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치누아 아체베>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소설을 통해 시대상의 총체성을 길어올리다.

묭롶 2017. 7. 10. 22:00


  치누아 아체베가 쓴 소설 내용을 기사로 옮긴다면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19xx년 xx월 xx일 오후 몇시경, 우무오피아의 군중집회 중지를 촉구하는 재판소의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집회에 방문한 재판소 전령이 이보족 출신 xx살 남자 오콩코가

휘두른 도끼에 살해당했다.  이후 재판소 측은 가해자 오콩코를 살인 혐의로 체포하기 위해

xx일 몇시경 그의 집을 급습했으나 오콩코는 이미 나무에 목을 매 자살한 뒤였다.>


  사건의 기사 내용은 오콩코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이고 어떠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으며

왜 그러한 일이 발생했는지를 전달하지 못한다.  이 기사는  단순히 발생한 사건의 정보만을

독자에게 전달할 뿐이다.

 

  사실을 기록하는 도구인 역사도 그러하다.  시간의 흐름과 변화에 따른 사실관계가

기록될 뿐, 역사에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상과 정서는 담아낼 수 없다. 


  역사와 기사가 전하지 못하는 부분을 소설은 그 사건을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함으로써 독자는 시대의

변화와 역사적 사건들이 개인의 삶에 미친 영향과 더 나아가 그 시절을 살아간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오히려(역사나 기사보다도)

사실적으로 접근하게 된다.


「" 문제가 된 땅은 어떻게 되었는가?"

"백인 재판소가 은나마 가족 소유라고 결정했다네.

이들이 백인 전령과 통역에게 많은 돈을 주었다네."

"백인이 땅에 대한 우리의 관습을 알기나 하는가?"

"우리말조차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알겠나. 

그런데도 백인은 우리 관습이 나쁘다고 말하네.

게다가 백인의 종교를 받아들인 우리 형제들마저 우리 관습이

나쁘다고 말한다네.  우리 형제들이 우리에게 등을 돌렸는데

어떻게 우리가 싸울 수 있겠는가?  백인은 대단히 영리하네.

종교를 가지고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들어왔네.

~그가 우리를 함께 묶어 두었던 것들에 칼을 꽂으니

우리는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네."」p207


  이미 종교를 앞세운 서구문명의 제국주의 침탈과정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는 다수의 작품들을 통해 표현되었지만,

치누아 아체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는 그 작품들과 큰 차이점을 지닌다.  제 3세계에 대한 자본 및 제국주의의

침탈을 다룬 대다수의 작품이 상위문화에 의한 하위문화의 몰락 내지는 문명과 미개를 큰 틀로 놓고 접근한 반면, 치누아 아체베는

작중 배경인 우무오피아의 세계를 그 나름의 자급자족의 질서가 존재하는 대등한 문화환경의 자리에 놓고 서로의 이해와

설득을 통한 평화적 과정이 배제된 채 무력에 의해 한쪽이 일방적으로 무릎 꿇리게 되는 상황의 부조리와 불합리를

오콩코라는 인물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우무오피아 문화의 수호자 역할을 맡은 오콩코는 비극적 인물이다.  자기자신의 결점으로 인해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놓인 그리스, 로마 신화 속 비극적 인물들처럼 오콩코는 자기자신의 신념 때문에 결국은 부족의 규칙을 깨고

자살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치누아 아체베는 오콩코의 자살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사회적 타살로 본다.  우무오피아가 지켜 오던 오콩코와

그의 이웃 아홉부족을 감싸고 있던 세계에 대한 이해와 점진적 접근에의 노력 없이 단번에 물리력을 동원하여 그 세계를

파괴해버린 것에 대한 민족적 수치심과 저항감이 오콩코의 자살이라는 형태로 문학적으로 표출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우무오피아의 비극은 어느 한 민족,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작품의 공감대가

전 세계와 전 인류에 까지 확장된다.  이는 불합리한 사회, 불평등한 사회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든 비극적 사건들을

상징하는 메타포적 성격을 지닌다.  그런 이유로 작품의 발표시기는 1958년이지만 이 작품이 보여주는 문제제기는

현재와 미래를 포함한다.  소설문학은 단순한 사실관계의 기록에 그치는 역사와 기사와 달리 문제제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를 예견하는 예언자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미 그 예를 우리는 조지오웰의 『1984』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인류문명의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동일하고 비슷한 유형의 일들이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일어나고 벌어진다. 

아마도 치누아 아체베는 그 반복되어지는 역사 속에서 문학이 단순히 현실에 대한 겉핥기에 머무르지 않고 그 내부의

원인과 그리 인한 결과를 한데 다룸으로써 길어올려지는 전체적인 감수성이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사람들에게

지혜와 방법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의 아프리카 연대기를 썼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ps.  한편으론 내 자신이 외세에 수탈당하던 시절에 태어나지 않았음에 감사하면서도, 그 시대를 살았더라면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를 상상해보게 된다.  어린시절 나는 친일파와 매국노를 처단하는 비밀결사 단체에서

활약하는 내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다.  내 스스로 그 비밀단체 이름을 흑장미파라고 명명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을 사는 나는 내 주변의 타인들을 포용하는 방법을 찾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 그보다

넓고 큰 역할을 수행할 자신이 점점 더 없어진다.  이런 내 현재 기준을 놓고 볼 때, 작중인물 오콩코는 정말 용기있는

사람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