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자료/문예사조사(2)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묭롶 2008. 10. 27. 13:27

 

  자연주의가 도래하기 이전의 시기는 낭만주의가 예술을 지배하던 시대였다.  낭만주의 시기의 예술은

“예술을 위한 예술”을 이상향으로 삼는다.  낭만주의의 대표 사조인 “예술을 위한 예술”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이를 다른 말로 바꾸어 본다면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예술”이 될 것이다. 

형이상학적으로 예술은 작품 그 자체로 가치를 갖지만 형이하학적으로 바라봤을 때 예술은 그것을

향유하는 계층을 위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낭만주의는 예술을 향유하는 계층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시켜주는 기능을 했으며,그들 계층만의 변별력을 갖게 해 주었다.  프랑스에서 7월혁명과 시민왕정을

거치면서 과거 지배층이었던 왕족과 귀족들의 자리를 자본주의를 등에 업은 부르즈와지가 승계하게 된다. 

새로이 파생된 계층은 과거 지배층이 향유했던 낭만주의에 반감을 갖게 되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파생된

것이 자연주의이다.  하지만 새로이 주도권을 쥐게 된 부르즈와지는 낭만주의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고,

이는 제2제정기의 연극, 오페레타, 그랜드 오페라의 양식으로 나타나게 된다.  사회의 주도적인

세력으로부터 외면 받던 자연주의는 소설의 형식을 통해 자본과 결탁하면서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편입되게 된다.  인쇄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독자층의 증가는  과거 영웅이나 신화에 한정되었던 소설적

인물들을 자연주의의 사실적인 관찰을 통해 개인에 주목하게 한다.  그 결과 자연주의는 사회소설과

심리소설을 낳게 된다.  또한 이러한 자연주의적인 관찰은 급속한 산업사회의 발전으로 인한 여러 가지

사회적 괴리 현상을 주목하게 한다.  산업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으로 인해 형성된 불안감은 불안한

현실적으로 표현하는 자연주의에 대한 배격을 가져와 다시 환상적인 낭만주의로의 복권을 꾀하게 한다. 

그러한 움직임은 인상주의로 표현되는데, 인상주의는 순간적인 사실의 포착과 그 이미지를 중요시한다. 

예술은 다시 작가중심주의로 돌아가 독자나 관객을 외면하는 상징주의와 모더니즘을 낳게 된다. 

그렇다면 자연주의나 인상주의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법이나 이론의 공통성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영국, 러시아나 기타의 국가에서 다른 형태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그 장르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각 나라가 과거로부터 이어온 문화 속에 유입된 문예사조가

융합되어 각기 다른 양상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문예사조는 인종, 문화, 지역에 따른

변별력을 구분 짓는 한 방법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자연주의, 인상주의라는 문예사조는

어느 한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문예사조 속에서 파생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을 수용하는 계층의 수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과거의 문예사조에 대한 반발로

생겨나는 것이 또한 문예사조가 아닐까?  발자끄가 자연주의의 리얼리즘에 의해서 한 관찰이 결국은

다음 세대를 예견한 예언가적인 역할을 했던 것처럼 한 시대의 문예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미래의

문예사를 미리 예견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영화는 다른 예술장르와는 달리 미리

대중의 수요를 예측하여 제작된다는 차이점을 갖는다.  영화의 대표적인 표현기법인 몽따주, 클로즈업,

쇼트커팅은 인상주의의 기법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인상주의 시대 문학에서 보이기 시작한

우연성과 순간적인 상황의 포착에 기인한다.  현재 영화장르가 보이는 위기는 영화가 그 본질 안에

문학적인 서사를 중심으로 하고 있음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새롭게 시도되는 예술장르

로서의 영화가 나아가야 할 길은 사람들에게 보는 순간의 현혹이 아닌 인간 고유의 정서를

환기시킬 수 있는 새로운 미학을 형성하는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연주의>>

 <자연주의>

  우리가 흔히 19세기라는 말로 이해하는 시대는 1830년경에 시작한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7월혁명과

시민왕정을 거쳐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이 각성됨과 동시에 사회주의 이론이 어느 정도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고, 또한 과거에 있었던 어떤 운동보다도 급진적이고 일관된 예술적 행동주의 프로그램이

 성립된다. 그러한 예술적 행동주의 프로그램은 낭만주의에 반대하는 여러 가지 움직임을 파생시켰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낭만주의자들은 부르즈와지에 편향하였고 이후 제2제정기의 예술생활을 지배한

것은 물질적으로 안락하고 정신적으로 태만한 부르즈와지의 구미에 맞는 안이하고 기분 좋은 작품이었다. 

