

그렇게 견고한 자기, 자신을 가지고서도 늘 남과 비교를 하는 이유는 자아가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끝없이 가지려 드는 거야.  ~그래서 끝끝내 행복할 수 없는 거지.  p156(요한)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 내가 볼 땐 그래.  진짜 미녀라고 할 만한 여자도,

진짜 추녀라 불릴 만한 여자도 실은 1%야.  나머진 모두 평범한 여자들이지.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결국 그게 평범한 여자들의 삶인 거야.  남자도 마찬가지야.  p173~174(요한)

 

 1%가 99%를 지배하는 구조가 지속되는 이유:~이 세상은 뭐든 가질 수 있다,

뭐든 선택할 수 있다는 환상을 끊임없이 심어줘.  그래야만 끝없이 부러워하고,

끝없이 일하는 99%의 인간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 p173(요한)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스무살 남자의 이야기이자 성냥팔이 소녀가 켰던 성냥불처럼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났던 한 때를 그린 동화책과도 같다.

 

~사랑은 상상력이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 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 가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지.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어, 대신 완저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었지.  p228 (요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예쁘고 멋진 공주와 왕자만이 동화책(인생)의 주인공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사랑받았던 기억이 있는 한 우리 모두는 자신의 인생에서 저마다의 주인공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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