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정유정>

<내 심장을 쏴라>삶의 희망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묭롶 2009. 7. 19. 16:11

 

  언젠가 정상인과 정신병자의 차이가 종이한장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글을 읽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이 말은 되집어보면 내가 어떠한 감정의 경계를 넘는 순간  정신병의 이상징후를 보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렇다면 이 종이한장 차이의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짓는 경계는 누가 짓는 것일까? 

특히 평소 너무나 멀쩡하게 일상을 유지해 왔음에도 어느날 갑자기 이상징후를 보이는 (우울증, 각종 이해할 수 없는 범죄들) 경우가 다분하게 언론과 주변에서 보도되고 일어나는 현재 상황 속에서 그 누구도 이러한 정신병리학적인 이상상태에서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현실에 비춰볼 때 기존의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기준은 변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정상인도 비정상인이 될 수 있는 심리적 잠재요인들을 내포하고 있는 잠재태들이기에 이를 분류할 학문적 정의 또한 이상징후의 발현상태(비정상:정신이상)와 잠재적 상태(정상인)로 구분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삶 속에서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하지만 유사 이래로 인간과 함께 해온 고통이 유달리 지금 이 시점에서 문제적 병인으로 대두된 이유는 또한 무엇인가!  문명이 복잡해지고 고도화되면서 인간은 개별화되고 그 과정에서 주류에 편승하지 못한 다수의 사람들은 소외되어 왔다.  과거와는 다르게  인간관계 속에서 삶이 주는 고통의 해결점을 찾고 극복의 과정을 겪고서 다시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 과정을 학습하지 못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서 부지불식간에 그 숫자가 늘어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자신만의 방식으로 승화를 경험하게 되고, 이것만이 옳은 방법이라고 판단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주변인들에게 그와 같은 방식들은 모두 정신병의 징후로 판단되어 이들은 사회에서 격리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격리 이후에 체계적이고 인간적인 치유과정을 거치게 되면 다행이지만, 이와 반대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이다.  정신이상은 육체적 장애와 같이 지적장애일 뿐이며, 일부의 위험한 병증을 제외하고는 타인에게 해를 입히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들은 타인이 아닌 자해를 고통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지적장애는 같은 인간으로 존중받아야 할 최소한의 인간적 처우마저 박탈한다.   책 속에서 수리희망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은 말한다.  정신병원에는 미친사람들과 미쳐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이 말은 곧 치료를 통해 현실로 복귀할 수 있음에도 잘못된 치료과정 속에서 오히려 정신이 파괴되버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말이 된다. 

 

  강원도 산골에 위치한 수리희망병원에 입원한 25살의 이수명과 류승민, 그리고 환자들을 통해 작가는 정신병 환자에 대한 우리들의 편견을 깨고, 그들 또한 현재를 좌추우돌 살아가는 우리와 같은 한 사람의 사람으로 보아달라고 말한다.   이수명은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우울증으로 인해 정신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하던 어머니의 죽음이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이에 대한 기억을 봉인한 채 아버지에게 죽음의 원인이 있다고 의심한다.  그는 죄의식과 자책으로 인해 대인기피증과 공황장애를 일으켜 수리희망병원에 입원하게 된다(사실은 격리지만).  류승민은 시력상실이 얼마남지 않은 상황에서 아버지 사후 형제간의 재산다툼 속에서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당했다.  정신병원에 순응하지 않으면 거리의 악사처럼 ECT치료(전기경련요법)를 당해서 기억과 인성을 잃게 되거나, 비인간적인 약물치료를 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환자들이 정신병원의 규율에 복종하는 반면, 류승민은 탈출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승민은 보호사나 진압 2인조에게 소리치는 게 아니었다.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자신을 조준하고 있는 세상의 총구들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내 심장을 쏘라고. 

그래야만 나를 가둘 수 있을 것이라고.」P264

 

 

이러한 류승민의 행동은 자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자신을 포기한 이수명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이수명은 류승민의 탈출을 돕게 된다. 

 

「~왜 하필 '비켜'였던가.  모르겠다.  그 순간 내 몸을 꿰뚫었던 것이 무언지만 안다. 

통쾌함이었다.  깨달음이었다.  내 심장도 승민처럼 살아 있었다.

~나는 핸들을 잡은 채 일어섰다.  앞 유리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내 안에서 들끓는 것들을 토해냈다. 

추격자들을 향해, 드넓은 호수를 향해, 수리 희망병원 501호를 향해, 내가 떠나온 세상을 향해. 

 "비켜.  다 비켜!"」P268

 

 

  수명은 류승민의 생애마지막 비행을 도우면서 비로소 자책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아이러니는 수명이 정신병원의 치료과정이 아닌 한 사람으로 인해 변화를 일으켰다는 점이다.  치료를 받으면서는 오히려 켈리(가위)에 대한 강박증이 더 심해지는 양상을 보였던 수명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그들을 이해해나가고 그들의 고통을 직시하면서 자신의 고통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과정은 "삶의 희망은 바로 내 자신이다!"   라는 작가의 마음일 것이다.

 

  PS: 내 맘속에서 지우지 못할 캐릭터 하나:  만식 할아버지.

     내가 아는 상사 한 분과 이름이 같지만 너무나 다른 인물, 서커스 단에서 애마인 또별을 타고 묘기를 부리던 할아버지는 어느날 머릿속에서 염소가

     기억을 뜯어먹는 병에 걸리게 되자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정신병원 환자 중 한 명을 자신의 애마인 '또별'이라 이름 붙이고 머리엔 헬멧을 쓰고

     꽃무늬 트렁크 팬티를 입고서 바짝 마른 몸으로 '또별'의 등에 찰싹 달라 붙어서 생활한다.  16대 또별은 거리의 악사, 류승민이 17대 또별이었는데,

     승민이 없을 때는 수명이 대타였다.  ^^ 염소가 멀쩡한 정신과 기억을 다 뜯어먹었지만 사람에 대한 사랑만큼은 누구보다 컸던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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