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자료/시나리오습작

구미호 이야기

묭롶 2009. 7. 1. 13:13

제    목:  구미호 이야기

주    제:  구미호의 진정한 ‘사랑’찾기.

집필의도: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결혼을 하기 전에 조건을 맞춰보기 시작했다.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스펙의 이성을 구매하듯 선정하는 사람

           들을 보면서 인간에게 있어 사랑이란 무엇이며, 결혼이란 무엇일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종족을 잇기 위한 목적을 위해 한 결혼이지만

           상대에게 최선을 다 했던 구미호 일족의 마지막 선택을 지켜보며 그 의미를

           다시금 확인해보고자 한다.

등장인물(상)할머니 구미호(단군 시대부터 살아온 구미호 일족의 선대장로로 구미호

                            일족의 연이은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심신이 피폐한 채

                            눈 꼬리가 짓무르고 마른 백발의 늙은 구미호)

                자연과의 동화가 진행되어 하체는 거의 흙으로 바스라지고 있는 상황

                (백발의 긴 머리카락과 하얀 얼굴, 눈 자위에 검고 짙은 다크 써클,

                 검게 처진 눈 꼬리 -하의는 흙 색의 끌리는 치마에 낙엽과 나뭇잎들이

                 붙어 있고 나뭇가지도 몇 개 꽂혀 있으며, 한 손에는 금색 복주머니를

                 들고 다니면서 수시로 그곳에서 손톱과 발톱을 빼서 오도독 오도독 씹어

                 먹는다)- 죽을 날이 가까워 성정이 급하고 욕을 잘 한다.                 

            큰 애(중년의 구미호):(노모를 모시며 산에서 숯을 구워 팔아

                                 근근이 삶을 꾸려가는 노총각에게 시집을 갔다가

                                 골방에 유폐된 채 죽도록 삯바느질만하다가

                                 인간나이 30살에 6.25동란 중  남편 죽고 혼자 남은

                                 반 백의 구미호)

                  마른 몸매에 두꺼운 돋보기 안경, 쪽진 머리, 한복 차림.

                  순하고 말 수가 없음.

            구미호(30대 여):(2000년에 능력 없는 총각을 만나 뼛골 빠지게

                            돈 벌어주다가 남편에게 이혼당한 구미호)

                            뚱뚱하지만 삶에 대한 의욕이 강함.

            나도우(30대 남):(사업이 망해 큰 빚을 지고 죽을 결심을 하고 구미호

                            일족이 하는 장의사가 있는 뒷 산에 올랐지만 죽지

                            못한 남자)

                  샤프한 양복차림, 안경을 쓰고 있으며 생에 냉소적이고 비관적임.


줄 거 리:  단군 시대 500마리였던 구미호 일족은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존재였으나,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남자와 7년을 살아야만 했다.  그러나

              남자와의 결혼생활을 위해 인간여자로 변신한 구미호는  자신의 힘을 포기했어야 했다. 

              미모, 지성, 힘, 목소리 등을 포기하며 연약한 여자의 삶을 택한 구미호에게 결혼 생활은

              너무나 힘든 것이었다.  미처 7년을 채우기도 전에 소박을 맞거나, 남편이 바람이 나거나

             심지어는 죽임을 당하는 경우까지 있어서 구미호 일족은 그 염원을 이루지 못하고 2009년

             현재에 이르러서는 달랑 3 마리만이 남은 상황이었다.  이제 구미호 일족의 명맥을 잇기 위해

             소박을 맞았던 30대 구미호가 재혼을 준비 중이다.


(1층은 ‘장의사’ 2층은 집 뒤편 야산으로 나뉘어 있다.  2층 야산 배경 왼편에는

오래된 듯한 오동나무가 있다.  중앙에서 왼편과 오른쪽에 야산을 내려오는 언덕빼기

모양의 계단이 놓여있다.)

:  검은 휘장을 뒷 배경으로 왼편에는 ‘미호’장의사 현판이 보이고 출입문이 있다. 

