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윌리엄 골딩>

<피라미드> 봉건제 -> 자본주의 -> 신봉건자본주의

묭롶 2016. 11. 9. 16:17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이 있다.  한 때는 개인의 노력여하에 따라

가능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지만, 지금 대한민국을 사는 사람 중에

이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신분이 세습되는 봉건제는 폐지되었지만 금수저, 흙수저로 구분되는

부와 권력에 따른 세습은 이 나라에서는 공공연한 현실이다.  자의에

의해 선택할 수 없는 출생마저도 그렇게 태어난 건 너의 죄니, 그냥

그렇게 살라는 암묵적 동의가 통용이 되는 사회=대한민국.

 

「하지만 우리 마을에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많고

큰 무대와 오케스트라석 그리고 강당이 있다 하더라도,

엄청난 제약이 있는데, 바로 사회적 제약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지 않게 그려진 선 안의

소수만이 참여할 수 있었다.  누구도 그 선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p149~150

 

  하지만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었나보다.  윌리엄 골딩의 『피라미드』는 스틸본이라는

가상의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사회적 지위에 의해 계급 지워진 사람들의 위선과 부조리를

드러내보인다.

 

아주 어렸을 때, 말하자면 순수했을 때, 우리는 함께 놀았다. 

그런데 이완 아주머니나 우리 어머니가

알지 못하는 일들이 있었다.  이제 막 유모차를 졸업할 때였다.

"넌 내 노예야."

"아니야."

"노예라니까.  우리 아빠는 의사 선생님인데 너희 아빠는 약사일 뿐이야."」p27~28

 

  스틸본이라는 마을은 사회적 지위와 부를 다 가진 클레이모어, 이모젠 부부와 사회적 지위를 지닌

이완 의사가족, 작중 화자인 올리버의 가족, 마을의 정리를 맡고 있고 빈민가의 입구에 사는 이비의 가족,

그리고 빈민가로 분류된다.  그들은 서로의 계급끼리 교류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은밀한 질투와 견제를

멈추지 않는다. 피라미드의 상층부에 위치한다고 스스로 자부하며 부(富)의 축재를 통해 자신들의

위치를 넘보는 헨리를 향해 표면적으로는 동류가 아니라며 멸시하지만 그런 그를 부러워한다.

 

  이런 상층부의 위선은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올리버를 대하는 그의 부모 의 이중적 태도에 의해

드러난다.  올리버의 부모는 자신들 스스로를 지각있는 계층으로 자부하지만 내심은 이웃인

이완 家 의 아들보다 자신의 아들이 높은 위치에 놓이기를 원한다.  그들은 돈이 안되는 음악보다는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하기를 권유한다.

 

「왜냐하면 나의 절벽 역시 이완가만큼 견고했지만, 그만큼 높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예컨데 실직 상태로 시청 근처에서 시간을 때우는 무지렁이들과 이비 사이를 갈라놓은

절벽만큼은 높지 않았다.  ~그녀의 부모님에게 나는 가능한 구혼자였다. 

~우리 집 문 앞에 나타나 아버지에게 나의 계획이 뭔지 묻는 상상이 악몽처럼 떠올랐다.」p77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모든 게 다 잘못되었어요. 

모든 게요.  진실도 없고 정직함도 없어요.

오. 맙소사!  삶이란......~하늘만 봐도 그래요 

스틸본은 하늘을 지붕으로 받아들이죠.

마치......그리고 우리가 몸을 숨기는 것,

우리가 말하지 않고, 감히 언급도 하지 않는

것들이나 우리가 만나지 않는 사람이나......

그리고 사람들이 음악이라고 부르는 그것들.

다 거짓이에요!」p195

  작중화자는 스틸본 마을의 계급사회의 현실을 직시하지만 자신보다 아래 계급에 놓이는 이비와

헨리를 대하는 태도에서 이러한 계급 사회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예고한다.  

 

「~내가 인정받고 알려졌으며 약사의아들이라는 점은 명백했다. 

또한 명백한 점은 내가 제대로 된 사회적 위상을 갖춘

람들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었다.」p188

  암묵적 동의 속에 서로가 각자의 지위를 인정하는 소수가 대한민국을 이끄는 한 이 나라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상황은 고착되고 더 견고해져서 신라 진골, 성골, 육두품처럼 소수의

사람들의 세습을 통해 신흥 봉건자본주의가 도래할 것이다.  무서운 건 사회적 동의를

우리가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채 거부하기를 포기한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가 포기하면

그 무엇도 변할 수 없다.  영화 <AI >의 대사 중 "과거는 기억할 수 있지만 바꿀 수 없다.

미래는 기억할 순 없지만 바꿀 수 있다.  그러니 지금 행동해야 한다"라는 부분이 있다.

맞다. 지금은 행동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