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요나스 요나손>

나 자신을 스스로 꺾지 않는 법을 100세 노인에게서 배우다.

묭롶 2014. 7. 13. 21:28

 

 

    나는 2014년 8월 1일부로 입사 20주년이 된다.  19살에 입사해서 내일모레면 불혹이니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이십년이 그토록 짧게 느껴지는 걸 보니 지나온 시간들이 Ctrl+C, Ctrl+V의 반복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전월 마감 정리와

새달의 목표치를 맞추기위해 달려온 한 달, 또 한 달을 쳇바퀴처럼 돌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차를 바꾸고 집을

옮겼다.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도 가족에 대한 부채감으로 일정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고부터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내 자신을 소모해왔다.

 

  나는 대외적으로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나를 포장해왔지만 사실 나를 이끌어가는 힘은 부정적인 태도에서 나온다.

이십여년의 짧지않은 시간은 나에게 다양한 인생경험과 더불어 내가 보기에도 끔찍한 선입견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삶을 살아가는데 긍정적인 태도가 삶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살아갈만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면

부정적인 태도는 삶의 드러난 겉면이 아닌 내면을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삶의 지혜를  배우게 한다. 

긍정이라는 기성복을 입고 사회생활을 하는 부정적 인간인 내가 100세 노인 알란에게 한 방 먹었다는 기분이 든다.

 

  불혹을 앞둔 나이가 되니 대부분의 경조사의 대부분이 상갓집이다.  빈소에 가면 고인이 칠십대면 위로를

팔십이면 안타까움을 그 이상이시면 호상이라는 인사치례를 하게 된다.  대한민국에서 100세 노인을 상상한다는 건

본인의 경제적 능력유무에 따라 그 삶이 평가되어지는데, 이 스웨덴 할배는 100세의 나이에도 새로운 삶을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으니 정말 특이한 분이다. 

 

  새로운 것을 한다는 건 얼마간의 불안과 긴장, 두려움을 동반하는데 알란할배는 그런게 없다.  어찌보면 한때

동행이었던 헤르베르트 만큼이나 생각이 없다.  특이한 점은 알란의 즉흥적인 판단과 흘러가는 대로 자신을 맡기는

태도가 자포자기가 아닌 자의에 의한 선택이란 점이다.  인간은 본래 선택을 해야할 때 조금 더 나은 쪽을 택하기

위해 갖은 고민을 하기 마련인데, 알란의 선택에는 그 고민의 과정이 없다.  그의 선택이 언제나 그를 행운의 방향으로

이끌지는 않았지만 할배의 가장 큰 강점은 자신의 선택에 불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맘에 들지 않으면

훌훌 털고 (중이 절이 싫으면 자기가 떠나듯이) 다른 삶의 길을 찾아나서면 그만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100살까지 산다면 나는 내 삶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백한살에

아만다 여사와 새 인생을 시작하는 알란과 나의 가장 큰 차이는 '할 수 있다'와 '없다'에 있다.  삶을 살면서 생각이

많다는 건 그만큼 내 자신을 생각이라는 과정을 통해 '할 수 없다'에 동의하도록 스스로 포기하게 만든 경우가

많음을 의미한다.  실례로 입사 이십주년이 되면 평소 가고 싶었던 터키여행을 가겠노라고 열심히 자료를 모으고

노래를 불렀음에도 나는 스스로 여행을 포기했다. 

 

「〔에이, 쓸데없는 걱정 말라고!〕알란은 기장의 헤드셋을 벗겨 자기가 착용하며 영어로 말했다. 

〔헬로?  발리 공항이오?〕관제탑에서는 곧바로 그쪽의 정체를 밝힐 것이며,그렇지 않을 경우

인도네시아 공군을 보낸다고 경고했다.  〔내 이름은 달러요.  10만 달러.〕알란이 대답했다. 

 ~〔헬로? 아직 거기 계십니까, 미스터 달러?〕

~〔당신 이름이 뭔지 다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내 이름은 20만이오.  자, 이제 착륙해도 되겠소?〕

~〔발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미스터 달러, 당신을 맞이하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p481~482

 

  100세 노인 알란이 착륙허가를 받는 과정을 보며 난 내 스스로 나 자신을 꺾었던 시간들을 되돌려보았다.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았던 내 자신의 합리화 과정을 돌이켜보며 나는 더 이상 새로움에 대한

시도를 미룰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나는 다시 여행을 꿈꾼다.  낯선 곳에서 사회생활의 기성복을 벗어버린

100% 나 자신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미셸 옹프레는 <철학자의 여행법>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자아를 치유하기 위해, 더욱 스스로를 잘 알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고.  여행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가장 어둡고 그늘진 부분과

가장 친밀해지고, 가장 예민해지고

 가장 가까워지게 된다고.」『내가 사랑한 유럽 TOP10』P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