자연주의는 프롤레타리아 예술가의 운동에서 시작한다.  이 시기의 자연주의는 차후의 여러 발전

형태들의 싹을 모두 내포하고 있으며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예술작품을 낳기는 했지만, 자연주의는

지배계급의 자기보존 본능에 의해 배격 당한다.  낭만주의는 아직도 대중적 요소를 지니고 있었는데

반해, 자연주의는 적어도 그 가장 중요한 작품들에서는 일반 독자의 흥미를 끌 요소가 전혀 없게 된다. 

자연주의의 승리는 플로베르의 피소사건과 쎈쎄이션을 일으킨「보바리 부인」의 성공에서 시작된다. 

비록 일반 독자들의 관심이 순수한 예술적 근거에 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일반 독자들의 관심이

진보적 문학에 대한 비평가들의 태도를 바꿔놓은 것이다. 자연주의란 실상 새로운 관습을 지닌

낭만주의이지만 현실의 예술적 묘사에 정밀과학의 원칙을 적용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낭만주의와

별된다.  하지만 자연주의적 입장의 가장 주요한 근원은 1848년 세대의 정치적 경험이다. 

  모든 이상과 유토피아가 실패하고 난 후 이제 사람들은 사실에만 집착하고자 한다.  자연주의의

이러한 정치적 근원이 그 반낭만주의적이고 도덕적인 경향들을 설명해준다.  1848년의 혁명은 문학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기존의 연재소설의 작가들이 다수 대중들을 위해 썼던 것에 반해 자연주의자들은

애초부터 대중들을 위해 쓰는 것을 목표로 한다.  1830년부터 1848년 사이에 생활의 정치화가 진행됨에

따라 문학에서의 정치적 경향도 강화되었다. 문학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드러냈던 문필가들은

향후 저널리즘의 시초가 된다.  이 시기 문학과 일간신문의 결합은 문학적 생산의 모든 성격을 바꾸어

놓는다.  신문의 판매부수를 높이는 일환으로 시작된 신문소설은 그 엄청난 수요를 채우기 위해

인기작가들은 대리필자들을 고용하기에 이르고, 소설은 거의 기계적으로 생산되기에 이른다. 

이때부터 문학작품은 문자 그대로 ‘상품’이 된 것이다.  신문에 연재되는 소설에는 동시대의

대중연극에서와 같은 형식원리와 취미기준이 지배한다. 흥미위주와 자극적인 소재를 중심으로 하는

연재소설은 독자들의 대중화를 불러일으키는데, 이것은 독자대중의 거의 완전한 평준화를 의미한다.

 

  <자연주의 소설>

  소설의 역사는 중세의 기사들에 관한 서사시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이후 인쇄술의 발전으로 인한

책의 직접 구독과 더욱 집중된 형식을 추구하는 르네쌍스의 예술관은 중세의 산만한 서술방식을

벗어나 더욱 치밀하고 덜 삽화적인 표현방법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소설형태의

단일화․단순화를 향한 결정적 전환은 프랑스 고전주의에 의해서 비로소 이룩된다.  이후 18세기의

소설문학에서는 스토리의 심리적 움직임에 주의가 집중되고, 외부적 사건들은 그것이 정신적

반응을 일으키는 한에서만 문제가 된다.  소설의 이러한 심리화는 그 시대의 문화가 경험한

면화․주관화의 가장 두드러진 증거다.  소설은 18세기에 주도적 문학장르가 되는데, 그것은

소설이 그 시대의 문화적 문제, 즉 개인주의와 사회 사이의 대립을 가장 포괄적으로 깊이 표현하기

때문이다.  낭만주의는 소설에서 개인과 세계, 꿈과 생활, 시와 산문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의 가장

적합한 서술방법을 체념의 가장 깊이 있는 표현에서 찾아냈다.  괴테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 낭만주의와 정반대되는 해결책을 찾는데, 이는 낭만주의적 현실도피가 완전히

헛된 것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19세기의 가장 특징적 산물이며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예술형태인 자연주의 소설은 새로운

대의 비낭만적 정신을 표현한다. 계급투쟁이라는 범주에서의 정치적 사고와 더불어 경제적

합리주의는 소설가에게 사회적 현실과 사회심리학적 메커니즘의 연구를 불가피하게 했다. 

