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자료/소설습작(에헤라디여!)

백화주막(1)

묭롶 2009. 7. 23. 14:38

  유리로 된 출입문은 안과 밖의 온도차를 드러내 듯 습기막에 둘러싸여있다.  잠깐 손길만 스쳐도 금새 주루룩 물방울로 흘러내릴 것 같은 습기는 오가는 손길에 지워진 부분을  부질없이 메워간다.  다른 온도와의 접촉으로 물방울이 맺혀 흐르는 유리창은 창 문에 부딪히던 빗방울과도 흡사하다.  바깥의 열기와는 다르게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을 정도로 에어콘이 돌아가고 있지만 국밥을 들이키는 사람들의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국밥의 온기가 남아 있는 동안에는 결코 마르지 않을 것 같은 땀방울을 보며 나는 산다는 것도 저렇게 매달린 땀방울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삶이라는 온기가 유지되는 동안 삶의 고통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어느날 몸이 식는 그날까지 사람들은 삶이 주는 열기 속에 굵은 땀방울을 매달고 살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점심장사를 하다말고 잡생각에 빠져있는 날 의식하는 순간 헛웃음이 나온다.  술장사를 거쳐 밥장사를 하더니 조금 있으면 철학원을 하겠구나 싶은게 예년보다 훨씬 준 머리카락 사이로 헛바람이 들락거린 탓인지도 모르겠다.

  

  2시가 넘어 늦은 점심을 혼자서 뚝배기에 국물 한점 남기지 않고 들이킨 택배기사를 마지막으로  점심장사가 끝난 후, 열기로 한증막 같은 주방에서 주방이모가 얼굴이며 팔이 온통  팥죽 같은 땀에 범벅이 되서는 비빔밥이 든 커다란 양푼을 들고 나왔다.  얼른 뛰어가서 자동으로 움직이는 에어콘 바람을 이모에게 고정시키고 벽걸이용 선풍기 바람을 쏘이고 얼음물을 두 컵 들이밀고서야 '휴..이제 좀 살겠다'라는 이모의 말을 시작으로 돼지국밥집 식구들은 양푼에 수저를 꽂을 수 있었다.  양푼에 담긴 각자 몫의 달걀 후라이를 먹고도 부족해서 나를 쳐다보는 해찰이에게 계란 노른자를 양보하고 일어선 나는 습관처럼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바깥으로 나가려다가 주춤했다.  얼마전에 끊은 담배를 찾느라 은연중에 주머니를 뒤지던 손가락에 잡힌 먼지를 의식하고는 머쓱해져서 열려던 출입문을 닫고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만 쓸고 말았다.  때마침 배달된 부식거리를 들고 문을 여는 야채가게 총각의 손에서 열무며, 파 등이 담긴 봉투를 받아서 주방으로 옮겨다 놓고 저녁 손님들이 들기까지 두어시간의 여유를 평소처럼 밤장사를 위해 보충용 낮잠을 자려고 해찰이를 카운터에 대신 세워두고 창고방으로 들어갔다.  눈을 감고 팔을 그 위에 얹었지만 어둑신한 창고방 윗쪽에 뚫려 있는 오후의 햇살은 구석에 있는 나를 쏘아보며 내 감은 망막위로 어룽대는 노오란 빛깔의 문양들을 그려댔다.  감은 눈 위에 그려진 형상들 속에서 나는 문득 백화주막 간판 옆 노란 전등 불빛 아래 오래도록 서 있던 그녀를 떠올리게 되었다.    

 

