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82년생 김지영>

<82년생 김지영>소설이라고 하기엔 다큐멘터리에 가까워 더 서글픈 지영이 이야기.

묭롶 2017. 6. 28. 23:08

  나는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애들은 낳아놓으면 다 알아서 큰다'는 말을

엄청나게 싫어한다.  친정엄마가 TV에서 11남매를 다룬 프로그램을 보면서

애들이 참 밝고 예쁘다고 말씀하셨을때, 난 형편도 안되면서 애 많이 낳는

사람이 제일 싫다고 버럭 화를 내서 엄마를 무안하게 했던 적도 있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며 대한민국의 80년대와 90년대를 거쳐

현재를 살아가는 지영이의 삶과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있음직한

이야기를 꾸민 소설이 아닌 그냥 있는 이야기를 지영이라는 인물을 빌려

그대로 담아놓은 듯 해서 마음이 씁쓸했다.


  흔한 말로 과장된 이야기를 두고 소설쓰고 있네 라고 핀잔을 하는데,

이건 과장이 아닌 그냥 날것 그대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재이니

그냥 뉴스나 매체를 통해 접할 때보다 오히려 더 마음이 아파왔다.


  실은 결혼 전 나는 내가 여자라고 생각을 해본적이 별로 없다.  그냥 내게 지워진 짐과 주어진 하루하루가 너무 버거워서

그걸 간신히 버티느라 언제나 조바심과 안간힘을 써왔기에 난 여자로 살지 못했다.  물론 그와중에 대한민국을

사는 여성이기에 겪게 되는 차별적 상황에도 그걸 왜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이런 불합리한 상황을 당해야 하나

라는 생각보다는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해서 정작 차별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랑하는 남자를 늦은 나이에 만나 내가 그냥 사람이 아니라 여자였음을 자각하게 되고 그 남자를 너무 닮은 딸아이를

낳으면서부터 대한민국을 사는 여자의 삶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다.  아마 첫째가 아들이었다면 나는 딸을 낳기 위해

둘째를 낳았을지도 모르겠다.  산부인과에서 딸이라는 말을 들었을때의 기쁨이 지금도 생생하다.  친정엄마는 줄줄이

딸을 셋을 낳고 중간에 지워버린 아이들의 텀만큼 시간이 흘러 막내로 아들을 낳았다. 


  세 딸들이 동네에서 공병을 주워 그걸 팔아 오십원짜리 쭈쭈바를 사서 삼등분으로 나눠먹을때 막내 남동생은 아빠가

사다주신 빵빠레를 먹었다. 둘째 여동생은 그때 막둥이를 쥐어박고 싶었다고 했지만 난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엄마, 아빠, 할머니에게 우리는 그냥 낳아만 놓은 부록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메인도 아닌 부록에게 부도를 내놓고 혼자 알아서 마침표 찍고 떠난 아빠가 남겨놓은 부채들(할머니, 동생들)이

맡겨졌으니, 난 여자여서가 아니라 난 부록인데 왜 내가 책임감과 부채감을 가져야 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이후 선택의 여지가 없이 여상을 나와 고3 때 회사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살았다.  뭘해도 남들보다 몇곱절,

몇십곱절 더 열심히 했지만 단 한가지 애를 더 낳을 자신은 없다. 


  주변 사람들은 너무 쉽게들 말한다.  애 혼자는 너무 외롭다고,  그럼 나는 애를 낳고 오년 넘게 여자는 고사하고

사람으로 살지 못했는데 그걸 또 그것도 혼자 감당해내라는 것인가?  동생을 안 낳아준다며 책임감 없고 배려심 없는

엄마로 만들어버리는 주위의 모든 핀잔과 걱정에 나는 당당하게 자신없다라고 말한다.  물론 비겁한 변명이고

이기적일수도 있겠지만 지금껏 이기적이지 못했던 내 삶에 미안해서라도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리고 물론 내 딸도 지극히 이기적으로 자기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그건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가야하는 내 딸에 대한 배려라기 보다는 이 나라에서 한 사람의 주체적인 인간으로 커가길 바라는

나의 희망이다. 


  중요한 건 여성이 살기 힘든 사회는 그 사회구성원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여성이 불행한데 어떻게 그

 가정이 그리고 그 주변이 행복할 수가 있을까?  이건 비단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와 가정의 어느 일부분이

비정상적으로 기울어진 상태라면 그 상태에서 안정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우선은 균형을 맞추는게 급선무다.

그렇기에 현재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독박육아와 보육대책, 그리고 여성의 육아휴직과 출산휴가에 대한 보장이

이뤄져야만 사회 구성원의 행복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지난 십년의 무통 시대를 벗어나 긍정적 희망을 기대해봄직한 세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아마 『82년생 김지영』 이 그 암흑의 시기에 출간이 됐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너무 힘들어서 이 책에 담긴 내용을

받아들일만한 여유가 조금도 없었을 것이다.  오랜 암흑을 뚫고 그 자그마한 틈새로 비쳐드는 햇빛에도 싹을 틔우는

풀잎처럼 이 책이 대한민국의 음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희망이 되어주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