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의 작중 인물들에게 <나는 당신에게 그저>를 들려주고 싶다.

묭롶 2018. 2. 10. 15:30

  너무 슬프면 눈물도 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를

읽고 가슴이 먹먹하게 아파왔다.  차라리 온몸을 쥐어 뜯고 발버둥치며 울어버렸다면

이렇게 가슴 아프지는 않았을텐데, 눈물도 흘리지 못한 채 망연자실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안타까움에 나도 울 수 없었다.


  같은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영화 <아일랜드>처럼 복제인간이 시스템에 저항하며

자신의 생존을 위해 총을 쏘고 자신의 근원자를 대신해서 자신이 근원자의 행세를 했던

반면 『나를 보내지 마』의 클론들은 영화와 같은 복제인간이지만 일차, 이차, 삼차,

그리고 사차 기증에 이르기까지 저항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책을 읽으며 도대체 유전학적으로 어떤 조작을 하면 저렇게까지 순응하는 인간이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너무나 답답했다. 

  서로를 향한 진정한 사랑을 입증함으로써 자신이 영혼이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려는 캐시와 토미의 노력이 이 작품에서 유일한 인간적 저항의 흔적이다.  그 유일한 노력마저도 진정한 사랑을

밝히는 것이라니, 요즘 같은 세태에 보통사람이 이런 얘기를 한다면 구시대의 신파를 쓴다는 비웃음을 받을 일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의 권리를 빼앗긴 채 소수의 생명연장을 위해 사육되는 복제인간 캐시의 입을 빌려 서술되는

이 책의 이야기는 서술자 자신이 피해자이며 당사자이면서도 타인을 관찰하는 시선을 유지한다.  이러한 캐시의 서술은

피해를 당하고도 자신이 입은 피해의 실제적인 면을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연상시킨다.


「~네 번째 기증이 끝나면 기술적으로는 목숨이 다했다 해도 의식이 어떤 식으로든 남아서

더 많은 기증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본인이 안다.  그 경계 너머에서 여러 차례 기증이 이루어진다는 것,

더 이상 회복 센터도 간병사도 친구도 없다는 것, 그들이 자기 몸에서 손을 뗄 떼까지

기증이 연달아 이루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p382


  아마도 인간의 당연한 권리를 교육받았다면 캐시는 자신의 친구 토미와 루스를 그렇게 순순히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보내지 마> 대신 <날 절대로 보낼 수 없어>라고 말했어야 옳을 일이다.  작중인물 헤일셤의 교사 루시 선생님이

보이는 지극히 인간적인 시점에서 이 작품이 쓰였다면 이렇게 문체의 담담함을 유지하는 대신 폭로의 방식을
택하지 않았을까? 


  저항하지 않아서 더 슬픈 작중 복제인간을 보며 어쩌면 인간의 고유한 본질이 바로 '저항'이란 생각을 해본다. 

허먼멜빌의 『모비딕』에서 자신의 한쪽 다리를 잃게 만든 혹등고래를 쫓다 목숨을 잃는 에이헤브 선장과 알베르 카뮈의

『반항하는 인간』에 나오는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죄로 영원토록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와

장티푸스에 걸려서 바지를 망칠지라도 코끼리 사냥 금지를 계속해서 외치는 로맹가리의 『하늘의 뿌리』에 나오는

모렐처럼 인간은 당장 죽는 그 순간의 마지막까지도 저항을 멈추지 않는 존재이다.
그런데 왜 작중의 복제인간들은 저항하지 않는 것일까???? 그 생각만으로 읽는내내 내 마음을 미칠 것만 같았다. 


  읽는 내내 그냥 그대로 시간이 흐르면 기증이 대상이 될게 뻔한 캐시를 지켜보는 내마음은 너무 답답했다. 

감정의 기복이 느껴지지 않는 문체를 통해 기록된 캐시의 이야기는  나에게 <나를 보내지 마>라고 말하는 듯 했다. 

울고 매달리면서 애원하는게 아니라 구원의 손끝을 내밀지도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는 대상이 외치지도 못하는

구조요청에 나는 영화 <아일랜드>처럼 내가 대신 달려들어 캐시를 데리고 가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어쩌면 답답함을 느낄 정도로 담담한 문체를 유지함으로써 작가인 가즈오 이시구로는 작은 목소리에 집중해야할

필요성을 역설한 건지도 모른다.  크게 외칠 수도 없는 사람들의 소리없는 외침이 비단 작중의 복제인간만의 외침일까? 

  그런 소리없는 외침과 소리없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한 남자가 인적도 없는 바닷가를 걷고 있다.  해는 저물어가고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한 남자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그대여 ~그대여~가지마요.~내가 그댈 지켜줄께요.
~그대여~그대여~가지마요~내가 안아줄게요.

로맨틱펀치 보컬 배인혁님의 신곡 <나는 당신에게 그저>를
들으니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위로 받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