  비 내리는 날 백화주막의 출입문 옆을 지키던 노란 등은 분무 속에서도 유난히 노오란 빛을 자욱하게 뿌려댔다.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화장 짙은 선술집 여인내의 흥얼대는 노랫가락처럼 빗 속을 헤매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처연함이 노란 불빛 속에 녹아 있었다.  손에 우산을 든 채로 비에 훔뻑 젖은 그녀, 철벅거리는 운동화를 끌면서 연신 앞머리에서 떨어져 눈으로 들어오는 빗물에 눈을 연신 깜박거렸다.  빗물로 뿌옇게 흐려진 눈을 눈꺼풀을 세게 떴다 감아서 물방울을 떨어뜨리고 고개를 든 시선 끝에 노란 전등 빛이 퍼져보였다.  그제서야 어둑어둑한 길가를 향해 세어나오는 지짐이의 고소한 기름냄새를 맡은 탓인지 그녀의 시선이 백화주막 유리창 너머에 머문다.  출입문 옆 유리창으로 커다란 대형 후라이펜 위에서 익어가는 하얀 비계가 두어조각 박혀있는 녹두빈대떡과 도톰하게 고기소가 꽉 들어찬 고추전, 그리고 시큼한 김치전 등의  부침들과 그 옆에 놓여있는 식용유, 뒤집개, 반죽 등이 보이고 연신 부침개를 뒤집는 알바생의 바쁜 손놀림과 접시를 들고 지짐이들을 가져가는 날렵한 손놀림들이 보였다.  한참을 창밖에서 전을 부치는 모양새를 지켜보던 그녀는 문득 자신이 너무 오래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것처럼 천변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가려다 철벅대는 신발 탓인지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물을 철벅이며 걸어갔다.  우산을 쓴 채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우산도 없이 걸어오는 그녀를 피해 양 옆 길가로 흩어져서 그녀는 갈라진 홍해를 홀로 걷는 것 같았다. 

  "여기 계산 안 하세요?"

  카운터에 선 채로 눈으로 빗 속의 그녀를 따라 갔던 시선 탓에 잠시 마비됐던 귀로 음성이 들려왔다.  음성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저 사람이 왜 저러나하는 시선으로 황당하게 쳐다보는 손님이 보인다.  주문서에 적힌 8번 테이블 번호에 찍힌 주문내역을 터치스크린 모니터로 확인하고 삼만 사천원을 건내 준 신용카드로 결재하고는 '띡띡 띠디딕'하고 출력된 카드 전표 고객용을 손님에게 건낸 후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를 한다.  전표를 받고는 부침개를 부치는 후라이펜의 열기로 온통 습기로 뒤덮인 출입문을 열고 나가는 손님을 쳐다보고는 시계를 올려다보니 10시가 되어간다.  홀 내에 비치된 10여개의 테이블은 절반 정도 손님이 들었고, 매상은 오늘도 그럭저럭이다.  보증금 오천에 월 삼백만원, 영업하는 날짜를 가늠해서 대략 하루 매출이 30만원은 넘어야 적자를 안 보는데

그나마 형이 할 때 폐업직전까지 간 가게를 작년에 맡아 문 앞에 부침개 후라이펜을 설치한 후론 비가 오는 날엔 제법 손님이 들어서 그나마 삼백만원 벌이는 되는 것 같다.  머릿 속으로 열심히 이달 전기료 얼마에, 재료비 얼마, 음.. 그래 이번달엔 그래도 오징어가 제철이라 싸게 샀지 등의 생각을 하다가 부침개 부스쪽을 쳐다보니, 창고방에서 나온 해찰이가 아예 부스 옆에 자리 잡고 앉아서 동그랑땡을 집어먹는게 보인다.  '휴... 해찰이가 집어먹는 것만 해도 몇 십만원은 되겠네... 형은 어쩌자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나를 향해 입가를 기름기로 칠갑한 해찰이가 이를 다 드러내고 웃어보인다.  '저 놈을 죽이지도 못하고 살리지도 못하고..  그나마 저 놈이라도 있으니 알바 집에 보내고 대신 카운터라도 세우지... ' 

 

  '해찰아~그만 먹어... 밤에 기름기 먹으면 배 아파.. 해찰아!'

해찰이를 부르다 눈을 떠보니 나를 어리둥절하게 쳐다보고 있는 그놈이 보인다.  창문으로 들어오던 햇살이 사라지고 대신 어둑신한 어둠이 창고방을 하나 가득 채우고 있다.  얼마동안 잠이 든 건지 머리는 멍하고 목이 바짝 말라온다.  왜 갑자기 꿈 속에서 예전에 하던 가게가 나온 건지, 벌써 7년 전 단골 손님이 꿈에 보이는지 머릿속이 뒤죽박죽인 채 난 저녁장사를 하기 위해 창고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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