오른쪽에는 관과 꽃 상여가 비치되어 있다.  오른편에도 출입문이 있고, 무대 중앙에는

제사상이 차려져 있고 제사상 옆에 프로젝트영상을 쏠 수 있는 흰 천이 쳐져있다.. 

막이 올라가면 조명핀 하나만이 무대 중앙의 제사상 앞에 망연히 앉아 뒷 모습만

보이는 상 할머니를 비춘다.  이어 오른편에서 제사상에 올릴 술 주전자를 소반에

담아 조신하게 큰 애가 걸어 들어오면 무대 전체가 밝아진다. 


  -큰애가 제사상 옆에 앉아서 소반을 내려놓고 술 주전자를 할머니에게 건네면

할머니 기력이 없어 떨리는 손으로 술 한 잔을 따라 상 위에 놓고는 옷고름으로

검게 다크써클이 내려온 눈매를 훔친다.  큰애는 할머니 옆에 조신하게 고개를

숙인 채 아무말 없이 앉아있다.


   할머니:  이그.. 짠한 것 .... 짠한 것....

  (할머니의 회상)-제사상 옆 스크린(흰천)에 백치 아다다가 바다에 뿌려진 돈을 줍기 위해

바닷물에 빠져 허우적 되는 장면 상영된 후 종료되면.

   할머니:  뭣한다고...헤필이면 목소리를 포기했을까잉. 내 죄가 커.. 인간남자들한텐

            얼굴 이쁘면 장땡이라고 말 못 하는 게 뭐 대수냐고 했던 게 나니께..

  -바스러지고 있는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할머니:  소멸되기 전에... 될런지........

 -움켜쥔 손이 심하게 떨리자 급하게 금박의 복주머니에서 손톱, 발톱을 한움큼 집어서

오도독 오도독 소리가 나게 씹어 먹다가 큰애를 바라보며.

   할머니:  큰애야.. 너도 내가 미우냐..

   큰  애:  ..........

   할머니:  하긴 너도 골방에서 굶어죽기 전에야 도망쳤으니.. 내 죄가 많다.

            (생각하니 분한 듯)

            그 망할놈의 단군 할방탱이..

            차라리 곰 같이 마늘하고 쑥을 먹으라고 하지..

            해필이면 인간남자하고 7년을 살아야 한데..

            거기다가 뭐든 한 가지는 포기를 해야 한다는 단서는 뭣한다고

            달아가지구...

            내가 미친년이지...

  -큰애 할머니가 고개를 저으며 자학하는 동안 할머니를 물끄러미 쏘아본다.

   바깥에서 발자국 소리와 함께 왼편의 여닫이 문이 드르륵 열리면 문쪽으로 두 명의

시선이 옮겨지는데, 미호 검은 비닐봉투를 신나게 흔들며 들어온다.

    미  호:  할머니~~~ 나..오늘 손톱 발톱......(말을 하다가 영정을 보고는)

             아.. 오늘이 아다다 언니 제사였구나.

            뭣이여.. 할매 또 울어?  다크써클 더 커지네...

            (할머니 허리춤에 매여 있는 금색 복주머니를 끌러서 그 속에 비닐의 내용물을

             옮겨 담는다.)

    할머니: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오도독 오도독 씹으며)또 복지관이며 요양원 돌다 온겨?

    미  호:  별 수 없잖아..  할매 식량 구할려면.. 요즘은 시체도 통 안 들어오고...시체

             손톱 깎은지가 언젠지 모르겠어.

-큰애는 할머니와 미호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소반을 들고 일어서서 오른쪽 문으로 나간다. 

큰애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할머니

    할머니:  저것도 저리되고는 통 말을 잃었으니... 쯧쯧....

            .......그나저나.. 미호야.. 너 시킨대로는 한겨?

    미 호:  (우물쭈물하다가)  난 안된데..

    할머니:  왜??? 너 같이 똑똑한 구미호가 어딨다고.

    미  호:  할매 눈에나 그렇지.. 이혼녀에다 몸도 뚱뚱하고 장의사가 직업이라니까

             장난하지 말라고 죽는다고 웃던데.

