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존 그린>

<안녕, 헤이즐> 지금 그 모습이어도 괜찮아!

묭롶 2014. 8. 17. 18:37

  얼마전 직장동료가 내게 별명을 지어줬다.  "하자(瑕疵!!)" 

 제조공정에서 품질에 문제가 생긴 결품처럼 하자품이란 말이었다. 

직원들의 별명을 지어주는데 촌철살인의 재능이 있는 직원이

영화를 혼자 보러다니는 나를 보고는 '하자'라고 부르더니 맘에

들었던지 고정적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난 '하자'라는 별명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지지고 볶고 뭔가가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과 달리 조금 부족하지만 지금의 내 상태 그대로를

표현하는 단어로 딱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를 거쳐간 많은

별명 중 미코(미친과 사이코가 중첩되어 강조된)도 있었지만

'하자'라는 별명이 나에게 깔맞춤처럼 입에 착착 감겼다. 

급기야는 내 입으로 내 별명을 주변에 전파하기에 이르렀다. 

다들 자신을 과대포장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나 자신을

그처럼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단어를 찾은 기쁨을 널피 알리기

위해서였다.

 

  며칠전 네 살된 딸아이는 "엄마, 왜 뒤에는 눈이 없어?"라고 물었다. 

사실 앞만 보고 달리는 인간의 삶을 이처럼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19살에 직장생활을 시작해서 39살까지 앞만

보고 죽자고 달렸던 나를 말하는 것 같았다.

난 딸 아이의 질문에 "응, 뒤에 눈이 있으면 뒤돌아 볼 필요가

없어지잖아."라고 대답했다. 맞다.  사람은 가끔씩 멈춰서

뒤를 돌아다봐야하기 때문에 뒤에 눈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돌아볼 시간도 주어지지 않은 짧은 삶을 살다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최근 개봉을 앞둔 영화 <안녕, 헤이즐>의 원작『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는 바로 뒤돌아 볼 여유도 주어지지 않은 짧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헤이즐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선입견에 비춰 타인의 삶을 마음대로 해석하지만,

짧은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그들만의 이야기와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들의 삶을 해석할 권리가 누구에게도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엄마, 나 공주님이야?"라고 묻는 딸아이의 질문에 "그렇지, 우리 딸은 별님 공주님이야. 하늘에서 엄마, 아빠를 지켜보다가

같이 살려고 내려온거야."라고 답했다.  어린이집을 다니는 딸은 공주님이라는 답을 들은 다음날 같은 반 친구로부터

"넌, 공주님 아니야."라는 말을 듣고 내게 자신이 별님 공주님이 맞는지를 되물어왔다.  요즘 나는 39개월 된 딸아이의

질문을 들으며 인간의 삶은 살아온 시간이 아니라 살아온 과정이 중요하단 생각을 해본다.  딸아이에게는 자신이 공주인지

공주가 아닌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자신을 소중한 존재라고 인식하는 현재의 시간이 필요하단 생각이 든 것이다.

내일의 내가 아니라 현재의 '내'가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중요하단 사실을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를

통해 확인하게 된 것이다. 

 

  타인이 보기에 어떠한 모습이더라도 현재의 그 모습만으로도 '괜찮다'는 위로가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