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2017 이상문학상>

<풍경소리> 은유의 확장을 통한 치유의 과정을 보여주다.

묭롶 2017. 9. 5. 23:30


  어두워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조용해야 들리는 것들이 있다.

  가만히 앉아 낮은 곳을 살펴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모든 소리의 근원 같은 거 아닐까요?

소리의 부처. 

들을 수는 없지만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는 소리.

영, 공, 빵의 소리」<풍경소리>p64


 오랜만에 『2017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었다.  한동안 고전을 읽느라

국내소설과 격조했었다.  간만에 만난 <이상문학상> 소설집의 주인공들은 그전보다 더 아프고

더 고립되고 더 소외되고 더 아픈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흡사 사위(四圍) 가 어두워야

제 빛을 발하는 별빛처럼  현실이라는 진창 속에 피어있는 연꽃의 봉오리를  찾기 위해서일까?

17년도 <이상문학상>의 문장은 낮고 어둡고 추운 곳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출발은 어찌보면 문학이 현실의 재현이라는 틀을 깨고 더 나아가 문제의식의

표출을 통한 문제제기와 이에 대한 읽는 이의 공감대와 해결방법에 관한 모색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처럼 열매를 따먹고 그걸 향유하라는 권고는

아니더라도 문학이 주는 정서의 환기와 휴식이라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에서는

안타까운 점이다.


  그런면에서 『2017이상문학상 작품집』의 <풍경소리>는 수록된 다른 작품들과 차별성을 지닌다. 

작중인물인 미와는 타인 뿐만 아니라 미혼모로 자신을 낳은 엄마와도 소통하지 못하는 고립되고

소외된 인물이라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성불사에서 보낸 치유의 시간을 통해 다시 현실로 되돌아갈

힘을 얻는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차별성을 지닌 인물이다. 


  <풍경소리>에서 작중인물을 치유로 이끄는 힘은 '풍경소리'에서 출발한 은유의 확장에서 나온다.

먼저 미와(작중인물)는 엄마의 죽음 이후 가슴 속에서 무수히 들끓는 '왜(고양이 울음소리로 상징)'를

잠재우지 못한 불안정한 상태에 처해 있다.  미와는 성불사에 가서 풍경소리를 들으라는 지인인

서경의 말을 듣고  성불사에 가게 된다. 


  누구도 자신에게 '왜'라고 묻지 않는 성불사 사람들 속에서 풀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달밤에 들려오는 풍경소리를 들으며 미와는 '풍경'을 부르는 명칭인 '풍탁(주승이 부르는 명칭),

풍탁(수봉스님이 부르는 명칭), 풍령'을 떠올린다.  사람들이 '왜냐며'물을 때는 어떻게도 표현할 수

없었던 '왜'는 공양주인 좌좌가 내어준 된장으로 무친 나물을 먹는 순간 예기치않게 뿜어져나온다. 


 다른 일체의 양념없이 단순히 된장만으로 무친 좌좌의 두릅나물이 다른 양념이 없어서 오히려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을 올곧게 느끼게 했던 것처럼 '왜'냐고 묻지 않는 성불사 사람들의 고요함

속에서 미와는 피하려고만 했던 고양이 울음소리를 마주할 용기를 갖게 된다. 


「~낮에 좌좌가 끓여준 커피도 커피가 아니었잖아.

무슨 풀뿌리를 달인 물인지는 몰라도 커피가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그런데 커피가 아니라고 좌좌가 말하지 않아서

나도 커피가 아니군요, 라고 말하지 않았다.

커피가 아니면 안되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풍경소리>p24


  이후 미와는 좌좌가 내어준 커피(실은 커피가 아닌 어떤 풀뿌리를 끓인 물인지 알 수 없지만)를 마시며

 '커피'는 아니지만 '커피가 아니면 어떠한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승은 미와에게 수봉스님과 함께

대적광전 외벽에 그려진 벽화를 볼 것을 권한다.  미와는 벽화 속 소를 몰며 피리를 부는 소년이 사라지고

결국 하나의 원만 남은 마지막 벽화에 이르러 '대적'(큰소리), '묘음'(고양이 울음소리), '풍경소리'가

모두 결국은 '영'이고 '공'이고 '빵'이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상철이 소리가 전혀 안 들리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들려도 한결 편해졌다. 

소리라기보다 그것은 기억이거나

환청에 가까운 것이어서, 라고 생각하면 들려도 견딜 만했으니까.

상철이에게서 애써 벗어나려 하지 않고,

들리려면 들리라지, 했더니

소리의 날카로움이 훨씬 줄었다.

풍경소리가 점점 맑아져서

나는 그 풍경소리에

더 많은 것들을 의지하게 되었다.」<풍경소리> p52


  결국 고양이 울음소리에 시달리던 미와를 치유한건 본인 자신이다.   문제의 시작도 그 문제의 답도

자기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풍경소리>를 통해 깨닫게 된다.  잔잔한 수면에 달 그림자가 온전히 담기듯

고요한 마음 속에 자신을 비춰볼 때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작가는 적막 속에서 울리는

'풍경소리'에 담아 들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