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아룬다티 로이>

아룬다티 로이 : <작은 것들의 신> : 인도판(版) <82년생 김지영>

묭롶 2018. 8. 18. 15:56

  아룬다티 로이는 인도의 여권신장을 위해 활동하는 사회운동가이다.

『작은 것들의 신』은 인도 여성의 열악한 처우 개선을 위해 오랜 시간

활동해온 로이가 쓴 첫 번째 소설이자 현재까지 출간된 유일한

소설이다.  그녀는 이 소설로 단숨에 부커상을 수상했다. 


  나에게 인도 작가는 이스라엘이나 아프리카 출신 작가의 작품만큼

이나 생소하다.  하지만 그녀의 책을 읽어나가며 나는 인도 여성의

삶이 동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닮은꼴임을 알게 되었다.

인도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나는 우리네 『82년생 김지영』이 자꾸만

겹쳐졌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가야 하는 여성들의 정서가

이 작품 전체에 담겨있어서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짠하고 그 동질감에 가슴 아팠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건 힘든 일이다.  본의아니게 몰카의 피해자가 될 경우조차도 옷을

그렇게 입어서 그렇다는 둥, 처신을 잘못해서 그런다는 식의 말을

쉽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사회분위기가 남성들 사이에 공공연하게

이해되는 가운데 여성은 여성이라는 그 이유만으로 원죄가 되는게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내가 어려서부터 가장 견딜 수 없는 말이 있다면 그건 아들을 낳기

위해 계속 애를 낳는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우리 엄마도 아들을 낳기 위해 딸을 내리 셋을 낳았다.  내게는 올해

여덟살인 딸이 한 명 있다.  다들 내게 외동이는 외롭다고 말을 하며 그 말에 더해 아들을 하나 더 낳아야하지 않느냐는

말을 넌지시 건넬 때마다 나는 내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욕지기를 억지로 삼키며 말을 하는 상대방에게 나는 다행이도

첫째가 딸이어서 둘째를 안 낳는거라고 답을 해준다.  만약 첫째가 아들이었다면 난 딸을 갖기 위해 둘째를 낳았을거라고...

물론 내겐 자녀의 성별이 애초부터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렇게 물어오는 사람들의 비뚫어진 의식에 돌을 던지고 싶었을

뿐이다. 


  그나마 대한민국 여성의 인권은 인도에 비하면 양반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작은 것들의 신』을 읽는 내내

카스트 제도와 여성에 대한 비참한 처우라는 이중의 덫에 놓인 인도여성의 처지에 비해 그나마 우리가 나은거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여성을 남성 아래에 놓는 근본적인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여성의 문제는 경우의 차이만

을 뿐 근본적으로 모두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알콜 중독인 남편의 폭력을 피해 이혼 후 친정으로 돌아온 딸(암무)을 집안의 수치로 여기고 똑같이 이혼을 당한 아들

(차코)의 문란한 성생활은 어쩔 수 없는 욕구의 해소로 인정하는 대목을 읽으며 과연 인도와 대한민국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까.  배경이 인도일 뿐 지금도 그냥 동네 옆집에서 그랬다더라 식으로 들리는 이야기와도 같아서 참으로

씁쓸했다.  여성인데다 이혼을 했고 거기에 불가촉인과 정을 통했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내쫓김을 당한 후 고독사를

당하는 암무와 가촉민과 정을 통했다는 이유로 공권력(경찰)에 의한 폭력에 목숨을 잃은 채 쓰레기처럼 내버림 당한

벨루타는 그 마지막을 짐작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했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선택한 그들은

서로 약속할 수 없는 '내일'을 약속했다.  사회적 금기를 어겼다는 이유로 '내일'을 빼앗긴 사람들(암무와 벨루타 그리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작은 것들의 신』에 담겨있다.


「그는 어딘가에서는, 라헬이 떠나온 나라 같은 곳에서는,

여러 가지 절망이 서로 앞을 다툰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큰 신神'이 열풍처럼 아우성치며 복종을 요구했다.

그러자 '작은 신'(은밀하고 조심스러운, 사적이고 제한적인)이

스스로 상처를 지져 막고는 무감각해진 채 자신의 무모함을 비웃으며 떨어져나갔다.」 p35


「더 나중에도, 이날 이후 이어진 열세 번의 밤 동안에도,

본능적으로 그들은 '작은 것들'에 집착했다.

'큰 것들'은 안에 도사리고있지도 않았다.

자신들에게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가진게 없었다.  미래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작은 것들에 집착했다.  」p461


  카스트 제도와 사회적 인정이라는 큰 신들의 세계가 보호하는 남성과 가촉민들과는 달리 서로에 대한 사랑밖에

가진 게 없는 암무와 벨루타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개미 물린 자욱이 남은 서로의 엉덩이'나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은 '거미 한마리'와 같은 작은 것들에 집착했다.  서른 한 살의 나이로 고독사를 했는데도 살아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로 받아들여지는 엄마(암무)의 삶은 엄마와 같은 나이가 된 딸 라헬에 의해 다시 현재로 소환된다.  딸 라헬의 기억에

의해 다시 재현되어지는 과거 엄마의 삶은 현재로 소환되어지지만 바뀌지 않는 현재의 상황에 겹쳐짐으로써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비극성을 가중시킨다. 


  비극적 삶을 재현해내는 아룬다티 로이의 문체는 아름답다.  하지만 여성으로서의 문제적 삶을 그려내는 그녀의 시선은

날카롭다.  지금도 '큰 신神'(제도와 사회통념)의 묵인하에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의 문제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아룬다티 로이는 『작은 것들의 신』을 통해 우리에게 묻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나조차도 ''큰 신神'에 맞설 방법이 없다.  당장 피해자가 외치는 '미투'마저도 외면하는 이 나라의

사법제도 앞에 나는 오늘도 망연자실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