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밴드 로맨틱펀치 보컬이 『야행』을 읽는다고 했을때, 모리미 도미히코의 전작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에
비춰 가볍게 읽을만하겠단 생각을 했다. 왠걸,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특유의 웃음기를 싹 지운 그의 서늘한 문체를 보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주요 내용은 십년 전 구라마 진화제 때 실종된 하세가와 사건 이후 다시 만난 다섯명의 작중인물들이 겪는 불가사의한
경험담을 담고 있다. 소설의 서사를 진행하는 다섯명의 이야기는 각각 <야행>이라는 주제로 제작된 기시다의 동판화를 매개체로
연결된다. 그 각각의 이야기는 각각의 지명을 주제로 한 <야행>시리즈의 한 부분에 속한다는 공통점을 매개로 서로 다른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 사실과 가상, 의식과 무의식을 구분할 수 없는 칠흙같은 모호함 속에 혼재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야행』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은 작중 인물들이 느끼는 실제(實
『야행』의 작중인물들을 엮는 공통점은 동판화가 기시다의 연작 <야행>의 '소리'없는 그림 속의
세계에 담긴 얼굴없는 여성에게 자꾸 누군가를 투사한다는 점이다. 그 얼굴 없는 '여성'에게 자신의
의식을 '투사'함으로써 '얼굴없던 여성'은 '주체성'(실제)을 지니게 된다.
李箱 의 시 '거울'에는 크게 세 명의 자아가 존재한다. '거울 밖의 관찰하는 자아', '거울 속의 자아',
그 둘을 '관조하는 자아' 명백히 사회통념상 그 셋중 보편적으로 인지되는 자아는 하나이지만, 李箱에게는
이 셋 모두가 실제이다. 어쩌면 '포즈'라는 단어를 사용할때의 李箱은 그들 제각각의 자아에 저마다의
역할을 부여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야행』도 마찬가지다. 그 분리된 자아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인식되어지는 현실에 대한 의심과 더불어
기시다의 연작 <야행>의 다른 면에 존재하는 <서광>을 통해 우리가 존재하는 시간이 억겁의 시간동안
미묘한 차이로 인해 어느 순간 어느접점에서 서로 연결되어 뫼비우스의 띠처럼 하나의 고리를 이루는게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 지점에서 얼마전 흥미롭게 읽은 李箱에 관한 논문 중 그의 시를 도형에 도입하여 해석하려는 방법론에
관한 글을 떠올리게 된다.
『李箱문학전집5』 p68~69
이 전집에 수록된 논문은 이상 연구가 조수호님이 쓴「도형에서 바라본 이상 시의 해독」의 일부이다. 페이지도 의미심장하게
내가 좋아하는 보컬님의 생일과 같은 69 페이지에 수록된 이 태극도형은 그의 시 '거울'의 도형화된 모습이자, 『야행』의
연작 반대편 세계에 놓인 <서광>을 연상시킨다.
이 논문에는 이상이 자신의 작품 세계를 실제(삼각형)와 이상(역삼각형)이 합치된 세계(사각형)로 놓고 이 사각형의 세계(작품)가
끊임없는 운동을 통해 종국에는 원(써클)의 세계로 귀결된다는 논리가 담겨있다. 결국 이상의 작품(시, 소설)세계는 어떤 하나의
고정된 형태가 아닌 어떠한 방향성을 지닌 운동을 통해 순환과 회귀성의 세계를 지향한다는 논지인데, 이는 작품 『야행』이
지향하는 어떤 고정된 하나의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의 가능성에 대한 여지와 일맥상통한다 볼 수 있겠다.
내가 이 작품들간의 연관성을 통해 발견하는 중요성은 바로 '자아의 중심'이다.
움직이는 물체가 방향성을 잃게 되면 그 앞으로를 예측할 수 없듯이 이상의 시 '거울'과 『야행』에서의 화자는 혼란에 빠지기
쉬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방향성(주체성)을 잃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자신의 의지대로 자아를 조절하려는 의지가
실제와 가상을 구분지을 수 없고, 나와 너, 그리고 나와 또다른 나를 구분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결국은 '나'를 지킬 수 있다는
깨우침은 현재는 물론 앞으로의 혼돈을 살아가야할 내일의 모두에게 주는 큰 가르침이 될 것이다.
ps: 원래 나의 독서는 하나의 연결고리를 찾게 되면 삼천포가 아니라 우주 끝까지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이미 이상의 시를
내 나름으로 도식화해보려는 미약한 시도 끝에 단 한 편을 나름의 방식으로 인식하고 난 뒤에 마음에 드는 논문을 읽고나니 결국은
읽는 책들의 내용의 방향성이 한곳을 향하게 된듯하다. 결국 내가 써놓고 내 자신이 느끼게 되는 난독 또한 두고두고 내가 풀어야 할
숙제려니 생각한다.
ps2: 『야행』을 읽고 오래전에 TV에서 방영했던 <환상특급>이 떠올랐다. 그리고 영화 <업사이드다운>도 동시에 연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