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레몽 라디게>

냉동식품을 조리해 보신 적이 있나요?

묭롶 2018. 3. 19. 22:37

냉동식품을 조리해 본 적이 있나요?  아마도 요리를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냉동식품을 해동해서 하는 조리와 살아있는 본연의

재료로 하는 조리의 차이를 금방 느낄 테지요.  냉동과 생물의 단적인

차이는 바로 수분에 있습니다.  일단 냉동실로 들어가버린 재료는 원 재료의

선도를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잃게 되죠.   

 

  기억도 그렇습니다.  느끼는 순간의 그 감정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기억 속에

저장되는 순간 그 순간의 느낌을 일정부분 잃어버립니다.  그 기억을 불러와

문장화하는 작품의 경우는 어떨까요?  포도를 경작하는 사람이 포도의 꽃피고

열매 맺히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고 자신이 가꾼 포도의 첫 열매 맺힘을 맛보는 순간의 포도는 생과(生果)이지만,

이 포도를 거둬들여 포도주로 발효와 숙성의 과정을 거치면 특정지방의 상표인 예를 들자면 보르도라는

포도주가 되지요.

 문학도 이와 같지요.  기억의 냉동실에 머물던 어떠한 질료를 가지고 수사학적 가미와 발효와 숙성을 거쳐

문장화된 질료는 원 질료서의 성질보다는 어떤 특정한 작가의 문체적 특징을 지닌 2차 가공물이 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문장의 대부분이 바로 그 2차 가공물의 성질을 띠고 있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많은 문장을 읽는 순간에도 원 질료가 지닌 원래의 향취를 언뜻 느낄 때가 있지요. 

 마치 잘 로스팅된 커피를 마시며 생두가 채취된 원산지의 기후와 특징적 환경을 느끼는 것 처럼요. 

 

  아마도 제게는 레몽 라디게의육체의 악마』가 그런 작품이었나 봅니다.  가공식품만 먹다가 조리되지

않은 날것의 재료를 맛본 느낌, 한 겨울에 그 계절에 나지 않는 과일을 한입 베어 물은 느낌, 그 농익은

향취와 뿜어져 나오는 과즙에 감탄하는 순간, 나는 느끼게 됩니다.  그 동안 잊고 있었던 바로 그 느낌을………….

눈이 오던 날 아무렇지도 않게 눈을 집어 먹고 고드름을 따 먹은 기억.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집 파리똥

나무의 땡땡이 점이 박힌 열매를 따 먹은 기억.  엄청나게 내리는 폭우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고 옷 입은 채로

소변을 눈 기억 등………. 그 강력한 미각과 감각을 지녔던 기억들이 한순간에 막무가내로 쏟아져 폭죽처럼

팡팡 터지는 느낌을…….

 

  바로 그렇게 팡팡 터지는 그 순간의 느낌을 재료로 즉석요리처럼 쓰인 소설이 곧 레몽 라디게의

『육체의 악마』입니다..  그 순간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작품, 그래서 단순하게는 어설퍼 보이기까지 하는 작품. 

하지만 꽃이 피어 수정이 되고 열매 맺어 저물기까지의 과정을 그 꽃의 세포 하나하나의 감각에 기대어 쓰인

작품이 바로 작가가 열 일곱 살의 나이에 쓴 이 작품입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육체의 악마』는 사랑의 발화와 수정, 그리고 열매가 맺히고 사그러들기까지의 과정을

이성의 언어가 아닌 감각의 언어로 기록하고 있답니다. 저는 이 책에 대한 고전주의의 부활이라는 수식어는

실은 가공되지 않은 일차적 표현으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더불어 가공의 과정만을 문학의 전부라고 믿는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이 바로 이 작품이 지닌 가장 큰 의의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Ps: 이 책의 화자는 불투명합니다.  제 기준에서는 이 책의 화자를 마르트로 놓고 볼 때 이 책의 독서는

참 흥미진진해집니다.  아마 읽어보신 분들은 제 말의 의미를 이해하실 테지요.

Ps2: 레몽 라디게와 연인관계로 알려진 장 콕토는 레몽을 앙팡테리블(무서운 아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를 점령한 독일군의 총독 부인이 쿠르초 말라파르테에게 앙팡테리블

(무서운 아이)이라고 불렀다는 일화가 문득 떠올랐지요.

 

아흐!  선생은 참 앙팡테리블(무서운 아이)이네요.”

독일 제국의 폴란드 왕비가 우아하게 한마디 던졌다.

망가진 세계 p89 

 

레몽 라디게의 사후 일어났던 말라파르테의 소설 속 일화를 통해 랭보와 베를렌의 이야기처럼 장 콕토와 레몽의

사연이 전 유럽에 큰 화제가 됐음을 짐작할 수 있었어요.  역시 시대를 떠나 타인의 뒷담화는 삶의 큰 활력소인가

봅니다.  그나마 레몽의 작가로서의 역량이 추문에 덥히지 않은 것만으로도 어딘가 싶어 다행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