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아모스 오즈>

<나의 미카엘>-><82년생 김지영>-> 그리고 나의 이야기!

묭롶 2018. 2. 17. 14:08

나는 그들을 보냈다.  새벽이면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지치고 따뜻해져서 올 것이다.  땀과 거품의 냄새를 풍기면서.
평화로운 미풍이 소나무를 건드려 흔들어놓는다. 

먼 하늘이 서서히 창백해진다. 

그리고 저 광대한 공간에 조용하고
차가운 정적이 내려앉는다  p292


    어둠에 잠긴 숲에 있는 높은 탑 꼭대기에는 공주가 갇혀 있다.  그녀는 누군가 갇혀 있는

자신의 존재를 알아봐주기를 자신을 찾아주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하루 또 한달,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이 흘러간다. 그동안 갇혀 있는 그녀는 그 안에서 소멸되어 간다.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탑에 갇힌 공주가 있다.  해질녁 창가에서 동화책을 읽던 그시절

나와 지금은 탑에 갇힌 공주는 함께 였다.  나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그 즉시 공주가

될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아닌 척 했다. 그시절 나는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나자신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남들과는 다르다는 은근한 자만심에 혼자 웃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친척들은 고아원에 가지 않으려면 내가 빨리 돈을 벌어서 동생들과 엄마를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그때 내 나이는 열두살이었다.  그날 나는 내 바비인형의 긴 금발머리를 짧게 싹둑 잘라버렸다. 

  그때까지 언제나 나와 함께였던 공주는 그날 이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봉인되었다.


  이후 나는 가족들의 바램처럼 직장에 들어갔고 결혼을 했으며 아이를 낳았고 양쪽 어머니를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일상을 살면서 나는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은 진짜 내가 아니라고 느껴졌다.  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없다. 
반복적 삶을 수행하는 '나'가 있을 뿐이다.  그러한 일상의 나를 바라보는 내 안의 조소는 바로 내 마음속에 갇힌
공주의 냉소였다. 


「사실 이 시기에는 우리 사이에 일종의 불편한 타협 같은 것이 존재했다.

우리들은 마치 장거리 기차여행에서 운명적으로

옆자리에 앉게 된 두 명의 여행자들 같았다. 

서로에 대한 배려를 보여주어야 하고,

예절이라는 관습을 지켜야 하고, 서로에게 부담을 주거나 침해하지 않아야 하며,

~어쩌면 가끔씩은 유쾌하고 피상적인 잡담으로
서로를 즐겁게 해주려고 해야 하고,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으며. 

때로는 절제된 동점심을 보이기도 하면서.」 p 73


   『나의 미카엘』을 읽으며 작중인물 미카엘과 한나의 모습이 꼭 일상을 사는 나(미카엘)와 내 맘에 봉인된

공주(한나)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너무나 여러 번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이게 맞는지 묻는

'한나'의 질문에 나의 현실인 '미카엘'은 인간은 누구나 대부분 그렇게 산다고 답했다.  아마도 작중인물 '한나'도

그러한 대답과 같은 '미카엘'의 모습에 반감을 느꼈나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미카엘을

뒤흔들고 싶은 한나의 격정과 동요에 나는 공감할 수 있었다.  나는 오랜시간 내 자신의 '미카엘'에 속하는 부분을

해치고 싶은 자학적 충동에 시달려 왔다.  그럼에도 그 미워하는 부분마저도 나 자신의 일부이기에 '나의 미카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의 결말 없는 마무리는 한나도 나와 같은 과정을
겪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어렸을 때는 내게 사랑하는 힘이 넘쳤지만

이제는 그 사랑하는 힘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p7


  삶은 나의 것이지만 그와 동시에 나의 것이 아니다. 삶이 타인(가족일지라도)과의 관계를 통해 나의 대부분을

공유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주는 불편함을 토로하면 사람들 대부분은 내가 너무 예민하거나 정신적으로 나약하다고

판단한다.  그런 이유로 표출되지 못한 불편함을 나는 글로 적는다.  아마도 한나도 그런 이유로 자신의 꿈과 감정을

글로 남겼을 것이다.  히브리대학 1학년 문과생으로 재학하던 그녀가 우연한 만남 후에 미카엘과 결혼하고 아이를

갖게 되면서, 그녀가 꿈꾸던 삶과는 다른 현실의 의무와 일상이 그녀에게 주어졌다.
  그래서 이제 불과 서른 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한나는 죽지 않기 위해(사랑하는 힘을 지키기 위해)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당신은 낯선 사람이에요, 미카엘. 

당신은 밤마다 내 곁에 누워 있지만 낯선 사람이에요.」p79


  한나는 죽는 날까지도 가족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애썼던 착한 남자인 자신의 아버지를 사랑한다. 그리고 운명처럼

자로잰듯 성실하고 착한 미카엘을 만나 결혼했다.  주변의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영민한 아들을 낳았지만, 한나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한다.
  미카엘이 성실하게 논문을 준비해서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새아파트를 사는 건 더 이상 그녀의 삶에 의미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그런 삶을 이루기 위해 숨이 끊어지게 달리고 있을 때 그녀는 뒤에서 느리게 걸으며 그런

사람들(미카엘도 포함)의 뒷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본다. 


그가 내게로 오면 노래를 부르고 끓어오르고 떠다니며

나는 흘러넘칠 것이다. 

나는 비 오는 밤을 헤치고 나가는
거품을 문 암말이 될 것이다. 

폭우가 쏟아져 내려 예루살렘을 물에 잠기게 하고

하늘은 낮아질 것이고 구름이 땅에 닿을 것이며
거친 바람이 도시를 파괴할 것이다. p220


  작중인물 한나의 꿈은 일상에서 느낀 그 의아함의 왜곡된 총합이다. 눈을 뜨는 동안 억눌려 있던 감정들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꿈을 통해 한나는 그 꿈에 비추어 자신의 결핍의 원인에 조금씩 다가가게 될 것이다.  그녀의 기록은 바로

분리된 자아에 대한 인식과 성찰을 낳게 될 것이다.  한나의 이야기는 1960년대 예루살렘에 사는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바로 대한민국의 『82년생 김지영』이며 또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비단 과거 뿐만 아니라 삶의 과정을 통해 꿈꾸는 자신과 현실을 살아가야만 하는 자신에게서 괴리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우리 모두를 『나의 미카엘』이 연결하고 있다.  그 연결을 통해 전해지는 공감이 주는 위로가 내 마음속에 갇힌

공주를 노래부르게 한다. 


  ps: 내마음속에 갇힌 공주는 지금 "나는 당신에게 그저"를 부르고 있다.  내 마음을 온통 채우고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감동의 울림!  로맨틱펀치 보컬 배인혁님의 솔로 신곡 "나는 당신에게 그저"는 언제나 내게 큰 위로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