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묭롶 2012. 1. 28. 12:38

 

 얼마전 직장후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오년여의 암투병기간동안 후배의 어머니는 수십차례의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고, 일년 전에는 암이 재발하여 수술을 받았음에도 돌아가시기 한달 전부터는 식사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나빠지셨다.  의료진이 더이상의 치료를 포기한 상황에서 진통제만으로 하루하루를 견디시던 후배의 어머니의 부음을 듣는 순간 어느정도 예상을 했던 부음임에도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암투병 기간동안 어머니의 몸상태에 비례하여 안색이 변해갔던 후배의 얼굴이 머릿 속에 떠올라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장례식장에서 본 후배는 그나마도 없던 살이 다 빠져서 곧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얼굴이 상해있었다.  뭐라고 위로를 해야했지만  손을 잡아주는 것 외에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마음 속으로 시간이 오래 그것도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내가 초등학교 오학년이 되던 해 아빠가 돌아가셨다.  일곱살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실때 죽음이 갑작스레 찾아오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두 번째 맞이한다고 해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익숙해지는 건 아니었다.  느닷없고 뭘 해야할지 알수 없는 공황상태가 내가 경험한 죽음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그날부터 삼년이 되는 날까지 해저물녘이면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아빠의 기척을 느끼곤 했다.

우리 사남매를 귀히 여기지도 예뻐하지도 않았던 아빠임에도 그 부재의 흔적이 삼년 넘게 느껴졌다.

 

「어느 날 오후 작은 침실의 소파에 앉아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내가 존재의 섬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내가 어떻게 여기에 왔을까," 

나는 무에 둘러 싸인 채 의아해했어,  "어떻게 돌아간다지?" 

네 어머니와 내가 함께 산 세월이 점점 길어질수록,

우리는 서로의 위장(僞裝)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어, 」p156

 

「~울고 싶었지만 울지는 않았어, 어쩌면 울었어야 할지도 몰라,

그 방에서 우리 둘 다를 눈물 속에 익사시켜서, 우리의 고통에 종지부를 찍었어야 했다.」p172

 

  죽음에 대한 경험은 인간이면 필수적으로 겪게 되는 과정이지만, 그 경험은 공통의 아픔이 아닌 온전히 혼자서 견뎌내야하는 개별성을 갖는다.  한 사람이 죽게되면, 그 사람의 아내, 그 사람의 부모, 그 사람의 자식, 그 사람의 친구 등 그 각각이 겪어내야하는 죽음의 과정은 모두 제각각이다.  이러한 이유로 누군가를 죽음으로 잃는 상실감은 경험에 따른 이해나 누적된 체험에 의해 극복이 되지 않는다.  파도에 억겁의 세월동안 쓸려 바위가 모래로 변하는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가슴 속 상흔이 모래가 될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이 책은 9.11 테러로 한순간 아빠를 잃은 열살 소년의 이야기이자, 이차세계대전으로 여자친구와 태어날 아이, 부모를 한 순간에 잃은 오스카의 할아버지 토마스의 이야기인 동시에 그 죽음을 감당해야하면서도, 상실감에 일상을 잃어버린 가족을 지켜봐야하는 할머니와 엄마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나의 죽음을 놓고(9.11테러로 인한 토마스의 죽음) 부모, 아내, 자식이 느끼는 각각의 상실감과 고통을 할아버지 토마스가 겪은 죽음과 연결지어 대비하며 고통을 직시하고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노력의 과정을 오스카의 '블랙씨 찾기'와 여러가지 시각적인 장치로 풀어낸 작가의 의도는 보통의 독서과정의 길찾기 방식이 아닌 낯설은 미로를 헤매다 발견한 출구의 기쁨을 선사한다. 

특히 사람이 누군가를 위로해줄 수는 없지만, 그 존재만으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건물을 들이박는 비행기들.

건물을 들이박는 비행기들.

다른 기분이 들 줄 알았어.  하지만 그때조차도 나는 나였단다. 

~너를 보고 있노라면, 자랑스럽고도 슬펐지. 

~너를 볼 때면, 내 삶이 이해가 되었어.  나쁜 일조차도 다 이해할 수 있었어. 

너란 존재를 이 세상에 있게 하기 위해 그 모든 것이 다 필요했던 거야. 

세상에.  네 노래들. 

내 부모님의 삶도 이해가 되었어.

조부모님의 삶도.

언니의 삶까지도.

하지만 난 진실을 알고 있었지.  그래서 이토록 슬픈 거야.

지금 이 순간 이전의 모든 순간이 바로 이 순간에 달려 있어.」p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