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라쇼몬>을 읽고 모리미 도미히코의 <야행>과의 유사성을 살펴보다.

묭롶 2017. 8. 27. 15:22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처음 알게 된 건 1997년 재일교포인 유미리가 <가족 시네마>로 제116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을 때였다.  사실 수상한 작품인 <가족 시네마>의 내용보다는 일본문단에서 공인된 문학상 중 평가가 높은

상을 수상했다는 점에서 더 화제가 됐던 상황이라 나는 자연스럽게 아쿠타가와 상에 대해 호기심이 들었다.


※ <아쿠타가와 상> -출처: 다음백과사전.

아쿠타가와의 친구였던 기쿠치 간[菊池寬]의 발안으로 설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1회는 이시카와 다쓰조[石川達三]의 〈소보 蒼氓〉가 수상했다.

매년 2회 이른바 순문학 분야에서 무명 또는 신진작가의 이미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선정해서

상을 수여하는데, 일본 최고의 문단 등용문으로 지목되고 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1892년 일본에서 태어나 1927년까지 서른다섯해의 삶을 살다간 인물로

정치적, 문화적 급변기에 일본 근대 문학의 틀(전형典型)을 정립했고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의식을 예리하게 글로 담아냈다. 


  내가 류노스케의 『라쇼몬』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올린 인물은 소설 <날개>의 작가 李箱이었다. 

류노스케의 단편집에 담긴 인물들의 심리는 <날개>의 '나'의 심리와 닮아 있다.  작가 개인의 삶을 놓고

볼때도 어머니의 정신이상으로 인해 언젠가 자신도 정신이상을 일으키고 말거라는 강박에 시달렸던

류노스케가 쓴 공포의 기록이 그의 단편집이라면 이상이 각혈을 통해 죽음이 자신의 가까이에 있다는

자각 아래 쓰여진 공포의 기록이 그의 소설 <12월 12일>이다. 


  문학적 평가에 있어서도 이상과 류노스케는 각각 한국과 일본에서 문단의 등용문이자 문학적 성과의

인정으로 여겨지는 이상문학상과 아쿠타가와상의 제정이 양국에서 평가되는 그들의 문학적 성과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 <이상문학상> -출처: 다음백과사전

1977년에 제정하여 매년 10월에 시상하고 있다. 문단경력이나 업적, 소설의 길이에 구애받지 않고

작품 위주로 선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심사위원은 문학평론가, 문화부 기자, 문학잡지의 독자,

문학을 전공한 교수로 구성된다. 지난해 8월부터 그해 7월까지 발표된 작품 가운데 후보작 8편을

골라 이중 1편을 뽑아 시상한다. 상금은 대상 수상작 1,000만 원, 추천 우수작 각 100만 원이다.

수상 작품은 모두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에 실리게 되며, 수상 작가로는 김승옥·이청준·오정희·

유재용·박완서·최인호·서영은·이균영·이제하·최일남·이문열 등이 받았다.


   언제나 내 마음의 화두인 이상과 닮은 점이 많아 보이는 류노스케의 단편모음집 『라쇼몬』을

읽으며 얼마전 읽었던 모리미 도미히코의 『야행』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신경이 쓰인 것은

잠에서 깨기 전에 꾼 꿈이었다.

나는 이 방 한가운데 서서 한손으로 그녀를 목 졸라 죽이려 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목 졸라 죽이는 일에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 씨는 그저께부터 안 돌아왔는데요."

나는 비교적 살림집들이 많은 히가시카타마치를

걷고 있는 동안 문득 언젠가 꿈속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뿐만 아니라 나는 그 꿈속에서도 역시 세탁소를 나온 후

이런 쓸쓸한 거리를 홀로 걷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 역시 단박에

그 꿈속의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들었다........」<꿈>P97~100


「"무서운 꿈을 꿨어요."

~아내는 알전구가 켜진 세 평 정도의 손님방에 앉아 있었다. 

작은 일본식 옷장과 커다란 대야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이어서

마치 감옥처럼 황량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아내는 계단 입구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사람 얼굴이, 당신하고 꼭 닮았어요."     ---꿈

"데리러 왔어.  자, 함께 돌아가자."

~"당신은 그 집 2층에 있었지."

"그래요.  계속 거기 있었어요.  암실처럼 어두웠죠."」--현실

『야행』 P46~70


「~열차는 어둠 속을 계속 달려갔다..

~그날 밤부터 나는 줄곧 암실 속에 있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눈에 비친 것이 내 마음속에는 와닿지 않았다. 

그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도쿄나 도요하시에서 지낸

날들은 계속 달려가는 열차 차창에 비친 꿈에 불과했을 것이다.

~"......여기는 그 암실이었구나."

"그래요.  우리는 줄곧 함께 있었어요."」『야행』 P220~221


  류노스케의 단편 <꿈>이 담고 있는 자아와 현실의 경계의 모호함은 모리미 도미히코의 『야행』에서

보다 풍부하게 확장된 서사의 형태를 보인다.  물론 두 작품과의 관련성을 통해 류노스케가 미친 영향력을

직접 확인할 수는 없지만 류노스케는 개척되지 않은 미지의 항로에 어떤 하나의 좌표를 개척함으로써 그 주변

으로의 문학적 항해를 가능하게 만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편집 『라쇼몬』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자아와 현실의 경계의 모호함에 대한 탐구 뿐만이

아니라 이 작품이 인간의 드러난 감정 저층에 감춰진 작중인물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감정을 문장을

통해 길어올린다는 점이다. 


「"내가......내가 나쁜 걸까요?  그 아기 죽은 것이......"

도시코는 갑자기 남편의 얼굴을,

묘하게 열에 들뜬 눈길로 쏘아보았다.

"죽은 것이 기뻐요.  안됐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래도 나는 기쁘다고요.  기뻐해서는 안 되는 걸까요?  여보."」<엄마> P89


  가장 대표적으로 양가감정이라 불리는 예를 들어 타인의 불행에 대해 느끼는

인간의 동정하면서도 한편으로 그 사실에 위안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그처럼 예리하게 표현하긴

힘들 것 같다.   남들보다 긴 코 때문에 고민하는 주지승의 심리를 그려낸 <코>나 평생에 걸쳐 동경해온

마죽을 실컷 먹게된 오위가 막상 엄청난 양의 마죽을 대했을 때의 심리를 담은 <마죽>, 그리고 비참함

속에서도 인간이 지켜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무시무시한 광경에 대한 묘사로 색다르게 드러낸

<라쇼몬> 등 류노스케의 단편에 실린 인간의 모습은 일곱빛깔 무지개가 아니라 스펙트럼에 비춰진

총 천연색 수만가지 색상과 같은 천차만별이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주제를 놓고 글이라는 도구로

인간을 스펙트럼처럼 비춰낸 그의 단편집은 장편이 아닌 단편이라는 이유로 다양한 메타포로서의

확장성을 지닌다. 


  그 메타포의 확장의 영역에 놓인 작품이 모리미 도미히코의 『야행』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일본 문학을 그동안 접하지 못했지만, 앞으로의 독서를 통해 류노스케의 영향력을 살펴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 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