부르즈와지의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근대 자본주의의 근본적 경향은 여러 가지 증상을 나타낸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비인격화의 경향, 즉 경제기업의 전 메커니즘에서 개인의 환경에

대해서 고려하는 모든 직접적․인간적 영향을 배제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메커니즘 아래

노예화된 사람들의 양상은 이 시기 문학에 있어 회의와 비관주의로 나타나게 된다.  스땅달과

발자끄는 괴테보다 현실 세계의 팽배한 긴장을 훨씬 더 날카롭고 현실감 있게 판단했다. 

그들의 태도는 낭만파의 현실모멸과 괴테식의 낭만주의 비판을 모두 극복한 것이다.  사회문제의

해결 가능성에 대해서 일체의 환상을 허락지 않는 냉철한 현실사회 분석에서 그들의 비관주의가

생겨난다.

 

 <스땅달과 발자끄의 자연주의>

   스땅달과 발자끄가 상황을 묘사함에 있어서 보여준 리얼리즘과 사회를 움직여가는 변증법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통해 표현된 사회소설은 본격적인 근대소설의 면모를 갖춘다.  소설 속에서 표현된

그 인물의 리얼리티와 신뢰도 및, 그를 통해 사회적 문제성을 제기하는 데서 비로소 그 인물은

새로운 자연주의 소설의 대상이 된다.  19세기의 대표적 인물들 가운데 스땅달처럼 낭만주의의

유혹과 그것에 대한 저항을 똑같이 공유하고 있는 예는 없다.  외면적으로는 철저히 합리주의자요,

실증주의자이지만 그는 심정적으로는 낭만주의자다.  스땅달의 사상이 부분적으로 매우 낭만적인

성격을 띤 복합적인 것임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는 그의 보나빠르띠슴이다.  탐미주의적인 천재

찬양과 더불어 이러한 나뽈레옹 숭배는 한편으로 벼락출세자와 사회적 상승의지에 대하 승인이며,

다른 한편으로 반동과 암흑세력에 의해 희생된 패배자와의 연대감을 뜻한다.  스땅달의 소설들은,

무엇보다 마음의 움직임과 감정의 메커니즘과 작가의 정신활동을 포착하려고 하는 일기장과

케치들의 집합 같은 느낌을 준다.  표현의 고백과 주관적 전달이 진정한 목적이며, 체험의

흐름 및 그 흐름의 리듬 자체가 소설의 대상인 것이다.  이러한 즉흥적인 성격은 낭만주의 이후의

현대적 예술의 공통점이다.  고전주의 시대에는 가장 완벽하고 명석한 작품의 작가가 가장 위대한

문학가로 여겨졌으나, 현대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작가란 많은 것을 암시하는 데 그치고 입을

다물어 독자가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사람이다.  스땅달 예술의 심리적 수법의 핵심은

독자를 움직여서 작가의 관찰과 분석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는 데 있다.

  발자끄는 뛰어난 문학적 초상화가로 지칭되어왔으며, 그의 예술의 위대한 효과는 그의 인물

묘사력에 기인한다.  그에게 한 인물은 그 자체로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사회적 그룹의

대표자로서, 상반된 계급적 이해관계 사이의 갈등의 대변자로서야 비로소 흥미가 있고 중요성을

띤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를 이익추구와 권력추구의 이상발달로 진단하고, 그 시대의 이기주의와

무신앙에서 악의 근원을 찾는다.  발자끄는 놀랍도록 날카롭게 그의 세대가 서 있는 호경기 시대의

증상을 기술하고, 자본주의 체제에 내재하는 숙명적인 모순을 투시한다.  발자끄의 세계관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사실을 냉정하고 정직하게 관찰하는 리얼리즘이다.  그는 귀족의 장단점을

판단하는 것과 똑같은 객관성으로 일반대중의 선악을 판단한다.  발자끄는 자신의 작품에서 자신의

세대보다 다음 세대의 모습을 더 잘 그린다는 점에서 관찰보다 비전이 더 강했던 문학적 예언자의

한 사람이다.  발자끄는 「알려지지 않은 걸작」에서 19세기 예술의 운명을 예견하고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는 생활과 대중으로부터 예술이 소외된 결과를 인식했으며, 예술을 위협하는

심미주의와 허무주의와 자기파괴의 위험을 가장 학식 있고 날카로운 동시대인보다도 더욱 정확하게

파악했던 것이다. 

