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2

묭롶 2009. 3. 3. 11:07

  『분노의 포도』2권을 노동자대회를 가는 차편에서 읽었다.  글을 읽으며 책 속의 배경인 1930년대 미국의 상황이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과 많이 닮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루과이 라운드로 인한 국내 농업의 몰락과 김영삼 정부시절 BUY KOREA를 외치며 국부를 해외로 유출시킴으로 인한 환 위기에 대한 대처능력 부족으로 인한 IMF의 도래, IMF로 인한 비정규직의 양산과 부의 양극화 심화 등은 1차 세계대전 후 세계의 패권국으로 자리 잡은 미국이 갖고 있던 1930년대의 사회 부조리와 닮은 것이었다. 그 시기 부를 거머쥔 자들은 굶주린 자들의 분노로부터 자신들의 소유를 지키기 위해 현지민들을 이용해 이주민들이 그들이 가진 것(일자리)을 빼앗으려 한다며 뿌리깊은 혐오감을 심어준다.  부자들은 현지민들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자신들은 총과 독가스로 무장할 뿐이었다.  

 

「대기업들은 굶주림과 분노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들은 어쩌면 품삯으로 지불할 수도 있었을 돈을 독가스와 총을 사들이는 데,

공작원과 첩자를 고용하는 데,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사람들을 훈련하는 데 썼다.  」2권 p120

 

  같은 언어를 쓰는 한 민족임에도 가진자들에게 부추김 당한 현지민들은 이주민들을 '오키'라고 부르며 경멸하고 두려워한다.  그들에게 이주민은 자신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위협과 폭력까지도 불사한다.  사실상 본인 소유의 것을 갖지 못했음에도 현지민들에게 소유에 대한 착각을 심어주며 그들의 힘을 빌어 이주민을 경계하도록 하는 대지주들의 행동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지역구도로 나누어 끊임없이 서로를 경계하게 만든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정권의 정책과도 닮아 있다.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입힌 적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은연 중에 혐오와 거부감을 갖도록 만든 군부독재의 수 많은 언론공작의 폐해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단적인 예로 현 체제에 비판을 가하거나, 잘못을 지적하는 글에 달리는 선정적인 댓글들 "전라도 빨갱이!"를 들 수 있겠다.  그렇게 댓글을 다는 그들 또한 부자가 아님에도 정부에 부자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할까!  그들의 모습은 자신의 동족을 "오키"라고 부르며 폭력을 가하는 현지민들의 모습과 닮은 꼴이다.

 

「"그래, 오키!  내일도 당신들이 여기 그대로 있으면 내가 체포해 버릴 거야."」1권 p448

「~도시 사람들과 온화한 교외의 시골 사람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한데 모였다. 

그리고 자기들이 좋은 사람이고 침입자들이 나쁜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저 망할 놈의 오키들은 더럽고 무식해.  ~놈들은 뭐든지 훔칠 거야. 

~사실 무장한 사람들도 땅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 자신은 이 땅이 자기 소유라고 믿었다. 

밤에 훈련을 받는 사무원들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2권 p117~118

 

  작품 속의 캘리포니아의 농부들이 판로를 잃고 과일의 수확을 포기한 채, 망연자실하는 모습은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밀려드는 외국 농산물로 인해 몰락해버린 우리 농촌의 현실과 너무도 닮아 있다.

 

「농사를 지어서는 먹고살 수가 없어요.  말씀 좀 해 보시오. 

 이 나라가 어찌 되어 가는 건지.  난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습디다. 

누구한테 물어봐도 다들 모르겠다고 해요.」1권 p262

「~소규모 농부들은 밀려오는 파도처럼 빚이 쌓여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나무에 약을 뿌리며 농사를 지었지만 아무것도 팔지 못했다. 

~이 포도원도 은행 소유가 될 것이다.  오로지 대지주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과일 썩는 냄새가 캘리포니아 주 전체로 퍼져 나간다. 

~이 달콤한 냄새는 이 땅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커다란 슬픔을 보여준다.  」2권 p253

 

  그런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현실을 어떻게든 살아보려 노력하는 민초의 모습 또한 너무나 가슴 아프게 닮은 꼴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불합리함을 따지고 부조리를 고쳐달라며 대항하는 사람을 우리 사회는 용납하지 않는다.  지금도 경제논리에 위배되는 발언을 하거나 다수의 권익에 앞서서 소수의 양심을 내세우는 사람들을 좌파 내지는 빨갱이라고 부른다.  누가 그들을 '빨갱이'라고 규정지은 것일까?  이 작품 속에 답이 있었다.

 

「"하인즈라는 친구가 있었는데,~그놈은 항상 '망할 놈의 빨갱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어. 

