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프랑스와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묭롶 2012. 1. 8. 17:00

 

  스물 네살에 이 책을 썼다는 '사강', 부유한 집 안에서 태어난 그녀의 어디에 이만큼의 우울이 있었던 것인지가 의문이다.  나이 마흔이 가까워서야 젊은 날의 내 방황이 결국은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숙명적으로 지워진 고독에서 기인했음을 이제야 짐작하는데, 그녀는 스물 네살에 이미 인간의 본원적인 고독에 대한 성찰을 했단 말인가!   책 제목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가 아니라 마침표 세개를 찍어줄것을 요구했다는 그녀......   그녀는 스물네살에 인생에는 장담할만한 일도 완벽한 정답도 자신할만한 일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어쩌면 그녀는 로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뿐인지도 몰랐다. 」p57

 

「~촉망받는 젊은 변호사이자 사랑에 빠진 연인이자 버릇 나쁜 아이 역할을

연기했지요.  하지만 당신을 안 이후 제가 연기한 그 모든 역할은 당신을

위해서였어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p64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정말 '사랑'인지, 그것이 '사랑'이 맞다면 어떠해야 하는지, '사랑'이라고 느끼는 건 아닌지 자신에게 하는 반문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담겨있다.  표지에 실린 그녀의 사진 속에서 작중 인물 '폴'이 연상된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시몽'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한다고 느끼는 남자 로제를 선택하는 여자, 작중인물 폴은 미래보다는 현재를 중시하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시몽'과의 미래를 꿈꾸기보다는 현재의 자신을(자신과 동일한 '우리'라고 지칭할만한 인물) 채워줄 로제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열여섯에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생미셸대로의 카페와 클럽을 드나들고 이후에도 평생동안 도박, 마약, 과속으로 점철된 그녀의 삶을 보며, 작가 李箱을 떠올리게 된다.  열아홉에 첫소설 『슬픔이여, 안녕』을 쓴 사강과 스물일곱에 자신의 역작 『날개』를 내놓은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작가 李箱은  세상이 부여하는 역할(포즈)을 거부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회화(타인의 삶을 모방)의 과정을 거쳐 소시민이 되는 것(포즈)을 거부했다.  그결과 李箱은 '생활'이 되지 않았고 끊임없이 작품속에서 '여자(『날개』의 안해, 금홍, 연이 등ㅡ생활을 꾸려나가는 인물)의 대별점에 자신을 놓고 게임을 했고, 사강은 자신에게 집중한 나머지 도박과 마약, 음주를 끊지 못했다.  이상과 사강에게 문학은 생활이 되지 않는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묻고 실험하고 검증하는 방법론적 장치이다.  그들에게 현실은 자신이 실제하는 현재가 아니라 자신의 작품속에 존재했으며, 실제하는 자신은 현실에서 발디딜 곳을 찾아 방황하게 된다.  마리화나를 소지한 혐의로 공항에서 구속됐들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를 가진다"고 한 사강의 말은 제도권의 규제를 거부하며 미래보다는 현재에 집중한 그녀의 삶 전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미래가 아닌 현재를 선택한 李箱과 사강, 그들에게 문학은 확실한 좌표점없이 표류해야하는 자신들의 삶에 띄우는 하나의 부표였다.  그들은 타인들이 걸어가는 뚫려있는 큰 대로가 아닌 자신들이 띄워놓은 부표를 방향삼아 나아가려했다. 

 

「"난 그래, 게다가 이제 뭘 해야 할지 알겠어.  산책을 하면서 당신을 생각하고,

당신을 생각하면서 혼자 점심을 먹고, 그런 다음 6시가 되기를 기다릴 거야. 

~"모르지, 어째서 당신은 내가 미래를 준비하느라 현재를 망치기를 바라는 거지? 

내가 관심 있는 건 오직 내 현재뿐인데 말이야.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해."」p106

 

 그녀는 자신의 감정이 누군가가 부여한 것이 아닌 자신이 느끼는 실제이기를 바랬고, 주어진 역할을 연기하는 것을 거부했으며 평범함을 연기해야하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 의미에서 사강의 작품 중 희곡이 많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세 인물의 특징적인 성격은 작가인 사강의 성격의 각각 일면씩을 대변하고 있다.  그 세 인물들이 각각 자신의 성향으로 인해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고 그 인물들 간의 갈등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결말을 보며 작가는 자신의 미래를 어느 정도는 가늠해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