 

  <플로베르의 낭만주의 비판>

  플로베르의 낭만주의의 비판은 낭만주의의 수요자인 부르주와에 대한 반감을 낳는다.  하지만 정작

플로베르의 부르즈와 기질은 무엇보다도 꼼꼼한 작업방법과 엄격한 자기단련, 그리고 이른바 천재형의

무질서한 창작방식에 대한 반감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낭만주의에 대한 플로베르의 반감은 또한

하나의 인간형으로서 ‘예술가’에 대한 반발심, 무책임한 몽상가와 이상주의자에 대한 그의 혐오감과

직결되어 있다.  자기기만을 두려워한 나머지 허무주의자가 된 것이다.  그에게 있어 유미주의는

낭만주의가 가졌던 사회학적 의미에 비할 수 있는 심리적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이미 참을 수 없게

된 현실로부터의 일종의 도피인 것이다.  플로베르의 유미주의는 단순 명백하고 최종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항상 그 방향을 바꾸며 스스로를 의문해보는 변증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그의 허무주의가

뜻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철저한 경멸이요 부정인 것이다.  결국 그는 작품을 씀으로써 낭만주의에서

벗어난다.  그는 낭만주의의 허황된 꿈의 허위성과 불건전함을 폭로하기 위해 낭만적 꿈의 세계를

일상생활의 현실과 직면시키는 자연주의자가 된다.

 

  <졸라의 자연주의>

  졸라는 인간의 모든 행동이 생활의 물질적 조건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의식하기는 하지만,

그 조건들이 불변의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졸라는 예술을 과학의 시녀로 보는데, 이러한 관점은

플로베르를 계승한 것이다.  하지만 플로베르가 자신의 예술적인 공적 이상의 다른 것을 주장하지

않음에 반하여, 졸라는 과학자로 인정받기를 바라며 과학자로서의 신빙성에 의해 예술가로서의

명성을 얻고자 한다.  이것은 사회주의의 일반적 성격이요 과학만능주의, 과학에 대한 일종의

주물숭배의 표현이다.  그는 자연과학에 열광한 나머지 단순히 실험적 방법을 문학에 응용함으로써

소설에서의 자연주의를 정의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의 과학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는

본질적으로 낭만주의자이다. 왜냐면 그의 편파적이고 비변증법적인 현실의 합리화와 도식화는

이미 대담하고 무자비한 낭만주의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사회소설>

  부르즈와지에 대한 증오가 엄격․냉혹한 자연주의로 표현된 프랑스에서와 달리, 17세기 이후

아무런 혁명이나 실패도 겪지 못한 영국에서는 제2의 낭만주의 운동이 성립된다.  이러한 제2의

낭만주의 운동은 디즈레일리의 종교적 낭만주의와 칼라일의 사회적 낭만주의로 나뉜다.  라파엘

전파의 그림은 본질적으로 비회화적인 주제들을 어떤 회화적 가치와 연결시키는데, 그 결과는

대단히 매력적일뿐더러 새롭기도 하다.  라파엘 전파의 미술은 하나의 심미주의적 운동, 극진한

미의 예찬, 예술을 근거로 한 생활의 평가였다.  빅토리아 시대의 일련의 대표적 사회비평가들

중에서 제3의 인물인 윌리엄 모리스는 예술의 운명을 사회의 운명에 결부시킨 러스킨의 이론에서

최종적 결론을 끌어내어, “사회주의자를 만드는 것”이 훌륭한 예술을 만드는 것보다 더 긴급한

일이라는 확신에 이르렀다.  그는 예술을 좀 더 잘 감상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의 창조가

유일한 열쇠임을 알았다.  그는 사회적 과정과 이에 따른 예술의 발전이 이루어지는 형태로서

계급투쟁을 완전히 의식했고, 이 의식을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주입시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임무로

생각했다.  근대의 사회소설은 프랑스에서와 같이 영국에서도 1830년경에 성립하여 나라가 혁명의

벼랑에 서 있던 1840년부터 1850년까지의 소란스러운 시기에 그 절정을 맞이한다.  그러나

프랑스와 다르게 영국 소설에서는 프랑스의 경우보다 토론된 문제들이 더 구체적이고 보편타당한

것인 반면 덜 주지주의적이고 세련된 것이며, 작가들의 위장은 더욱 인도적이고 애타적이지만

동시에 한층 더 유화적이요 기회주의적이다.

