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야간비행>암흑을 향해 내딛는 숭고한 걸음에 대하여.........

묭롶 2018. 12. 2. 20:31

  생텍쥐베리의 『야간비행』을 읽으며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같은 2차 세계대전 시기 전투비행기를 몰았던 로맹가리였다.

같은 시기 항공우편용 비행기를 몰았던 생떽쥐페리와 독일군에 대항한 로렌비행중대에서 전투기에 탑승했던 로맹가리가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함께 느껴졌다.  지금처럼 자동항법 장치도 없던 시기, 야간비행은 무모함 그 자체였다.  지금처럼

안정적인 고도의 정해진 항로도 결정되기 전 암흑을 향해 출발하는 비행기는 어쩌면 밤의 신을 향해 바쳐진 제물과 같은

숭고함의 산물이었다.


  내가 그동안의 여행을 통해 이용한 항공편은 모두 출발은 밤에 출발해서 도착지의 밤에 도착하는 여정이었다.  고국에서

출발할때도 밤이었는데 이십여 시간 가까이 지나도록 밤만 지속되다가 도착안내 방송을 듣고 그제서야 바라본 창밖의

야경은 별빛보다 찬란했다.  그래서 언제나 여행의 기억은 그 찬란하게 나를 맞이한 도시의 야경으로 기억되었다.


「이 조종사는 밤의 가장 깊숙한 중심부까지 내려가야 해.

손이나 비행기 날개밖에 비추지 못하는 아주 작은 미등조차 없이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미지의 세계와 어깨너비 정도의 거리만을 두어야 하지.' 」p71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을 읽으며 나는 어쩌면 지금의 '야간비행'이 가능하도록 지금의 항로를 만든 사람들이

바로 1940년대 항공우편을 배달하던 조종사들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처럼 야간비행이

가능했을까?  아마도 '야간비행'은 불가능의 영역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자동항법 장치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나는 비행기를 사랑하였다.  특히 폐기 처분된 시점에 도달한 그 시기의 비행기.

아직도 인간에게 의지하고 인간을 필요로 하는 비행기.  『새벽의 약속』 p254


  남극점을 발견한 아문센의 탐험대처럼 열악한 장비에 몸을 실은 채 칠흑같은 암흑에 자신을 내던진 조종사들은 어쩌면

그들 자신은 몰랐겠지만 항공 항로 개척의 탐험가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들이 목숨값으로 개척해놓은 항로를 따라

우리는 여행을 하고 국제항공이 배송되고 있다.


  어쩌면 그 조종사들의 숭고한 발검음은 불을 향해 뛰어드는 소방관을 떠올리게 한다.  직업의 소명이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나는 언제나 확고하게 개인의 목숨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그걸 뛰어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부끄러워진다.


  지금처럼 자동항법장치도 비행기를 이끌 네비게이션도 없는 1940년대 하늘을 누빈 우편배달부인 생떽쥐페리와

로맹가리에겐 신념이 있었다.  그 칠흑 같은 어둠과 포탄이 나부끼는 하늘로 그들을 날아오르게 만든 동력은 바로

그들의 신념이었다.  


 「'나는 정당한가 부당한가?  나는 알 수 없다.

내가 엄격하게 굴면 사고는 줄어든다.  책임이란 개인에게 있지 않다.

그것은 모든 이에게 적용되지 얺으면 아무에게도 적용되지 못하는 막연한 힘과 같다.

내가 정말 정당하게 군다면, 야간비행은 매번 죽음의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p57


  그 무엇도 인간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로맹가리의 주장에 나는 열렬히 찬성하지만 숭고한 희생을

마주할때마다 나는 언제나 부끄럽다.  나는 개인적으로 『야간비행』 의 작중인물 리비에르에 동의할 수 없다.  인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와도 맞먹는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설령 그 다리를 완공해서 수천 명의 인명을 살릴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 다리를 위해 한 명이 희생되어야 한다면 나는 그 다리는 완공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령 느슨한

조직문화로 인해 인명의 피해가 생긴다고 할지라도 그건 책임을 져야할 사람의 문제이지 그 모두를 한 사람이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하다는게 나의 판단이다.


「'너무나 아름답군.'  파비앵은 생각했다.

그는 보석처럼 빼곡히 들어찬 별들 사이에서 헤매고 있었다.

~그들은 얼음처럼 차갑에 반짝이는 보석들 가운데서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죽을 운명을 맞이하여 떠돌고 있었다.  」 p97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생떽쥐페리의 『야간비행』에 감동을 받는 건 그 숭고한 선택의 순간을 표현해낸 생떽쥐페리

문장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죽어도 좋을만큼의 아름다움.  수천 킬로미터에 걸친 폭풍우 속에서 환한 달빛이 비추는

고도로 상승해서 보석처럼 찬란한 광경을 마주했을 때 그 느낌을 아주 조그만 일부나마 이해할 수 있을것 같아서이다.

고대 중국의 사기에서 자신을 알아주는 주군을 만난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고사의 유례는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어떠한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의 의지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결국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위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생을 마감하기도 하지만

그 누구보다 숭고한 값어치를 획득하는 것이 또 인간이란 사실을 나는 『야간비행』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어찌보면 2차 세계대전 당시 함께 독일군의 진지를 향해 폭격에 나섰던 이십대의 전우를 잃은 로맹가리가 잃어버린

그들을 전후 세대의 젊은이들에게서 발견했던 것처럼, 이제 생떽쥐페리는 사라지고 없지만 그는 『어린 왕자』를 통해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책을 통해 자신을 완성했다고 말하는 로맹가리처럼.......

 

  나는 그를 통해서 수명이 종료되는 순간이 끝이 아니며 로맹가리를 통해서 문장 속에서 생을 거듭하는 그들을 만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고로 그들의 생은 끝났지만 그들의 문학은 영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