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위대한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

묭롶 2012. 7. 11. 21:36

 

  고전은 시대와 민족, 국가를 초월한다.  그 원인을 고전이 갖는 원형성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원형은 보석과 같아서 반지나 목걸이, 구두나 머리빗 등 그 무엇의 일부분이 되느냐에 상관하지 않고 자신만이 가진 고유한 아우라를 내뿜는다.  마릴린 먼로가 국가와 민족을 떠나 섹시함의 상징으로 받아들여겨지는 것처럼 문학에서의 원형은 그 안에 많은 것을 함의함으로써 장르와 시대와 민족이라는 경계를 뛰어넘는다.

 

  예술장르는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시대를 그려낸다.  하지만 장르의 특성상 그 한계점을 드러내는데, 그중에서 문학은 타 장르와는 다르게 시대의 총체적 감수성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보편적인 문학작품들이 시대상을 그려내는 방식은 글의 서사구조에 있다.  글로 쓰여진 설명과 인물의 대사로 풀어내는 서사를 통해 작가는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이 책은 전혀 다른 방식을 택한다.  '개츠비'라는 인물이 곧 1920년대 미국을 상징하는 원형이 되는 방식이 그것인데,  개츠비는 작중에서 '아메리칸 드림'과 '이상적인 세계', '1920년대의 부조리한 미국'을 상징한다.

 

  「"데이지의 목소리에는 신중함이 없어요.  그 애의 목소리에는 뭔가 가득......"  내가 말했다. 

나는 머뭇거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어요."  갑자기 그가 말했다. 

~데이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안에서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끝없는 매력,

~하얀 궁전 속 저 높은 곳에 공주님이, 그 황금의 아가씨가......」p172

 

  1920년대의 미국은 달콤한 향을 내뿜고 끈끈한 과즙을 줄줄 흘리며 부패의 단계에 막 접어든 과일을 연상시킨다.  단 내를 맡고도 땅에 떨어지지 않은 과일에 다가가기 위해 벌레에게는 날아갈 수 있는 날개가 필요하다.  부패하기 시작한 과일의 단 맛에 취한 날벌레들은 앞 뒤 가리지 않고 과일의 즙 속으로 뛰어든다.  그 과즙에 다리가 젖고 날개를 적시고 결국 온 몸에 과즙을 뒤집어 쓴 채, 날벌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죽어간다. 

 

「데이지는 그가 난생처음으로 알게 된 '우아한' 여자였다.  그는 온갖 숨겨진 능력을 발휘해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만나긴했지만 그들과의 사이에는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가시철조망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는 그녀가 몹시도 탐났다.」p209

 

  개츠비는 금력이 내뿜는 아우라를 후광처럼 뿜어내는 계급에 다가가기 위해 제임스 게츠라는 이름 대신 '제이 개츠비'라는 날개를 달았다.   그 이름을 얻기 위해 그는 각종 불법과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지만 태양이 하늘의 정중앙에 있는 동안은 사물이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는 것처럼 금력이 내뿜는 후광 앞에 그의 어두운 그림자는 감춰진다.  그는 이제 꼬리를 잡으려고 맴을 도는 고양이처럼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과거를 되돌리려 한다.  그는 자신이 조금만 더 빨리 뛰면 조만간 미래에는 과거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의 꿈은 너무 가까이 있어 금방이라도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았을 것이다.  그 꿈이 이미

자신의 뒤쪽에, 공화국의 어두운 벌판이 밤 아래 두루마리처럼 펼쳐져 있는 도시 너머 광막하고

어두운 어떤 곳에 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 갔지만 별로 문제 될 것은 없다

- 내일 우리는 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좀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p253

 

  올해 12월 <위대한 개츠비>가 영화로 개봉된다는 기사를 읽었다.  소설이 출간된 이후 '개츠비'는 영화, 연극,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상표로 등록되는 등 다양한 장르에서 반복적으로 차용되고 변주되었다.

이는 '개츠비'라는 인물의 원형성이 보편적 인류의 본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톨스토이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나 도스토에프스키의 라스콜니코프,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 등 문학은 작중인물을 통해 인류의 본성을 드러내는 원형으로서의 문제적 인간들을 보여주는데, 개츠비의 저자 피츠제럴드는 현실이라는 진창에 발목까지 적시고서도 머리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낭만적 인물로서의 원형을 개츠비로 그려냄으로써 이전의 고전에 등장하는 인물 원형군에 개츠비를 올려놓는다.  원형으로서의 개츠비는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 나오는 빠홈과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욕망의 목표를 낭만적 이상(데이지)에 둠으로써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연민의 대상이자 모성을 자극하는 남성을 상징한다.  나쁜 남자이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요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와도 닮은 꼴이다.  갈수록 활자문학은 힘을 잃어가고 있다지만, 이 책을 읽으며 문학적 '원형'의 다양한 변주가 얼마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