 

 <영국의 심리소설>

  영국 소설사에서 내면으로의 전환은 죠지 엘리어트의 작품과 함께 완수된다.  그녀는 근대사회에서

아무도 고립된 자율적 생존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그녀의 작품은

사회소설이다.  또한 그녀의 소설에서 외적 사건과 모험 대신에, 도덕적 문제와 위기가 작중상황의

중심에 선다는 점에서 그녀의 작품들은 심리소설이다.  그녀의 예술은 낭만주의와의 단절을 뜻하며,

낭만주의가 창조한 정신적․도덕적 가치들을 근본적으로 비낭만적인 다른 가치들로 대체시키려는

최초의 성공적 기도를 뜻한다.  사회소설이 기본적으로 아직 부르즈와지와 결합해 있던 교양계층의

문학형식이었듯이, 심리소설은 부르즈와지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에 있는 교양계층으로서의 지식인의

문학적 장르이다.  부르즈와 사회에서 교양계층은 지배계층에게 있어 중요한 기능을 완수하는데,

그것은 교양계층이 억압될 위험에 있는 양심의 갈등을 표현함으로써 부르주와지 자체 내의 긴장을

위한 출구를 제공했던 것이다.  부르즈와지와 아직은 일체였던 교양계층은 개혁의 선봉자였으나,

부르즈와지로부터 떨어져나온 지식인은 반항과 분해작용의 요소가 된다.  보헤미안들은 그들

자신이 이미 프롤레타리아트의 일부이면서, 그들은 지식인의 완성단계를 대변하면서 동시에

지식인의 캐리커쳐를 대변한다.  프랑스와 달리 영국에서는 시민계급과의 결합이 아직도 매우

밀접하기 때문에, 지식인은 광범한 대중과 협력하기보다 차라리 ‘귀족주의적 도덕사상가’의

위치로 도피하는 쪽을 택했다. 

 

 <러시아의 소설>

  근대 러시아 소설은 본질적으로 러시아 지식인의 산물인데, 이들은 제정 러시아의 기성체제와

결별한 정신적 엘리뜨들로서 문학은 무엇보다도 사회비판으로, 그리고 소설은 ‘사회소설’로 이해한다. 

러시아 소설의 가장 위대한 작가인 도스또예프스끼와 똘스또이도 지식인에 완전히 속해 있지는 않다. 

러나 이 두 작가는 사회비판적 태도에 있어 지식인의 사고방식에 의존하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지식인과 거리를 두고 있지만 그들의 예술을 통해서 지식인의 파괴적 작업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소설은 서구소설보다 훨씬 더 엄밀한 의미에서의 경향문학이다.  서구문학에서보다

사회문제가 훨씬 더 많은 지면과 훨씬 더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훨씬 더 오랫동안 절대적인

우위를 지켜나간다.  그 원인으로는 제정러시아의 압제 하에서 지적 에너지가 문학을 통해서만

작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검열제도는 문학작품을 사회비판이 가능한 유일한 배출구로 만들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자연주의와 낭만주의>

   심리관찰이 날카로운 점에서 도스또예프스끼는 자연주의 소설의 가장 발달된 형태를 대표하지만,

일반적인 자연주의의 기법에 비추어볼 때 꿈처럼 과장된 상황과 환상적으로 그려진 인물들을 즐겨

쓰는 그의 태도는 자연주의에 대한 반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소설의

역사에서 도스또예프스끼가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는 무엇보다도 현대의 대도시의 구성원들을 계층을

망라하여 처음으로 자연주의적으로 그려냈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작중인물로부터 그들의 출신계급을

말해주는 계수를 빼버리려 한다.  그는 그들 상호간의 경제적․사회적 장벽을 헐어버리고 그들 모두들

공통 운명체로 묶는다.  도스또예프스끼가 연극적 수법을 쓰는 것은 줄거리 전체에 극적 생기를

채워주고 서사시적 인생관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그의 극적 장면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여러 개의 독립된 초점들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과 모자이끄 식으로 뜯어 맞춘

피소드들을 위해서 연속성을 희생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현대 표현주의 소설형식의 원칙을

예고해준다. 