             ㅎㅎㅎ.. 내가 생각해도 웃기긴 해..

             에휴.. 싸돌아다녓더니 힘드네..고만.. 치우고 자자고..


  - 미호 제사상을 번쩍 들어 할머니와 오른쪽 문으로 퇴장하면 1층 조명이 어두워지고 2층에

조명이 비춰진다.  양복차림의 나도우 밧줄을 들고 왼편 오동나무 쪽으로 와서 오동나무 가지에

밧줄을 매려고 애를 쓴다.  한참을 밧줄과 실랑이 한 끝에 밧줄이 걸리면..잠시 머뭇거리다가 밧줄을 목에 건다.


    할머니:  (이불을 홱 차면서)  오매... 팔뚝 근지런그.. 아가.. 미호야..

             잠 긁어봐라잉..

    미  호:  (자다가 말고 대충 내민 팔뚝을 긁는 시늉)

    할머니:  오매.. 성질난그.. 갠지러 죽겄네.

             (참다가 못 참고 일어나 앉으며)

             어떤 몹쓸 것이 와서 성가시럽게....


말이 끝나기 무섭게 2층 윗 배경 부근이 번쩍하면서 벼락이 나무쪽으로 치고, 도우 목에 걸린

밧줄을 손으로 붙잡고 버둥대다가 벼락에 줄이 끊어져서 비명을 지르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미  호 (목소리):  할매.. 방금 뭔 소리 못 들었어?

    할머니 (목소리):   짐승이겄제.. 이 외진데 누가 올라고.... 끙( 돌아 눕는 소리)


-미호 왼쪽 언덕위로 올라가 2층에서 나무 옆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도우를 발견한다. 


  미  호:   왠 사람이 여기까지 와서 누워있지?  술 먹었나?  (엎어져 있는 도우를 뒤집어

흔들면서) 여보세요?  집에 가서 자요.. 예?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는 도우를 일으키려다

안 되겠는지, 큰애를 큰 소리로 부른다)  언니~~~ 언니.... 이리 좀 와봐,


-큰애 그 소리에 2층으로 올라와서 두 명이 부축해서  1층으로 데려와서 무대중앙에 눕히면

할머니 무대 오른쪽문을 열고 무대 중앙으로 다가오고, 미호 드러누운 도우의 곁에서 킁킁대며 냄새를 맡는다. 


  미  호:  음.. 술 냄새는 안 나는데.. 할매가 쏜 벼락에 맞았나? 

             (양복 주머니에 꽂혀 있는 백색 봉투를 발견하고 이를 빼서 읽는다.)

             이게 뭐지?  

             (한 장씩 넘기며)  경매...가압류.. 최후 통첩?

-도우 경매. 가압류.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드는 듯 앉아서 미호 손에 들린 종이를 덥썩 빼앗아

주머니에 구겨 넣는다.

  할머니:  큰애야.. 손님 씻게 물 좀 데워라..

- 큰애 일어나서 오른편 문으로 사라지고, 미호도 신이 나서 큰애를 따라가는데..할머니와 둘만

남은 도우는 할머니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끊어진 밧줄을

머쓱한 듯 풀어서 내려놓는다.

  할머니:  (혼잣말로)  누군 인간 되겄다고 오천년을 이 지랄인디.

  도  우:  (자신에게 하는 줄 알고)  네?

  할머니:  아녀..

- 이때 오른쪽에서 들려오는 칼 가는 소리 스윽..스윽 들여오고.. 할머니는 다크써클 진한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보고, 도우는 안절부절 식은땀이 흐른다.  마침 오른편에서 손에 날이 잘선 가위를 들고

나타나는 미호.. 신나서 들어와선 덥썩 도우의 손을 잡는다. 

  도  우:  (화들짝 놀라며)왜 이러세요?

  미  호:  할머니 밥(갑자기 손으로 미호의 입을 막는 할머니)...

  할머니:  그래..그래 손톱 깨끗이 깎고 밥 묵어야제.

