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존 윌리엄스>

<스토너> 파도가 덮치면 곧 사라져 버릴 모래 위에 그린 그림과 같은 인간의 삶을 소설 속에 담다.

묭롶 2019. 2. 7. 19:09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스토너의 동료들은 그가 살아있을 때도

그를 특별히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의 이름을 잘 입에 올리지 않는다.  」p8


  책을 읽고 이럴 수는 없는데, 이렇게 허탈하면 안되는 건데

설마 아니겠지......  싶은 생각에 다시 첫장을 펼쳐 보았다. 

그순간 다시 첫장부터 스토너가 삶을 시작했다면 어떠한 삶을

살았을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스토너는 스토너 자신의 삶을 살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도 안 돼서 그는 이 결혼이 실패작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1년도 안 돼서 결혼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렸다.」p107


  스토너는 1920년대 초반 농가에서 태어났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왔던 그를 아버지는 대학에 보냈다.

  그저 막연히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2년의 과정을 마치면 농사에 관련된 전문 지식을 취득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그의 계획은 아처 슬론 교수의 문학

수업을 듣는 순간 교육자의 길로 급선회를 하게 된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단 한번도 고민해보지

않았지만 그저 그의 깜깜한 삶에 빛을 밝히는 문학의 아우라를 방향 삼아 교직의 길을 걷게 되었다. 

  사랑에도 정치에도 서툴렀던 그는 애써 지은 농사를 짓밟아 놓는 자연재해처럼 자신의 삶이 자신의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묵묵히 인내하며 그 자신이 문학 속에서 길어올리려는 열매를 향한 학문적 탐구를 멈추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지적인 교류를 통해 케서린과 잠깐 동안의 사랑을 나누게 되지만 그 또한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채

헤어지게 되고 자신이 사랑했던 딸의 삶이 망가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고통 속에서 암에 걸려 죽는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생각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이 책이 망각 속에 묻혔다는 사실,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작은 일부가 정말로 그 안에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p388~392


  우리 모두가 '스토너'라는 책 뒷면에 쓰인 글처럼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타인이 보기에 이해할 수 없고

비참하며 불행하다 할지라도 그건 그 사람 자신이 써나가는 자신만의 몫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다시 깨닫게 된다. 

하다못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작중인물 이디스일지라도 그녀의 모든 행동과 노력이 자신의 삶을 붙들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막연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나 또한 한때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잘못된 선택을 했고 그 대가를 굉장히 오랜시간 치러냈기에

나는 스토너의 삶도 마음이 아팠지만 그만큼이나 이디스의 삶에도 큰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를 지니고 있다.  찰스 워커를 스토너교수의 세미나에 보내서 결국 스토너의 삶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만 로맥스교수까지........ 어쩌면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처럼 '하지 않는 편'을 택하는 삶도

있는 것이기에..........


「이제 중년이 된 그는 사랑이란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p274


  나는 이책을 읽고 내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이켜 보게 되었다.  꿈이라는게 과연 있기는 했을까?

꿈을 꾸는 것이 사치로 느껴질만큼 각박한 현실 속에서 중학교도 가기 전부터 어떻게 하면 가족이 흩어지지 않고

계속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했던 나는 '나'라는 삶을 허락받지 못했다고 생각했었다.  이미 삶에 대한 희망보다는

포기를 먼저 배운 나를 지배한 것은 좌절과 분노였고 나는 굉장히 오랜시간을 자학과 분노 속에서 내 자신을 소진시켜

왔다.  그리고 작중인물 스토너 교수가 이미 사랑을 포기하고 급격히 노화해버린 시기인  마흔 세살보다 나이를 더 먹은

마흔 네살의 나는 이책을 읽으며 나의 모든 삶이 가장 아프고 고통받는 순간조차도 내가 꿈꾸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임종을 앞둔 스토너가 자신이 쓴 책에서 자신의 삶 전체를 위로받는 대목에서 나는 가장 아팠던 순간이 지금까지의

나를 지탱해왔음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허먼 멜빌의 『모비딕』 과 『필경사 바틀비』를 읽고 감탄과 경외 때문에

그리고 안쓰러움과 안타까움 때문에 울었다면 이 작품을 읽고 나는 눈에 보이게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과는 달리

문장을 통해 피워올려진 스토너의 삶의 처연한 아름다움 때문에 울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즐거움이 없는 노동에 평생을 바쳤다.

그들의 의지는 꺾이고, 머리는 멍해졌다.

이제 두 분은 평생을 바친 땅 속에 누워 있었다.

땅은 앞으로 서서히 두 분을 자기 것으로 만들 것이다.  」p153


  모래 위에 애써 공들여 그린 그림처럼 인간의 삶도 썰물에 의해 금새 지워져 버리지만 그 위에 흔적도 남기지 못할

삶을 반복해서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총체성이 『스토너』의 문장 속에서 꽃처럼 피어난다.  그렇게 작가가 문장 속에

심어놓은 씨앗 속에서 나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지금의 헬조선에서 이 책이 많은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이 책은 출간된지 오십년이 넘은 지금 더 큰 감동과 위로로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