 

 <똘스또이>

  똘스또이의 목표는 자기완성과 영혼의 구제이다.  그에게 있어 계급차별에 대한 투쟁이나

여러 가지 정치이념들은 그 체제를 통해 자기 자신의 구원을 기대하는 어떤 공동체 생활에 대한

향수인 것이다.  이러한 정신주의와 자기중심주의가 그의 사회적 복음의 비현실적이고 공상적인

성격과 그의 정치적 주장의 내면적 모순을 설명해준다. 그는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 비판을

가하지만 그 폐해에 대한 진정한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고 애초부터 모든 정치활동의 포기를

의미하는 도덕률을 설교한다.  하지만 똘스또이의 예술과 사상을 불모성과 무기력의 운명으로부터

지켜주는 것은 그의 타협할 줄 모르는 합리주의 정신이다.  러시아 정교에 대한 도스또예프스끼의

열성이나 슬라브파 공통의 친교회적 경향 모두 그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그가 신앙에 도달한

것은 합리적이고 실용주의적이며 의식적인 방법을 통해서였다.  거의 모든 종교적 행위는 하나의

‘합목적적’인 고행이요 동양적 규범에 따른 기독교의 수행이다. 똘스또이 소설의 형식이 서구소설의

형식과 다른 점은 자아와 세계에 대한 그의 개념이 플로베르의 개념과 매우 다르다는 사실에서

주로 연유한다.  그는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불가피한 비극으로 보지 않고, 18세기적인 의미에서

통찰과 이해와 도덕적 진지성의 결여로 야기된 불행이라 본다. 

 

 <<인상주의>>

  프랑스에서 1885년의 세대에게 속죄양 취급을 당한 졸라의 자연주의는 허무주의를 극복하려고 했던

사람들의 유일한 진지한 시도를 대변한다.  1880년대 후반기 이래의 문학계는 졸라에 대한 공격과

주도적 운동으로서의 자연주의를 해체하려는 움직임이 휩쓸었다.  사람들이 자연주의에서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자연주의는 파괴적이며 인생에 적대적이라는 것이다.  1885년 세대는 자연주의에

반대하여 인간성을, 창조적인 삶을, 하나님을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인상주의를 가장 단순하게

정의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지속과 존속에 대한 순간의 우위, 모든 현상은 어쩌다가 일시적으로 그렇게

놓여 있을 뿐이라는 느낌, 두 번 다시 발 디딜 수 없는 시간의 강물 위로 사라져가는 하나의

물결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인상주의적 시선은 자연의 모습을 생성과 소멸의

한 과정으로 변모시킨다. 인상주의적 시선은 수동적이고 관조적인 심미주의적 태도를 드러낸다. 

심미주의는 인상주의 시대에 와서 발전의 절정에 달한다.  심미적 문화는 낭만주의보다 한술 더 떠서

예술을 위해 인생을 버릴 뿐 아니라 예술 자체 속에서 인생의 정당화를 찾는다.  또한 인상주의의

심미적 세계관은 예술에 있어 완벽한 자기수정과정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제는 예술 자체가

예술의 참다운 대상이 됨으로써 문화의 세례를 받지 않고 조형되지 않은 본래 그대로의 자연은

심미적 매력을 잃고 자연성의 이상은 인공성의 이상에 밀려난다.  그럼으로써 인상주의는

자기중심적인 심미적 문화의 정점으로서 실제적이고 활동적인 삶에 대한 낭만주의적 체념의 극단적

귀결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사이의 경계선은 유동적인 것이어서, 역사적으로나

개념적으로나 두 경향을 엄밀히 구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산업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해 경제활동은

‘자유로운 실력경쟁’에 따라 철저히 조직화되고 합리화된 체제로 변모해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발생한 노동자와 시민계급의 노동운동으로 인해 사람들은 체제가 정립되지 않은 과도기의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위기의 분위기는 이상주의적․신비주의적 경향들을 부활시키고 압도적인

비관주의에 대한 반동으로서 강력한 신앙운동을 불러일으킨다. 인상주의의 현실묘사는 순간적․일회적인

것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자연주의의 중요한 성과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경험의 시각적 요소를

념적 요소에서 분리시키고 시각적인 것에 애써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인상주의는 지금까지의

모든 예술에서, 따라서 자연주의에서 멀어진다.

