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노동의 배신>

워킹푸어 체험기

묭롶 2012. 7. 2. 20:48

 

  내게는 4년제 국립 대학을 졸업한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다.  나름 광주와 전남에서는 알아주는 대학이지만 국문학과를 나온 남동생과 식품공학과를 졸업한 여동생 모두 수 년 동안 직장을 잡지 못했다.  여동생은 수 년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포기를 한 후 모대학 교수의 연구보조 및 개인 비서로 월 백여만원을 받고 있다.  어릴적부터 문학이 꿈이었던 남동생은 출판사 취업을 꿈꾸며 서울로 상경했지만 이 년이 넘도록 일용직을 전전하며 고시원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 사남매 중 정규직은 IMF가 오기 전 고등학교 삼학년도 마치지 못한 채 입사한 내가 유일하다.

 

  비단 이런 상황이 우리 집 만의 일일까?  얼마전 법인택시를 탔었다.  택시 기사님은 작은 소읍의 주민센터(옛날 동사무소)에서 공무원으로 퇴직 후 법인택시에 입사를 한 육십 넘은 남자분이셨다.  그분 말씀이 예전에는 먹고 살기는 힘들었어도 일자리는 있었다며,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자기 이름 석자만 적을 줄 알아도 공무원도 하고 경찰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일자리가 너무 없다는 얘기셨다. 

 

  남동생이 처음 서울로 상경을 결심했을 때 가족들은 설마 4년제 나온 놈이 어디 일자리가 없을까란 생각을 했었다.  이 년이 지난 지금은 가족 누구도 남동생이 정규직으로 입사할 수 있을거란 희망을 갖지 않는다.  서울은 일자리는 많지만 정규직이라는 개념의 일자리는 찾아보기 어렵고, 기간제나 계약직도 아닌 시급의 일자리만 있다.  그나마 시급 4,580원인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최저임금의 일자리도 꾸준히 구할 수가 없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남동생과 통화를 할 때마다 엄마가 매번 하시는 질문이 "어떻게 일은 다니냐.", "돈은 있냐", "밥은 먹고 다니냐" 일 정도로 남동생의 서울살이는 고단해보였다.

 

  실제로 남동생이 최저임금으로 8시간을 토요일도 쉬지 않고 일한다고 했을때, 총 수입이 1,040,000 이 된다.  이중 고시원 방값 50만원을 제하면(창문이 있고 환기가 가능한 고시원 가격) 54만원이 남는데, 이 돈은 한 달 식대와 교통비, 핸드폰 요금을 내기에도 빠듯하다. 

 

  『노동의 배신』은 미국에서 최저임금으로 실제 살아갈 수 있는지를 저자가 직접 체험하여 쓴 보고서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지금으로부터 십 년전인 미국에서도 최저임금으로 사람으로써 살아간다는 건 불가능했었다.  책이 쓰인 당시에도 푸드스템프가 없으면 밥을 굶어야만 하는 절대빈곤층이 전체 인구의 30%를 차지한 상황이었으니, 지금은 상황이 더 심각하면 심각했지(실제 2000년도는 미국이 모기지론과 주택 담보대출로 인한 금융위기가 오기 전이었다) 나아지진 않아 보인다. 실제 미국은 국가 부채 과다와 재정적자로 국가부도의 위기에 처해있다. 

 

  우리나라의 지금이 이 책이 쓰여진 당시의 미국과 상황이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다.  정부와 언론은 일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만 찾으려 하니까 직장을 못 구한다고 입을 모아 말하지만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내가 내일 당장 퇴직을 당한다고 가정을 했을 때 내가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최저임금의 시급제 아르바이트 뿐일 것이다(그나마도 동네 목욕위생사까지도 조선족들이 차지한 상황에서 날 써줄 곳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정말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어지기 때문에 다른 가족을 부양한다는 건 어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아파서도 안된다.  아파서 결근이라도 하게 되면 굶어야하는 상황이 될 것이고, 그나마 지금은 의료보험이라도 가입이 되어 있어 병원에서 약이라도 지어먹을 수 있다지만 그나마도 민영화가 된다면 그 이후는 상상하고 싶지가 않다. 

 

「마지는 관절염이 있어서 솔질을 하는 게 고문받는 것 같았고, 또 한 여성은 어깨 통증 때문에

물리 치료를 받아야 했다.  ~우리의 세계는 통증이 지배했다.  통증을 참는 방법으로는 엑세드린이나 애드빌 같은 진통제를 먹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혹은(주말에만 가능했지만) 한두 명은 술로

달랬다.」p127~128

 

  요즘 언론에서  세대별 '푸어'에 대한 연재기사를 자주 접하곤 한다.  '허니문 푸어', '베이비 푸어', '워킹 푸어' 등, 사람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강요받고 무언가를 추구하는 가운데 채워지지 않는 허기와 갈증을 느낀다.  취업이 된다고 해도 취업과 동시에 쌓여있는 학자금 대출의 빚더미에 허덕이는 워킹 푸어가 되고, 겨우 그 빚을 갚았다쳐도 결혼과 동시에 과도한 대출과 결혼 비용으로 인해 허니문 푸어가 되고 연후에 아이라도 낳게 되면 베이비 푸어가 되니 삶 자체가 쉬지 않고 공부하고 일하고 또 그 이상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푸어'의 도돌이표 반복이다.  이러한 상황은 얼마전  읽은 『피로사회』를 연상시킨다.  '푸어'의 삶(끊임없이 뭔가가 요구되고 강요되는)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는 피로를 느낀다.  자아라는 존재가 소진되고 고갈되는 느낌 속에서 인간은 우울과 고립을 경험하게 된다. 

 

「혹은 일반적으로 저임금 노동 자체가 노동자 스스로를 천민처럼 느끼게 만드는지도 몰랐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텔레비전을 보면 등장하는 사람들 거의 모두가 시간당 15달러 혹은 그 이상을 번다.  ~따라서 패스트푸드 가게 점원이나 간호사 보조는 자기가 비정상적인 존재라고,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유일한 혹은 거의 유일한 사람이라는 결론에 쉽게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 생각이 맞다.  가난한 사람들은 문화 전반에서 사라져 버렸다. 」p164

 

  이러한 피로상황의 지속이 전 사회적 현상('푸어')으로 확산되며 각종 사회적 병리현상을 낳고 있음에도 아직까지도 정부는 문제의 원인을 개인들의 탓으로 치부하고 있다.

현재의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의 부족이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가 없어 현재 임금으로 인간적 삶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시급으로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살게 되면 어떻게 내일을 꿈꾸고 내일을 대비할 수 있단 말인가.  직장이 있고 없고에서 IMF이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고, 이후 비정규직도 기간제와 파견직, 도급 등으로 세분화되고 이제 그나마도 시급제와 외국인 노동계층으로까지 확산되는 동안, 아직도 개인이 열심히만 노력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정부와 교육의 무지가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