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2014 이상문학상>

<2014 이상문학상 작품집>:현대인의 불안을 다루다.

묭롶 2014. 4. 16. 18:30

 

  지진이나 자연재난 상황을 인간이 만든 기계가 예측하기 전, 곤충과 동물, 물고기들은 재난을 먼저 감지하고 이상행동을 보인다.  인간에게는 없는 이러한 감지능력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인간에게 그러한 감지능력이 주어졌다면 인간은 위험한 순간을 피할 수 있을까?  자신의 위험을 미리 예견할 수 있다면 인간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어쩌면 종교가 가장 먼저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더 이상 신을 찾을 필요가 없을테니까.

 

  그러나 인간의 문명은 자연재난을 예견할 수는 없지만 인류 문명의 이상징후를 예견하는 장치를 마련해냈다.

 

  문학, 그중 소설은 시대적 특징을 축약된 감수성으로 그려낸다.  음악, 미술 등의 다른 예술 장르와 달리 문학, 특히 소설은 그 안에 총체적인 시대적 특징을 함축해서 담아낸다.  소설이 함축해낸 결과물을 통해 현 시대의 병리적 예후를 진단해내고 그 예후가 그려낼 앞으로의 미래를 예측해볼 수 있다.  갈수록 위축되는 문학의 입지에도 불구하고 문학은 인류의 문제를 가장 예민하게 감지해낸다는 점에서 인류문명에 우선적 입지를 차지한다.

 

  2014년 이상 문학상 작품집에 수록된 작품들이 감지해낸 징후는 고립과 불안이다.  인간이 기댈 수 있는 최소 단위인 가정의 해체와 인간의 개별화에 따른 자존감의 약화 또 자아의 상실 등은 21세기 소설 문학이 꾸준히 제기해 온 문제지만 금번 작품집은 유독 심화된 상황을 한 목소리로 거론하고 있어 마음이 무겁다.

 

  이번 작품집에서 가족은 가졌던 적이 있으나 상실된 형태(「법法 앞에서」, 「기억을 잃은 자들의 도시」,  「쿤의 여행」,「나선의 방향」)로 그려지며, 자아의 약화와 고립(「몬순」, 「파충류의 밤」, 「빛의 호위」,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쿤의 여행」, 「나선의 방향」)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밝은 빛 속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유진이 자신의 말을 다 듣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두려웠다. 

~태오가 조금 더 시간을 끌어볼 작정으로 물러서는데 아파트가 다시 어두워졌다. 

잠시 바라보고 있자니 주저하듯 불이 켜졌다.  다시 불이 꺼지고, 켜졌다. 

예고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몇 번인가 그런 일이 더 일어났다.」-「몬순」p34

 

 

 

「도시는 기억 없이 전진한다.  전진하는 도시 속에서

그가 세웠거나 혹은 겪었던 일가一家는 부서졌다.」-「기억을 잃은 자들의 도시」p170

 

 

「그날 나와 닿은 그 순간부터 쿤은 내 몸에 붙어살게 되었다. 

내 겉모습을 취하고, 내 명령에 복종하며, 내 역사를 공유하고, 내 대신 추해지면서. 

그러니 실은 쿤이 나를 빨아먹은 게 아니라, 내가 쿤을 취하고 사용하고 버린 것이었다.」-「쿤의 여행」p319

 

  문제는 이들이 다루는 가족의 해체로 인한 자아의 약화가 자아의 상실로 이어지고 이는 스스로를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시키는 고립으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이들이 그리는 현 시대의 인간은 자아를 자각하는  상태로는 이 사회에서 기능할 수 없어 대체 자아(「쿤의 여행」의 쿤)를 만들어내고 실제적 자아는 외피 속에 봉인되어 기능을 상실한 양상을 보인다.  2014년 이상 문학상 작품집이 예견하는 실제적 자아가 고립된 표피형 인간들이 대다수인 세상을 생각해보니 두려움이 앞선다.  나 자신의 상처를 돌보고 자아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여유도 없이 생존을 걱정해야하는 동 시대인들의 아픔이 해소될 수 있는 방법이 다각도로 모색되어야 한다.

 

「배우가 되고 싶었어. 그런데 공무원이 되어야 해. 그것도 엄청 잘됐을 때 얘기고,

아마도 죽어라 면접 봐서 대충 날 붙여주는 데 들어가겠지. 취업한 다음에는 무대에

오를 수 없을 테고, 그다음엔 가끔 취미생활로 극장 가는 것조차 힘들어지겠지.」

-「쿤의 여행」p315

 

  숨죽인 자아가 고립을 택하기 전에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소설 문학이 해결책을 내놓을 수는 없겠지만 그 안에서 해결을 위한 담론을 활성화하는 창구가 되어주길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