  문학에서의 인상주의가 비교적 일찌감치 자연주의, 실증주의, 유물론과의 연결고리를 잃고 거의

출발부터 익히 알려진 이상주의적 반동의 역할을 떠맡은 데에 비하여, 회화에서는 인상주의가

해체된 다음에야 그러한 반동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점을 갖는다. 인상주의적 방법의

특수성은 이전의 예술이 겉보기에는 통일된 작용을 하면서도 실은 이질적인 것들로 뭉쳐지고

개념적 요소와 감각적 요소를 함께 지닌 의식적인 이미지에 근거를 두고 묘사한 데 비하여,

인상주의는 순수하게 시각적인 것의 동질성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인상주의는 대상의 요소들을

보여주며, 경험의 전체상이 아니라 경험을 이루는 구성의 재료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상주의적

방법은 일련의 환원작용을, 체계적인 제한과 단순화를 가져온다.  인상주의 회화의 제일 큰 특징은

어떤 일정한 거리에서 감상해야 하고 사물을 얼마간의 생략이 불가피한 원경으로 그린다는 사실이다. 

 

  <상징주의> 

  1880년대 사람들은 당대의 심미적 쾌락주의를 ‘데까당스’라고 즐겨 불렀다.  1890년 이후

‘데까당스’란 말은 암시적인 느낌을 잃어버리고 ‘상징주의’가 주도적 예술경향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인상주의와 상징주의를 구별하는 것은 때로는 매우 어렵다.  두 개념은

대립적인 면도 있고 동의어적인 면도 있다.  비합리주의적․정신주의적 입장이라는 점에서 상징주의는

또한 자연주의적․유물론적 인상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반동을 뜻한다.  인상주의에서는 감각적 경험이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최종적인 것임에 반하여, 상징주의에서는 일체의 경험적 현실은

단지 관념세계의 비유일 뿐인 것이다.  한편 상징주의는 낭만주의에서, 즉 시의 핵심으로서의 메타포의

발견에서 시작하여 인상주의의 풍성한 형상들로 인도한 발전과정의 총결산을 대변한다.   상징주의는

시의 임무가 명확한 형태의 틀에 박을 수 없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접근할 수 없는 어떤 것을 표현하는

일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영국의 모더니즘과 러시아의 인상주의>

  1880년대 영국 문학 및 예술에서의 자유주의적 경향은 비정치적 개인주의의 성격을 띠었다. 

이 시기 젊은이들의 반속운동은 예술을 이해 못하는 시민들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속물혐오는

그것 자체가 다시 하나의 새로운 인습이 되고 마는데 영국에서 모더니즘을 온통 지배하는 것은 바로

이 속물혐오의 경향이다.  예술가의 모든 특이성과 매너리즘은 예술의 멋을 모르는 위선적인 속물적

세계관에 대한 항의로 해석할 수 있다.  러시아의 인상주의는 체호프에 의해서 표현되었다.  그는

모든 외면적 사건의 삽화적․비핵심적 성격을 강조하고, 작품의 격식에 맞춘 구성이나 집중 및 통합을

포기하며, 주어진 틀을 경시 혹은 무시하는 중심 없는 작품 형식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한다.