- 미호 뻘쭘하게 손을 내 맡긴 도우의 손톱을 열심히 자르고, 큰애는 오른쪽에서 밥상을 차려와 도우

앞에 놓는데, 밥상을 두고 갑자기 울컥하여 표정 일그러지는 도우.

  할머니:  그렇게 애 안 써도 인간사 짧어.. 금방이여.

             그러지 말구 언능 들구랴..


- 미호 수저를 들어 도우 손에 쥐어주면.  1층 조명 어두워지며 2층 나무 주위로 조명이 비추어지고

그 사이 미호는 상을 들고 할머니와 함께 퇴장하고,

큰애 오른쪽 언덕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서 방망이를 들고 나무쪽으로 다가간다.  도우는 잠을 못

이루는 듯 왼편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다가 나무를 치고 있는 큰애를 발견하곤 이를 몰래 지켜본다.


  

  큰  애:  죽어.. 죽어..죽으란 말야..(미친 듯이 방망이로 나무를 두들기다가 진이 빠진 듯            

방망이를 던져버리고 숨을 헐떡이다가.. 갑자기 미친 듯이 웃는다.)

               인간... 그 따위 꺼 개나 주라고 해.  한갓 먹을거리에 불과한 인간이 되겠

               다고 영생을 버리다니.. 좋으면 저 혼자 하지.. 왜 나까지......

               빌어먹을 놈... 처음에는 물고 빨고 제 살처럼 굴더니....

               언제는 똑똑하고 생활력 강해서 든든하고 좋다더니.. 손가락에 핏물 터지도                

               록 좋아하는 돈 벌어주니까.. 어린년을 만나?

               그래놓고 쳐 울긴 왜 울어.. (갑자기 손을 치켜 올려 쳐다보며 몸을 떨면서)

               그래.. 이 손이야..

-그러다가 갑자기 주위를 돌아보면 도우 깜짝 놀라 몸을 웅크린다.  큰애 하늘을 올려다보고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는

  큰 애:  벌써...새벽이군....밥 앉쳐야 되겠네.

-큰애, 오른쪽으로 사라지고, 도우 큰애가 사라지자, 왼쪽을 통해 조심스럽게 1층 여닫이 문을

열면 1층 환해지며 문 앞에 서 있는 미호와 마주친다.


  도 우:  (비명을 지르며)  으악?

  미 호:  누가 보면 내가 잡아 먹는 줄 알겠네...

             (도우의 어깨를 툭 치며)  죽으려던 사람이 무슨 겁이 이렇게 많아 가지고..

             난 안보여서 도망간 줄 알았네.

  도 우:  나.. 돌아갈 곳이 없어요.  모든 게 끝났어요.

  미 호:  목숨 붙어있고 살아 있구만.. 뭐가 끝났다는 건지.

  도 우:  자그만치.. 내 앞으로만 빚이 4억이야.. 4억...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그 빚 다 갚고 나면 난 늙은이가 될 거라고.

-오른쪽 문을 열고 할머니 몸을 떨며 비척비척 걸어온다.(다크써클 더 커져있고, 얼굴도 멍이 들어 있다.)

  할머니:  늙은이? 나 찾는겨?

  미  호:  할매?  얼굴 왜 이래?  밤에 뭔 일 있었어? 

  할머니:  .......괜찮어..어차피.. 곧 사그라들 목숨인디..

            미호야.. 오늘부터는 괜히 돌아다니지 말고, 재혼상담소라도 다녀오니라.

  미  호:  (마지못해서) 네..

  할머니:  (도우를 보며) 부담갖지 말고.. 머물면서 맘 추스르구려.

- 오른쪽에서 큰애 들어오자 도우 큰애를 보고 흠칫 놀라고 그런 도우를 한번 쳐다보고는

할머니 곁에 서는 큰애.

  할머니:  그래.. 그새 밥 때가 됐구나..가자꾸나..

- 할머니 큰애를 따라 오른쪽 문으로 나가고, 뒤 따라가려던 미호를 부르는 도우

  도  우:  저기요.