 '망할 놈의 빨갱이들이 이 나라를 무너뜨리고 있다.'  '우리가 이 빨갱이 놈들을 몰아내야 한다.' 

그런데 그때 여기 서부로 온 지 얼마 안 된 젊은이가 ~그런 말을 듣더니 머리를 긁적이면서 이렇게 말했지. 

'하인즈 씨, 제가 여기 온지 얼마 안 돼서 그러는데요,  그 망할 놈의 빨갱이라는 게 뭐죠? 

그랬더니 하인즈가 대답을 했지. 

'우리가 시간 당 25센트를 주겠다고 할 때 30센트를 달라고 하는 개자식들이 다 빨갱이야!'」2권 p148

 

  그렇다면 가진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는 소수자들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를 가진 자들은 그 상태를 영원토록 지속시키기 위해 상대적인 하위계층들을 노예상태로 고착화사키고 중간층을 이용하여 하위계층을 관리감독하게 만든다.  하지만 소수자들은 가진자들의 의도를 하위계층에게 깨우침으로써, 그들의 분노를 응집시켜 그들에게 대항할 힘을 구축시킬 결집체가 되기 때문에 그들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돋보기를 이용해 태양빛을 불로 바꾸기 위해서는 돋보기에 비친 태양빛을 하나의 발화점까지 집약시켜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들은 빛이 하나로 모여 불로 바꿀 수 있는 돋보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대중의 여론을 모아 하나의 요구로

집약시키고 그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행동을 유발시키는 행동인자로서의 소수자는 시대를 바꾸는 큰 힘이 된다. 

 

「"나도 생각을 많이 해 봤는데, 여기서는 보안관보들이 마음대로 들어와서

소란을 피우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이유는 우리가 전부 힘을 합쳤다는 거야.  이 천막촌에서는 보안관보가 누구 한 사람을 찍을 수가 없다고. 

이 빌어먹을 천막촌 전체를 찍어야 하니까.  」2권 p272

 

  하지만 억압받는 일반 대중이 자신들의 중지를 모아낼 소수자를 원하고는 있지만, 이는 피해가 소수자에게 국한되고 자신에게는 오지 않을 때만 국한되어 소수자에게 지지를 보낸다. 결국 앞장선 소수자는 선구자로서 희생당할 수 밖에 없는 필연적 운명의 소유자이다. 

~어떤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가 조합을 만들려고 그렇게 애쓰다가 결국 성공했다더군. 

그런데 자경단 놈들이 노조를 깨 버렸대.  그리고 어떻게 됐는지 아나? 

그 친구가 그토록 도우려고 애썼던 바로 그 사람들이 그 친구를 쫓아내 버렸어. 

 ~자기들도 그 친구와 한 패로 보일 까 봐 무서웠던 거지. 

~'알고 보면 그리 나쁜 일도 아냐.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은 모두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지. 

 항상 그런 식이야.  ~그런 일을 재미로 하는 사람은 없어. 

어쩔 수 없으니까 하는 거지.  자기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그렇지.  그 친구가 감옥에 들어와서 이러더라고. 

'여하튼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리고 사람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남들이 조금 앞서 있을 때 자기가 조금 뒤처질 수도 있지만

완전히 뒤로 밀려나는 경우는 없다는 것 뿐이다. 

~이건 그런 일이 헛수고처럼 보여도 사실은 헛수고가 아니라는 뜻이다.'"」2권 p329

 

  비록 소수자들이 선구자로서의 사명을 마치고 삶을 마감한다고 할지라도 그 행동들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작가는 말한다.  역사적으로 프랑스혁명을 일으켰던 혁명가들의 삶은 비극으로 마감됐지만, 그들의 정신은 살아서 '똘레랑스'라는 정신으로 살아남았다.  작가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네 소식을 어떻게 듣지?  놈들이 널 죽여도 내가 모를 텐데."

톰이 불편한 웃음을 터뜨렸다.

"뭐, 케이시 말처럼, 사람은 자기만의 영혼을 갖고 있는게 아니라

커다란 영혼의 한 조각인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문제 될 게 없죠.  저는 어둠 속에서 어디나 있는 존재가 되니까. 

저는 사방에 있을 거에요.」2권 p401~402

 

  그 소수자들의 노력과 성과들은 그대로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서 '케이시'의 죽음 이후에 '톰'이 그 뒤를 따른 것처럼 그 정신이 사람들 간의 유대의 고리를 만들 것이란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그 믿음을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작가는 결론부분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았던 것은 아닐까?

'독서노트 > 존 스타인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노의 포도>  (0) 2009.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