 

 <자연주의 연극의 문제>

자연주의가 극예술을 정복하는 것은 1880년대인데 이 시기는 소설에서는 자연주의가 이미 쇠퇴하기

시작한 다음이다.  엄격한 의미에서의 자연주의 연극은 스칸디나비아 제국과 독일 및 러시아에서

형성되었다.  자연주의 연극은 현대적 소극장 운동을 향한, 다시 말해서 극적 갈등의 내면화 및 무대와

관객 간의 좀 더 친밀한 연관성을 향한 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연극에서 사건의 줄거리보다 내면성,

기분, 분위기, 서정성 등이 우위에 놓이게 되는 현상은 인상주의 그림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야기적인 요소가 차츰 제거되어감을 뜻한다.  이 시대의 모든 예술에는 심리주의와 서정주의로

기우는 경향이 있으며 ‘이야기’를 기피하고 외적 움직임을 내적인 것으로 대체하고 플롯을

세계관․인생해석으로 대체하는 경향은 바로 새로운 예술의욕 자체의 기본적 특징으로서 모든 분야의

전면에 부각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새로운 연극에 대해 가해진 가장 격렬한 비판은 그 결정론과

상대주의에 대한 것으로서, 이는 물론 자연주의적 세계관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었다. 

 

 <<영화의 시대>>

  <인상주의 이후의 시대>

  1929년 발생한 미국경제의 파탄으로 인해 사람들은 도처에서 자본주의의 위기를 논하게 되었다. 

1930년대의 역사는 사회비판의 시대, 사실주의와 행동주의 시대의 역사이다. 20세기의 거대한 반동의

물결은 예술분야에서 인상주의의 부정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전환은 르네쌍스 이래 다른 어느 스타일

변화보다도 더 심각한 예술사상의 단절을 가져왔다.  입체파․구성주의․미래파․표현주의․다다이즘․초현실주의

등은 하나같이 자연을 따르고 현실을 긍정하는 인상주의로부터 단연코 돌아선 것이다.  인상주의 이후의

예술은 이미 자연의 재현이라고는 도저히 부를 수 없다.  이 예술이 자연과 갖는 관계는 일종의

폭력적인 것이다. 

  19세기 소설에서 영혼과 성격은 세계와 현실의 대응점을 뜻하는 것이며 심리학은 주관과 객관, 자아와

비자아 내면과 외계의 대립 혹은 절충이 이루어지는 영역이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심리학의 지배가

프루스트에 이르러 끝을 맺는다.  그의 관심사는 개인 성격의 묘사라기보다 정신구조 자체의 분석에 있다. 

조이스의 「율리씨즈」는 프루스트 소설의 직접적 계승자이다.  조이스는 사건의 흐름 대신에 상념과

연상의 흐름을, 개인적인 주인공 대신에 의식의 흐름과 끝없이 계속되는 내면적 독백을 그린다. 

베르그쏭의 시간 개념은 여기서 새로운 해석과 새로운 강조, 새로운 방향을 얻는다.  이러한 새로운

시간관 속에 소설 줄거리의 포기, 주인공 인물의 제거, 심리소설의 와해,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에서의 몽따주 수법 및 시간․공간을 혼합한 형식을 들 수 있다.  영화의 수법과

새로운 시간 개념의 특징은 너무나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이어서 현대예술의 시간 범주가 영화의

정신에서 태어난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와 다른 예술 간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유동적이라는 점이다.  영화에서

공간은 동적인 성격을 띠며, 시간 역시 거의 공간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즉 순간들의 배열순서에 일종의

자유가 생긴다.  영화에서 시간의 참된 공간화는 평행하는 플롯들의 동시성이 묘사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사물이 멀고도 동시에 가까운 상태, 시간적으로 서로 가까우면서 동시에 공간적으로는 먼 상태에서 비로소

시․공간의 내적 결합이 이루어지는데, 바로 이러한 시․공간의 통합이야말로 영화 본연의 세계이며 영화적

대상 성립의 기본 범주가 되는 것이다.  두 가지 사건의 동시성을 묘사하는 것에 대표적인 기법이 바로

쇼트커팅과 몽따주이다.  활동사진이 영화예술로 발달하는 데는 두 가지 업적이 그 기초를 이루었다. 

하나는 미국의 영화감독 그리피스의 공로라고 하는 클로즈업의 발명이요, 다른 하나는 이른바

‘쇼트커팅’이라 하여 러시아인들이 발견한 새로운 화면삽입 수법이다.  러시아 영화기법의 새로운 요소는

설명적인 긴 장면들을 완전히 빼버린 채 모든 화면을 클로즈업에 한정시킨 것과 몽따주 사진 하나하나를

지각한계까지 짧게 단축시켰다는 점이다.  이러한 화면을 통해 그들은 전혀 이질적인 존재들을 대면시킨다. 

'문창자료 > 문예사조사(2)'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  (0) 2008.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