  미  호:  왜요?

  도  우:  저 살아 있는 거 맞죠?

  미  호:  왜 한 대 때려드려요?  실감나게?

  도  우:  아니.. 여기가 너무 이상해서요.  할머니도 그렇고 저 나이 드신 분도 그렇고..

             정상이.. 아닌 것 같아서요.

             무슨 장의사에 여자만 딸랑 세 명이고, 할머니는 그쪽을 시집 못 보내서 안달

             인 것 같고,... 솔직히 무섬증이 들어서..

  미  호:  ㅎㅎㅎ.... 웃겨 죽겠네요.. 그쪽 말마따나 딸랑 여자 세 명이 뭐가 무서워요?

  도  우: 그런데요.. 저 아주머니가 어머니 되세요?

  미  호:  아뇨.. 울 언닌데요.

             왜 저렇게 연세가 많냐구요?  고생을 많이 해서 그래요.

             그나저나.. 어떻게 할거에요?

  도  우:  뭘요?

  미  호:  어떻게 살거냐구요.

  도  우:  아직 생각 안 해봤어요.

  미  호:  걍 여기서 같이 살면 어때요?

             할머니도 자꾸 재혼정보회사 알아보라고 하고.

  도  우:  예?  그럼 그쪽이랑 나랑 같이 살자는 거에요?

             그런 얘기를 어떻게 그렇게 쉽게....그것도 여자가...

             어떻게 사랑하지도 않는 생판 남한테....

  미  호:  울 할매 얼마 안 남았어요.  흙 되기 전에 원이라도 없게

             그동안 만이라도요.

             사랑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금방 시들어버릴 꽃다발 같은 걸요.

             받을 땐 화사하지만 이내 구린내를 풍기며 시들뿐이죠.

  도  우:  왜 하필 접니까?  저 경제적으로 파산에 지금 돌아가면 빚쟁이한테

             맞아죽을 전데요.  앞으론 카드 한 장, 변변한 직장도 못 들어가는데

             상관 없단 겁니까?

  미  호:  당신이라면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당신이라면....어쩌면 저와 할머니에겐

             마지막 기회가 될 것 같아서요.

  도  우:  생각해보죠. 

  미  호:  너무 오래 하진 마세요.  인간 삶은 짧으니까요.

             아휴...배고파.. (도우의 팔목을 덥썩 잡고서) 할매... 할매..(부르며

             오른쪽 문으로 사라진다)


<1층 조명이 꺼지고 2층 조명이 밝아지면 오른쪽에서 걸어오던 큰애, 왼편에서 걸어오는

마을 사람을 중앙에서 마주친다.>


  주  민:  이보우.. 오늘 새벽에 칠성이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사람 좀 보내줄 수

             있겠수?

  큰  애:  (싸늘하게 주민을 쳐다보며)  우리 일 안한지 오래요.  딴 데 알아 보슈.

-주민 싸늘한 큰애의 말에 무안해져서 오른쪽으로 사라지면 황급히 퇴장하는 주민을 한번

쳐다보고는 큰애에게 화가 나서 다가가는 미호

  미  호:  언니였어?

- 뒤돌아서서 미호를 싸하게 말없이 쳐다보는 큰애.  다시 왼쪽 편으로 걸어가려고 하면 뒤에서

다급하게 미호

  미  호:  말을 해.. 왜 말을 안 하냐고.. 할매는 그렇다치고 우리는 먹고 살려면 돈 벌어              

야 하는데 오는 손님을 다 끊어 놓은 게 언니냐고 묻잖아?

- 뒤에서 소리 지르는 미호와 상관없이 왼쪽 언덕계단을 내려와 1층으로 퇴장하고, 무대 중앙의

미호의 곁으로 할머니 다가온다. 

  할머니:  니가 이해혀라.  나한테 원망이 커서 그렇지..

  미  호:  사실 나도 우리가 왜 인간이 되려고 이 고생인지 모르겠어.

             할매.. 왜 그런거야?  왜?

