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이병률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묭롶 2012. 11. 16. 11:59

 

  내게 많지 않는 친구 중에 K가 있다.  K는 영화 <제인 에어>를 보면서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고 드라마를 직접 보는 것보다 더 재밌게 재방송 할 수 있는 친구다.  K를 생각하면 그 친구가 신고 있던 눈부시게 하얀 양말이 먼저 떠오른다.  이남 일녀 중 외동딸이었던 K는 고등학교 때까지 할머니가 손수 삶은 양말을 신겨 키운 귀한 딸내미였다.  입사동기로 만난 K의 삶을 잡초같은 나는 얼마나 부러워했던가....친구들 대부분이 시집을 가고 아이를 낳고 키워가는 동안 이 친구의 생활은 귀하게 큰 외동딸의 입지와는 다르게 많이 기울었지만 생활여건도 K의 태생적 긍정을 꺾지는 못했다. 

 

  그 K 가 내 생일 선물로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를 보내왔다.  책 제목만 놓고도 '바람이 불거나 말거나 난 당신하고 상관없다'라는 삐딱함으로 무장한 나와는 다르게 K가 이 책을 읽고 엄청나게 감동받았음을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K의 정서가 젖과 꿀이 흐르는 동산이라면 나의 마음은 오랫동안 메말라 땅이 쩍쩍 갈라진 불모지이다.  모임에서 친구들이 신랑 흉을 시댁 흉을 볼때도 "그래불었지.. 긍께 어째불겄냐..잉"이라고 호응하는 K 앞에서 똑같이 흉을 보던 나는 새삼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었던 적도 많았다.  

 

  매사 '싫어'를 달고 사는 나와는 다르게 '괜찮다'고 말하는 K, 극단적으로 다른 나와 K사이에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가 놓였다.  이 책이 K의 가슴 속에 촉촉한 봄비나 우수 깊은 가을비로 내렸음은 이미 짐작했던 바, 나는 이 책을 K와는 다른 지점에 놓고 읽었다.  K가 작가가 전해주는 낯설음의 정서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했다면, 나는 글을 쓰기 위해 길 위의 삶을 택한 작가에 관심이 기울었다.   

 

  내게도 비오는 날 우산이 있음에도  펼치지 않은 채 손에 들고 온전히 그 비를 맞으며 걷던 날이 있었다.  머리카락에 맺혀 얼굴로 떨어지는 물방울들, 손등으로 이마로 떨어지며 서서히 그리고 순순하게 비에 젖어들던 내 옷과 내 몸...... 그 시간만큼은 내 몸을 그리고 비를 맞는 나 자신을 확연하게 자각할 수 있었다

 

「나는 물들기 쉬운 사람. 

많은 색깔에 물들었으며 많은 색깔을 버리기도 했다.  내 것인 듯하여 껴안았고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지워 없애거나, 곧 다른 색으로 이사가기도 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사는 색깔도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다른 색을 거부하는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오히려, 손아귀에 쥐고 있던 것을 놓았을 때 더 많은 걸 갖게 될지도 모른다는

본능이 무서워서 더 그러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작가들은 낯설음(타자, 타향 등)의 정서속에 젖어듬으로써 자신을 흠뻑 적신 수분이 맺혀 떨어진 물방울을 모아 작품을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헬의 사막에서 짧은 우기가 식물을 꽃피우고 열매맺는것처럼 수분은 그 자신안에 생명을 싹틔울 가능성을 지니기에, 작가는 자신의 젖어듬 속에서 길어올린 습기의 소산으로 독자의 가슴을 적셔 새로운 감수성을 낳는지도 모른다.  바로 그런 이유로 작가들은 타자의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그 자신을 눈, 비를 피할 수 없는 길 위에 두는 것일까.....

(※문학작품을 습기를 지닌 용기로 비유하면서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의 '물로 축인 목마름의 롱드'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오랜지를 즙을 내어 만드는

음료들이 있다.

시트론과 레몬 따위,

새콤하고도 달콤하기에

목을 시원하게 축여주는 것들.

 

이가 닿기도 전에

입술에 눌려 부서질 것만 같은

엷은 잔으로 마시기도 했다.

그 속에서는 음료가 더욱더 맛있어 보인다.

 

입술과 그것 사이에 놓인 것이 거의 아무것도 없기에.

술을 입술까지 가져오려고

내 고무로 된 잔들을

두 손으로 움켜잡아 마셨더라.

햇빛 속에서 온종일 걷고 난 저녁이면

주막의 투박한 유리잔으로 걸쭉한 시럽을 마셨더라.

때로 물통 속 차디찬 물을 마시고  나면

저녁의 어둠이 한결 더 가까이 느껴졌다.

기름 먹인 염소 가죽 냄새가 가시지 않은

부대 속에 간직했던 물도 마셨다. 」  『지상의 양식 p142~143

 

 

  청국장을 끓이면 온 집안에 그 냄새가 진동하는 것처럼 타인의 삶과 낯선 곳이 전하는 이야기가 작가에게 스며들어 어룽어룽 물방울(글귀)로 맺히는 모습이 눈에 그려져서 나도 내 가슴 속에 맺히는 무언가가 있는가 살펴보게 되었다.  그러자 '엄마'라는 한 단어가 내 가슴 속에 맺혀 있음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정서가 메말라 불모지가 된 내 가슴 속 한구석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엄마'라는 단어........유난히 잠투정이 심한 딸아이가 밤 마다 뒤척이며 불안한 듯 부르는 '엄마',  삶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기에 이제 십팔개월에 접어든 아기가 그토록 불안하게 '엄마'를 부르며 찾는지 그 삶의 현장에 놓인 딸아이가 안쓰러워 엄마를 부를 때마다 그 손을 짠하게 잡아본다.  아마 딸아이에게 이 세상은 매 순간순간이 낯선 곳이며, 잠이 든 그 순간조차도 새로움에 대한 불안은 지워지지 않는 건 아닌지, 내 잡은 손으로 그 불안을 다 꺼뜨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딸아이가 크면 엄마도 사실은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너와 함께 있었지만 너에게는 마치 길을 알고 있고 앞이 보이는 것처럼 너의 손을 잡았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길 위의 삶(타자의 삶에 몸을 적실 준비가 된)을 택한 작가의 글자취를 따라가며 지금 작가를 관찰하는 나라는 공간 속에 안주하고 있던 나도 어쩌면 나라는 안식처가 아닌 나라는 길 위에 있는 여행자란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내가 현재 발 디딘 곳이 길이라면 나는 미래의 딸에게도 나와 거리감이 느껴지는 K에게도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낯선 곳의 바람과 습도를 가지고 내게 다가왔지만 물이 구름이 되고 비가 되는 순환의 이치처럼 인간의 삶이라는 굴레 속에 우리네 삶도 이어진 것임을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