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J.M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

[야만인을 기다리며]을 통해 본 '인간다움'에 대한 고찰(考察)

묭롶 2008. 11. 29. 00:05

  인간의 이성이 감성을 그리고 욕망을 통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인간다움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考察)들은 인류사 심층부의 잠재된 흐름이었다.  학문의 각 분파에 따라 그리고 종교,

문화, 인종에 따라 '인간다움'에 대한 정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나, 크게 정신적인 의미와

세속적인(보편적인) 의미로 분류해 볼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다움'은

사회 구성원으로 있는 내가 타인으로부터 받는 존중감으로 타자라는 비교대상을 필요로 하는

상대적인 '인간다움'인 반면, 정신적인 '인간다움'은 개인의 주관적인 인식을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사람들은 사회구성원으로서 타인보다 나은 삶을 '인간다운'것으로 여기며

그 삶을 쟁취하기 위해 타인과 경쟁한다.  그렇게 자신의 이상향인 인간다운 삶을 쟁취한 인간은

자신의 전리품인 상대적인 우월감을 타인으로부터 다시 모욕받지 않는 한, 그에 심취해서

무기력하게 마비된 삶을 지속시킨다.  일정의 단계를 딛고 올라서기위해 능동적이었던 이들은,

어느날 그 단계를 넘어서자마자 그자리에 주저앉아 자신이 쌓아올린 것들을 소비하는 수동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야만인을 기다리며』에서 J.M 쿳시는 제국에 대한 본질을 고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유한한 시간 속에 필연인 죽음을 앞둔 인간의 삶을 내보이며 '인간으로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독자에게 묻고 있다.  20여년의 긴 시간을 제국의 국경 변방에서 젊음을 소비하듯 살아온 치안판사가

있다.  이제 젊음은 다 사그라들어 중늙은이가 된 그에게 남은 일은 은퇴를 하고난 후 죽음을 기다리는

일 뿐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육신이 늙어감은 인정하지만

 

「나는 한 시간 동안 팔걸이 의자에 앉아 사타구니에 있는 피의 막대가 작아지기를 기다리고 있다.」P256

 

자신의 가슴 속에 사그라들지 않는 열정은 그에게 일반적인 범주의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호기심과 모험을

선택하게 한다.   『추락』에서도 루리교수가 평범하고 안락한 삶 대신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선택한 삶

(일반인은 이해할 수 없는)을 살았던 것처럼, 치안판사는 제국의 관리로서의 수동적인 삶을 버리고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간다. 

 

「~'참자.  곧, 저 사람은 떠날 것이다.  조만간 다시 조용해질 것이다.  낮잠 시간도 더 길어질 것이고,

우리들의 칼날에도 녹이 더 슬 것이다.  ~제국의 지도에 변방이라고 표시된 선은 희미하고 모호해져 결국

우리는 운 좋게 잊혀질 것이다.'  나는 이렇게 스스로를 유혹하면서 방향을 잘못 잡고 말았던 것이다.

길을 걷다가, 진짜처럼 보여서 들어가 보면, 미로의 한복판으로 들어가게 되는 잘못된 방향선회처럼 말이다.

P232,233

 

  J.M 쿳시에게 있어 '인간다움'은 시간과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수동적인 삶이 아닌 자신의

의지에 의한 '주관적인 삶'이다.  그래서 치안판사의 육신은 보편적인 삶을 지속시키기를 원했으나 그의

주관적인 이성은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선택하게 한다. 

 

「~나는 편안한 시절에 지국이 스스로에게 애기하는 거짓말이고, 대령은 거친 바람이 불며 세상이 험악

해질 때 제국이 애기하는 진실이다.  그건 제국의 통치술의 양면이다.  」P232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평안한 삶이 제국이 주장하는 거짓을 유지시켜주는 대가임을 알게된 그는

더이상 제국이 주는 수동적인 삶을 유지시킬 수 없다.  비록 그 선택으로 인해 그가 모든 것을 잃고 고통의

나락으로 빠져들지라도 그조차도 그에게는 자율적인 삶이기에 그 자신에게는 '인간다운'삶인 것이다.     

 

 「나는 기분이 좋은 이유를 안다.  제국 수호자들과의 연합은 이제 끝났다.  나는 반대편에 서게 됐다.

~나는 자유인이다.  누군들 웃지 않으랴?  하지만 얼마나 위험한 기쁨인가!  구원을 받는게 그렇게

쉬워서는 안 되는 법이다. 」P133,134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자신이 살아가는 삶이 정말 자신에 의해 살아지는 삶인지를 망각한 채 지낸다.

그러다가 불현듯 기억상실로 엉뚱한 장소에서 엉뚱한 사람으로 살고 있다가 갑자기 기억이 돌아온

사람처럼 자신이 살아온 인생 전체를 낯설어하며 황망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 이유는 주어진 환경과

자신에 대한 본질적인 자각 없이 수동적으로 주어진 것만을 소비하며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삶에는 그 어느 곳에도 '나'는 없다. 그때서야 나의 주관적인 '인간다움'을 찾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모든 삶의 순간순간에는 '내'가 있어야 한다.  주어진 삶일지라도 그 속에서의 '나'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은 비록 남들 눈에 비루한 인생일지라도 '나'에게는 '인간다운' 것이 된다.

  우리는 삶이라는 미로 속을 헤메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출구를 찾아야하는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서서히 죽어가게끔 독이 든 미끼가 있는 곳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늦은 밤 내가 가는 길이 내가

원한 길이었는지를 다시금 반추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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