  할머니:  인간이 부러웠지.. 왠줄아냐? 원래 영원하고 완전한 것은 아예 없는

             것과도 같은거여.  공기처럼.  그냥 동화가 될 뿐이고... 지 혼자는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겨. 

  미  호:  그게 무슨 말이야?

  할머니:  그려... 넌 어려서 잘 모르지.  영원한 건 날마다 같다는 것하고 똑같어.

             시간은 의미가 없지.  근디.. 인간은 다르더라구.  그것들은 살가죽도

             약하고 사나운 이빨도 발톱도 없는 것들이 그 짧은 시간 살 것 다고

             지들끼리 지지고 볶고 난리대. 

             원래 부족한 걸 채우면서 하나의 의미로 만들어지는 게 인간이란 말이지.

  미  호:  고작 그것 때문에 영생을 버리고 흙이 되려는 거야?

  할머니:  울 착한 미호.  니가 이 할미를 걱정하는 그 마음도 바로 영생을 포기하고

             얻은것이여.  예전맹키로 완전하믄. 서로를 위하는 맴이나 미워하는 맴도

             없는 법이니께.

  미  호:  근데..할매.. 할매..오늘 이상해.  욕도 안하고.

  할머니:  그러냐.. 염병...갈 날이 가까운께 그란갑지야..

             에구.. 간만에 찬바람 쐤던만.. 삭신이 쑤셔 죽겄다.  할미는 들어가마.


- 할머니 오른쪽을 통해 퇴장하고, 미호는 이것저것을 생각하는지, 왔다갔다하고 있으면

오른쪽에서 도우 올라와서 미호쪽으로 다가온다.  미호 도우를 발견하고는


  미  호:  마침 잘 왔어요.  우리 이러면 어떨까요?

  도  우:  뭘요?

  미  호:  역전 앞에서 포장마차를 하면 어떨까 해서요.

             아무래도 장의사도 파리 날리고 먹고 살아야하니까요.

             우리 같이 해요.

  도  우:  전 그런 일 안해 봤는데요.

  미  호:  저도 안 해 봤어요.  그러니까 해 보자구요. 

  도  우:  미호씨는 뭐든 그렇게 쉬워요?

             걱정 같은 건 없는 사람 같아요. 

  미  호:  뭐 하러 미리 걱정해요.  걱정할 시간 있으면 벌써 시작해서 중간은

             하고 있겠구만.

 도  우:  그런 맘이면 살부터 빼지 그래요?

  미  호:  (씩 웃으며, 살을 손가락으로 집으며)아... 이거요.  이건 어쩔 수 없어요.

             이미 포기한 걸 되돌릴 순 없거든요.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지능을

             포기할 걸 그랬나?  아무것도 모르면 걱정도 무서움도 없었을지도 모를

             테니까요.

  도  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미  호:  (웃으며) 아니에요.

             그럼 그것도 생각해보세요.  전 읍내 나가서 재료 좀 사올게요.


-부지런히 미호 왼편 계단을 통해 1층으로 퇴장하면, 혼자 남아 있는 도우 곁으로 오른쪽에서

큰애 다가와서 도우의 곁에 선다.


 도  우:  (미호를 떠올리는 듯)  요즘 보기 드문 성격이야.  원 저렇게 대책 없이

             밝기도 힘들겠어.(고개를 절래절래 젓다가)

             그래도 은근히 맘이 가..  정도 많고.

- 도우 곁에 서 있는 큰애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는데,

  큰  애:  미호가 왜 뚱뚱한지 알아요?

 도  우:  예?

  큰  애:  우리가 뭘로 보여요?

  도  우: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그런데 원래 말 할 수 있었어요?

  큰  애:  (무시하며)우린 사람이 아니에요.  구미호 일족이죠. 아... 정확히는

             인간이 되다말았죠. 인간 남자 곁에서 7년을 채워야 하는데

             미호도 그렇고 저도 못 채웠거든요.

             인간의 모습을 갖기 위해서 저는 외모를 미호는 몸매를 포기했거든요.

