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무라카미 류>

<식스티 나인> 일본소설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다.

묭롶 2018. 11. 18. 12:20

  나는 평소 독서 편식이 심한 편이다.  내가 읽기에 즐겁지 않은 책을

베스트셀러라고 읽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그렇게 쭉 어린시절

부터 소설만 줄기차게 읽어왔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일본 작가의

소설은 딱히 찾아서 읽고 싶은 맘이 들지 않았다.  그런 내가 이십대

중반에 우연히 동네 책대여점에 책을 빌리러 갔다가 구미가 당기는

책이 없어 빌린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였다.


  상, 하권으로 나뉜 제법 두툼한 이 책을 대학교3학년 중간고사

시험기간에 단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다.  도저히 중간에 독서를 멈출 수

없는 흡인력이었다.  그렇게 나는 『해변의 카프카』를 시작으로

『상실의 시대』,『렉싱턴의 유령』 『1Q84』, 『기사단장 죽이기』등을

출판이 되기 전에 예약배송까지 주문해가며 열심히 읽었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을수록 그의 작품세계가 정형화된

틀에 찍어낸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같이 정해진 규칙대로

예외없이 일상을 사는 사람을 지켜보는 듯한 답답함이 그의 문장을

읽을수록 쌓여갔다.  물없이 먹는 고구마처럼 배경과 인물 그리고

시대만 다를 뿐이지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문장의 답답함에 나는

『기사단장 죽이기』를 끝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그만 읽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하나의 서사 속에 갇힌 채 옥쇄를 하는듯한 문장이 비단 무라카미 하루키 한 사람에 해당하는 것일까

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래서 가독성이 높은 온다 리쿠 작가의 『꿀벌과 천둥』도 읽어봤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서사의

빵틀에 다른 재료를 넣어 구워낸 작품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쩌면 이 모든게 일본작가에 대한 나의 주관적인

편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 『나를 보내지마』를 읽었다.  역시 핏줄은

무서운 것이었다.  영국에 살아도 그는 일본인이라는 점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가 다른 곳에 가도

태생적으로 지닌 체취를 지울 수 없는 것처럼 일본소설은 일본소설만의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내가 우연히 '작가정신' 출판사 블로그를 통해 『식스티 나인』을 보게 되었다.  69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

로맨틱펀치의 보컬 배인혁님의 생일이다.  2019년 달력을 받고 제일 먼저 6월 9일에 동그라미를 쳤을 정도( 딸아,

미안하다.  너 생일보다 핑크삼촌 생일이 먼저 보였단다)로 69와 관련된 그 모든 것이 내 관심영역 안에 인입된다. 


  그러니 내가 일본소설에 대한 편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구입한 건 당연한 일이다.  이 책은 1969년에 고교 졸업을

앞둔 17살의 고등학생인 작중인물 야자키의 좌충우돌을 담고 있다.   야자키는 시대적 배경이었던 반전(베트남 전쟁),

반미(주일미군), 저항(학생운동)과 같은 정치상황에 대해 의식을 갖고 있는 학생이 아니다.  그러한 시대상황이나

음악 등은 그저 예쁜 여학생에게 다가갈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열일곱인데 이게 자연스러운거 아닌가.  만약

야자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중인물들처럼 목적의식이 확실하거나 온다 리쿠 작품에 나오는 천재적 인물로 그려졌다면

나는 당장에 이 책을 덮어버렸을 것이다. 


「놈들이 주장하는 유일한 이상은 '안정'이다.

즉 '진학' '취직' '결혼'이다.

놈들에게는 그것이 유일한 행복의 전제조건이다.

구역질 나는 전제조건이지만,

그것이 의외로 효과를 발휘한다.

아직 아무것도 되지 않은 진흙 상태와도 같은 고교생들에게

그것은 큰 힘을 발휘한다.」p132


  야자키는 그냥 일본 뿐 아니라 우리나라 그리고 다른 나라의 어느 구석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열일곱 살의 남자애일

뿐이다.  어떻게 하면 고등학교 졸업 전에 동정을 뗄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좋아하는 여자애와 어떻게 하면 키스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열일곱의 거짓없는 삶이 이 책에 그대로 담겨있다.  야자키는 말한다.  학교는 가축을 만드는 곳이라고.

학교의 지시에 의해 행해지는 메스게임과 전국체전 동원 등, 다른 학생들이 아무런 저항없이 그냥 지시대로 따르는

그 모든 것을 거부한다고.


「119일 동안이나 결석을 했음에도 이 교실에 대해 아무런 감회가 없는 것은,

이곳이 선별과 경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동물이건 사람이건, 어른이 되기 일보 직전에 선별이 행해지고,

등급이 나눠진다.

고등학생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는 가축이 되는 첫걸음인 것이다.」p160


   작중 야자키와 아다마의권유로 교장실 책상 위에 똥을 눈 나가사키처럼 문학이라는 이유로 뭔가를 그 틀(서사)안에

담아내야(주제) 한다는 편견 위에 이 책은 똥을 눈다.  페스티벌을 위해 싼 값에 사온 사료먹기를 거부하는 닭이

페스티벌이 끝난 후 야산에 방생을 하자 10m를 날아오르는 야생닭으로 되살아난 것처럼 학교를 통해 사회화된

사회적 가축인 우리의 삶도 달라질 수 있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삶을 즐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