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2018 이상문학상>

<이상문학상 작품집>에서 보여지는 '과거회귀'와 극복의지로서의 '새의 시선'을 살펴보다.

묭롶 2018. 3. 18. 15:28

  나는 지금까지 발간된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매년 꾸준히 읽어 왔다.

매년 초 이 작품집을 읽을 때면 평소 주로 읽어온 문학고전을 볼 때와는 달리

한 발자욱 떨어져 지켜볼 수가 없었다.  멀리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 내 곁에

있는 지인의 이야기 같은 작품 속 사연들은 왠지 나도 빈곤한데, 모른 척 할 수

없는 친척을 만난 것만 같은 불편함을 느끼게 했다.  물론 이 작품집을 통해

새로운 문체와 현실을 바라보는 다양한 접근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어 흥미롭기도

했지만, 이 책이 내게 주는 감정이입은 언제나 읽고 난 후 씁쓸한 여운을 남겼다.

 

  올해 발간된 제 42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고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은 李箱 의 오감도와 빈센트 반고흐가

그린 <까마귀가 있는 밀밭>이었다.  나는 이번 작품집에 수록된 작품들이 서로 다른 작가들이만 이들 대다수의

작품이 과거회귀와 시선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먼저 올해 대상 수상작인 손홍규의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는 상복을 입은 채 술집에 온 앳된 청년을 통해 과거의 기억으로 회귀하는 방식을 띠며

조해진의 [파종하는 밤]은 과거 수은중독으로 죽은 소년들과 조우하는 를 정찬의 [새의 시선] 1985년의

학생운동 분신사건과 용사참사를 조망하는 를 화자로 하며, 방현희의 [내 마지막 공랭식 포르쉐]에서는

자신의 현재를 벗어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은 아버지를 떠올리는 정비공인 가 주인공이다. 


「~사랑에 실패하고 원한을 품었던, 살아보기도 전에 이미 세상에 절망해버렸던

그 청년은 그들의 내부에서 그들과 함께 늙었다. 

그들은 깨달았다.

자기 내부를 헤매는 이 불길한 청년과 때때로 조우하며 수십 년을 살아왔음을. 

청년과 그들은 헤어진 게 아니라 함께 거주하며

서로를 증오하고 힐난하고 할퀴면서 수십 년을 견뎌왔음을.」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p64

 그 동안 국내에서 발표된 중, 단편소설들에서 과거는 치유되지 않은 채 현재를 발목 잡는 트라우마로서의

방향성을 지닌다.  삼포세대니, 사포세대라는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헬조선의 현실 속에서 갈수록

미래는 도래하지 않거나, 실제하지 않는 불가능의 영역이 되어버렸다.

대신 도래하지 않는 미래를 대신해서 현재는 과거를 반복 내지는 과거로 회귀함으로써 우리의 삶은 자꾸만

스스로 안쪽으로 옥죄어서 내부를 갉아먹는 벌레 먹은 밤이 되고 말았다.


「~근데 왜 우리 딸이 정읍댁인가.

다 키워서 서울로 시집보낼 거였은게.

자네 혼자 큰딸을 키우고 있었네그려.

데려다주시오.

그래, 가세.」

[정읍에서 울다]p135


그래서 나는 과거회귀라는 공통성을 드러낸 이번 작품집이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정읍에서 울다]처럼 마음이 아팠다. 조해진의 [파종하는 밤]에서처럼 삶은 씨앗의 씨앗과 같은 미래에

대한 가능성과 희망을 낳지 못하고 작품 속 화자인 그녀가 구상했지만 찍을 수 없는 다큐멘터리(꿈 내지는 환각,

냉동건조 돼 버린 꽃)에 머무는 것이다.


「“과거는 고정된 시간의 어떤 형태가 아닙니다.

현재의 시선에 의해 끊임없이 변하는 역동적인 생명체입니다.

상상은 과거를 현재와 연결시킴으로써

과거를 역동적인 생명체로 만드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합니다. 

상상력이 없으면 과거에 갇혀버리는 거죠. 

과거에 갇히면 현재의 시간이 의미를 가질 수 없습니다.”」[새의 시선]p264


물론 인간은 과거를 떠나 살아갈 수 없다.  나의 현재가 그 동안의 과거()+현재를 통해 미래를 낳을 수

있다면 바람직할 테지만 과거+과거(현재)=미래가 됨으로써 미래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닌 또 하나의 현재가

되고 말았다는 깨달음이 내가 이번 작품집을 통해 느끼는 주요 정서이다.


「지금 머리위로 새가 빙빙 돌고 있다면 좋겠다고,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목격한 그 검은 새라면

더 완벽할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새의 시선으로 내려다본다면 소년들이 다시 보일지도 몰랐다.」[파종하는 밤]p314


  하지만 이번 작품집을 통해 나는 그러한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치열한 문제의식과 그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그들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시선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상 문학상>의 제정의

계기가 된 李箱은 문학 뿐만 아니라 문화의 불모지와 같은 1900년대 초반의 조선을 살다 갔다. 

  현실에서 날개를 펼칠 수 없었던 李箱이 택한 것은 높은 상공에서 까마귀가 내려다 보는 조망(烏瞰圖)이었다.

여기에서 까마귀시선은 현재의 시야에서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시선, 하나의 부분이 아닌 총체성을 관조하는

시선, ‘가 아닌 타자화된 시선을 의미한다.  이상이 [날개]에서 미쓰꼬시 백화점 옥상에 올라 바라보는

 회탁의 거리와 같은 대한민국의 현실 앞에 수상작가들이 자신의 작품 속에서 심지어는 단편의 제목으로

 [새의 시선](정 찬 )을 언급한 것은 어쩌면 닫힌 미래를 뚫기 위한 돋보기의 집중적 발화와도 같다.

 

  제 4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과거회귀와 반복되는 과거를 작품 속에서 다룸으로써 현재를 진단하고

예견하는 문학의 기능이 아직까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물론 이러한 문제가

단순한 문제제기에 머무르지 않고 공통의 문제인식을 통한 공론 시선을 겸비해야 할 필요성도

동시에 보여주고 있으니, 미래가 닫힌 문이라고 과거로 되돌아갈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이 그 문을 두드릴

때임을 나는 이번 작품집을 통해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