             물론 할머니는 영생을 포기했죠.

  도  우:  (갑자기 겁이 더럭 나서)  이런 얘길 저한테 하시는 이유가 뭐죠?

             그리고 제정신이세요?

             지난번 밤에도 그렇고 이상 있는 것 같은데.. 병원에 가셔야죠.

  큰  애:  (갑자기 미친 듯이 웃다가)  흠.. 못 믿겠다면 믿게 해주죠.


- 큰애 갑자기 숲 배경 뒤쪽에 숨겨둔 도끼를 들고 나와서 왼쪽 편의 나무를 베기 시작한다. 

한 열 번쯤 도끼질을 하는데, 도우는 너무 놀라서 말릴 생각도 못하고 있고 한 번 더

내려치자 큰 소리로 여우 죽어가는 ‘캥!’하는 소리 크게 들린다.


  큰  애:  (도끼를 던져버리고 울부짖는다)  이제 끝난 거야.. 내 손으로 끝냈어.

             그놈도 할머니도.  내가 줬던 감정이니 내 손으로 거둬야지.


- 큰애 도우를 쳐다보고는 오른쪽으로 사라지자, 도우 그제서야 정신이 든 듯 왼쪽언덕으로

도망치듯 퇴장한다.  미호 포장마차를 만들기 위한 재료들을 손에 든 채, 무대 중앙에 할머니의

주검을 안고 있는 큰애를 발견한다.  큰애 할머니와 함께 휘발유에 흠뻑 젖어있고, 그 옆으로

빈 휘발유통이 보인다.

   

   미  호:  할매 왜 이래?

              (할머니를 붙들고 흔들다가 갑자기 큰애를 보며)  언니가 이랬어?

              왜?  왜?

   큰  애:  (몸을 떨면서)  할머니가 죽으면 단군과의 약속도 깨진다고 ‘아다다’가

              죽기 전에 말했어.

              포기했던 영생이 다시 돌아온다고....

              그런데.. 그 영생은 내 것이 아니라.. 할머니가 다시 영원의 존재로

              돌아간다는 뜻이었나봐.

              내 몸이 그대로잖아.  할머니 몸도 그렇고..

   미  호:  그 사람은 어딨어?

   큰  애:  내가 다 말했어.  이제 더 이상 너도 나도 인간남자 따위에게 상처받기

              휘둘리지 말자..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나.

              이제 모두 지긋지긋해.  나도 할머니 곁으로 가고 싶어..

              젠장.  왜 지금 그 나쁜 놈이 생각나는 거지.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큰애.  불길 조명이 큰애 주위를 비추면.. )

              (손을 뻗어 미호에게 ) 같이 가자.  미호야.  모두 다 끝내자.

    미  호:  (뒷걸음질 치며)  싫어.  할매가 원하던 건 이런 게 아냐.

               그래도 인간의 삶엔 희망이 있다고 그게 부러웠다고 했어.

               난 그걸 포기하지 않을거야.


- 미호 왼쪽문을 열고 퇴장하고 불길에 휩싸이는 1층.. 잠시후 스모그에 1층이 잠기면

큰애 할머니 퇴장하고, 잠시 어두워졌다가 2층 잘리워진 나무에 앉아있는 도우 보인다.


    도  우:  벌써 7년이 흘렀네.  그땐 앞이 캄캄했는데.....

               그때 미호씨가 아니었다면 새로 시작할 수 있었을까.

 (손에 들고 온 끊어진 밧줄을 들어보이며)

               난 참 비겁한 놈이야.  미호씨를 버리고 나만 도망치다니...


-들고 온 밧줄을 잘려진 나무위에 올려놓고 도우 일어서서 오른쪽으로 퇴장하면 왼쪽 언덕으로

올라와 나무 곁으로 다가와 밧줄을 들어보는 미호.. 순간 뒤돌아보는 도우 서로 눈이

마주치면 무대 막이 내려진다.     

 



  

 



'문창자료 > 시나리오습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나리오 창작 [7층 정거장]  (0) 2008.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