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쿠르초 말라파르테>

<망가진 세계>나도 '말라파르테'처럼 '나쁜 편'에 서겠다.

묭롶 2017. 10. 27. 19:15

  나는 얼마전 인터넷 기사를 통해 소설가 한강의 말라파르테 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하게 됐다. 기사를 읽고

먼저 내고장  광주의 5.18을 다룬 작품 『소년이 온다』로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어 기분이 좋았고,

말라파르테의 작품 『망가진 세계』를 읽고 난 후인 지금은 한강의 작품이 말라파르테 문학상의 본질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말라파르테는 일생에 걸쳐 많은 책들- 에세이, 논쟁집, 관찰기, 회고록 - 을

썼고, 이 책들은 모두 지적이고 탁월하지만

만일 『파멸』과『가죽』이 없었다면 이미 잊혔을 것이다.

~이 책은 어떤 책인가?  첫 눈에 이 책은 종군기자의 르포르타주처럼 보인다.

~예민한 독자라면 역사가, 기자, 정치학자, 회고록 저자에 의한 증언의 맥락에서

본능적으로 배제하는, 문학 작품이기 때문이다. 

~여섯 부의 제목은 각각 '말', '쥐', '개', '새', '순록', '파리'다. 

~사건 진행은 리포터의 경험에 따른 연대기로 조직화되어 있지 않다. 

의도적으로 이질적인 각 부의 사건들은 여러 역사적 순간에, 상이한 장소들에 위치한다.」

-밀란 쿤데라-『만남』p217~218


  사실 '말라파르테'라는 이름은 한강의 문학상 수상 전부터 이미 내 머릿속에 각인된 상태였다.  밀란 쿤데라는

말라파르테의 작품  『파멸』과『가죽』을 과거의 소설과 구분되는 새로운 소설의 원형이라고 말한다.   그는

에세이『만남』의 한 단락(<9부 『가죽』, 원(原)-소설>)을 그 두 작품을 이야기하는데 할애했다. 

『만남』에서 『파멸』로 언급한 '소설'이 바로 내가 읽은 『망가진 세계』였다. 


  밀란 쿤데라의 표현대로 『망가진 세계』는 르포르타주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이 작품은 소설로

분류된다.  문학이 사실의 재현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드러내면서도, 과거 소설의 서사성에 결별을

고하는 새로운 소설이 바로 이 작품이다.  밀란 쿤데라가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다룬 말라파르테라는

작가에 대한 호기심에 나는 시중에서 구하기 힘들었던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두 비스트 유데, 니히트 바? -너 유대인 맞지?  장교가 묻더군요.

'나인, 이히 빈 카인 유데-아니요, 유대인 아닙니다.'

노동자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습니다.

'에츠토?  티 니에 에브리? 티 에브리!-뭐라고? 유대인 아니라고!'

장교가 러시아어로 재차 물었습니다.

'다, 야 에브리-그게요, 네, 유대인 맞습니다.'

노동자가 러시아어로 대답했습니다.

장교는 한참을 말없이 그를 쳐다보다가 천천히 물었습니다. 

'그럼 왜 조금 전에는 아니라 그랬지?'

'독일어로 물었으니까요.' 노동자가 대답했습니다.

'쏴버려!' 장교가 말했습니다."」<쥐> p96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 전쟁은 영화나 글, 사진으로 접하는 추체험의 세계에 놓인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내전과 전쟁 그리고 테러가 일어나지만 내겐 강 건너 불구경 처럼 동떨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망가진 세계』를 읽고난 후 난 큰 충격에 빠졌다.  


「"전쟁이 그야말로 끔찍한 건......."  일제가 말했다.

"바로 재미난 게 있기 때문이죠. 

미소짓는 괴물들을 보는 건 정말 참을 수가 없어요."」<새>p345


   '말', '쥐', '개', '새', '순록', '파리'로 구분된 단락에 담긴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다.  종군기자의

눈으로 보고 쓴 르포르타주(기사)를 소설의 틀에 담아놓은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나'는 소설의

화자인 '말라파르테'가 되었다.  그가 보는 건 내가 보는 것이며 그가 느끼는 감정은 바로 내가 느끼는

감정이었다.  이 책이 주는 강렬한 몰입감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 '사실성'에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전쟁의 참상을 담고 있지만 실제로 하는 이야기는 전쟁이라는 장치를 계기로 보여지는

인간의 본질이다.  정리되지 못한 집에 갑자기 찾아온 시부모님에게 문을 열어줘야 하는 며느리의

표정관리 안되는 얼굴처럼, 인간이라는 존재의 민낯을 이 작품처럼 명확히 보여주는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총독님은 로마카톨릭교도 아닙니까?"

"그렇소."  프랑크가 다소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총독님은 폴란드인들과 공통점이 있는 겁니다.

카톨릭교도는 모두 평등하지요.  그러니 총독님이 좋은 카톨릭교도라면

폴란드인들과 동등하다고 느껴야 합니다.

~"아흐! 선생은 참 앙팡테리블(무서운 아이)이네요." 독일제국의

폴란드 왕비가 우아하게 한마디 던졌다.」<쥐> p89


「"그렇지요."  잠시 침묵하다가 나는 말했다.  "히틀러는 여자죠."

"여자라고?"  프랑크가 나를 응시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

눈에는 당황과 우려가 가득했다.

~"그가 진짜 인간이 아니라면 여자라고 해서 안 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내가 말했다.  "해가 될 게 뭐가 있겠어요?

~여러분은 히틀러가 독일 국민의 아버지라고 하지요.

니히트 바?  그런데 왜 독일 국민의 어머니는

될 수 없다는 겁니까?"」<쥐>p92


  '나쁜 편'이란 뜻을 지닌 '말라파르테'는 인간에게 가해지는 모든 부당함에 대한 저항과 거부를 상징한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약자를 탄압하는 강자의 입장에서는 '나쁜 편'인 말라파르테와 같은 편에 섰다. 

그와 동시에 인성이 더이상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고유의 특성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건 어쩌면 스스로 '나쁜 편'을 택하는 '저항'에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영화 <매트릭스>

에서 네오가 기계가 권하는 가상현실의 안락함을 거부하고 빨간약을 선택했던 것처럼 인간다움은 태생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닌 후천적으로 자의에 의해 만들어진다.  


  아마 말라파르테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그러한 '저항'을 통해 만들어가는 '인간다움'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아닐까란 짐작을 해본다.  


ps-나는 로맹가리 특유의 문체도 좋아하지만 이 책을 읽고  이탈리아 나폴리 태생인 '말라파르테'에게

반해버렸다.  폴란드를 지배하는 독일 장군 앞에서 히틀러를 여자라고 말하고 독일장군이 폴란드인들과

같은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무서운 아이'-말라파르테가 너무 멋있어서 그 대목을 읽으며 혼자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비명횡사할 상황에서도 재치 넘치는 유머를 잃지 않는 그를 보며

시가를 물고 있는 로맹가리를 보는 것처럼 흐뭇하다.  어쩌면 '유머'도 인간다움을 정의하는 새로운 목록에

추가해야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