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전방위적 지식경영인 정약용의 치학전략

묭롶 2011. 9. 27. 23:00

 

  나는 소설만 주로 읽는 독서편식가다.  

중학교 1학년 봄, 한권씩 의무적으로 제출(난 집에 책이 없어서 엄마가 헌책방에서 한권을 구해줘서 제출했다)해서 만든 학급문고에 꽂혀있던 이상의 『날개』를 만난 그날 이후 소설은 장소와시간을 가리지 않고 나를 상상의 나라로 데려가 주는 친구이자 해방구였다.  

 

  책을 읽는 동안 난 복잡한 현실을 잊을 수 있었고 책이 주는 몰입의 세계는 힘들었던 내 성장기의 유일한 기쁨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고 삼십대를 넘기고도 난 소설책이 선사하는 상상력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나에게  인문학 서적이 거친 호밀빵이라면 소설은 달콤한 케익이었다.  이 책은 입에 거친 호밀빵이지만, 오래 씹을수록 구수하고 감칠맛이 우러나왔다.   그 여운을 음미하노라니 소설만 읽으며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내 나름의 자기 합리화를 다산선생이 꾸짖는 것만 같았다.  남들보다는 책을 많이 읽는다는 은근한 자부심도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앞뒤도 맞지 않는 내용으로 무조건 열심히 읽기만 하면 문리가 터진다는 

무책임한 말에 대해 다산은 분개했다.  ~다산은 맹목적이고 무모한 독서를 배격하고, 끊임없이 중요한 부분을 배껴쓰고, 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메모하는

 방식의 독서를 되풀이해 강조했다.  p153」

 

「~모르던 것을 하나씩 깨쳐아가는 동안 앎(知)이 내 안에 축적되고, 

그 앎은 단순한 지식(知)를 넘어 지혜(智)이 된다.  ~격물치지와 궁리진성, 

이 두가지는 서로 다른 방향을 지향하면서 동시에 하나의 완성된 인격을 

추구한다.  모르는 것을 ,하나씩 알아나가고 그 속에 깃든 이치를 따져 

내 삶을 향상시켜다가는 것, 이것이  바로 공부하는 보람이요 기쁨인 것이다.  p78」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은 독서 편식이 심한 나에게 막둥이가 몇년전 추천한 책이다.  사놓고 이년간은 책장에 꽂아뒀는데(가뜩이나 인문학서적은 안땡기는데 이 책은 부피도 상당하다)9월초에 다시 독서를 시작하면서 이 책이 읽어보고 싶어졌다.  출산후 최근까지도 숨돌릴 여유가 없었던 탓에 미리 주문해놓은 책(항상 읽을 책을 세권 정도는 미리 사놓는다)이 없다는 이유말고도 내 책장에 꽂힌 책은 최소 한번이상 읽은 책이어야한다는 결심 때문에 읽어야지하며 미뤄뒀던 부담감도 이 책을 읽는데 한몫했다.   새벽에 두번 유축을 하는 동안 짬짬이(어떤 날은 졸면서 책에 머리를 박아가며) 이십여일에 걸쳐 읽었다.

 

   18년의 귀양살이 동안 저술된 500여권의 결과물을  저술물의 편찬과정과 정보수집과정을 다산식 선정문목법과 종핵파즐의 방식으로 10강 50목 200결로 정리해 놓은 이 책은 다산식  공부법과 정보취득법,  지식 경영법을 일화와 더불어 소개한다.  

 

「다산은 말한다.  상식과 타성을 걷어내라.  나만의 눈으로 보아라.  

하던 대로 하지 말고 새롭게 해라.  관습에 전 타성으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  생각의 각질을 걷어내고 나만의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  인순고식을 

버려라.  듣고 나면 당연한데 듣기 전에는 미처 그런 줄 몰랐던 것이 창의적인 

것이다.  들을 때는 그럴듯한데 듣고 나면 더 혼란스러운 것은 괴상한 것이다.  

이 둘을 혼동하면 안된다.  깨달음은 평범한 것 속에 숨어 있다.  

그것을 읽어내는 안목을 길러라.  p372-373 」

 

  책장을 넘길수록 19세기를 살았던 선구적 지식인으로서의 다산이 아닌  천연두로 자식을 잃고 애통해하는 아버지, 중인출신 제자 황상을 아꼈던 스승, 정조에게 믿음직한 신하, 옳다고 믿으면 굽히지 않고 논쟁도 기꺼워했던 선비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전에 단순히 목민심서, 흠흠신서의 저자요 실학자 정도로만 알고 있던 내 앞에 인간 정약용이 무지개처럼 펼쳐졌다.  또한 수록된 일화를 통해 정조 이산의 다른 면모도 알게 되었다.  영화, 드라마를 통해 보아왔던 정조 이산의 모습이 평면적인 것이었다면, 이 책이 펼쳐놓은 글의 세계속에서  정조는 훨씬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지금 성리학을 하늩 자들은 스스로 은사(隱士)라고 부른다.  

~그들이 벼슬하는 것은 오로지 경연(經筵)에서 강설하거나 동궁울 가르치는 직책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이다.  만약 그들에게 전곡(錢穀)이나 갑병(甲兵), 송옥(訟獄)과 빈상(擯相))등의 일을 맡기면, 무리지어 일어나 잘못이라 하면서 유현(儒賢)을 이렇게 대우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 뜻으로 미루어볼진대 장차 주공(周公)은 

태재(太宰)가 될 수 없고, 공자는 사구(司寇)를 맡을 수 없으며, 자로(子路)는 옥사를 

판결할 수 없고, 공서화(公西華)는 빈객과 더불어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성인이 

이런 사람을 가르친다 한들 장차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겠는가?  임금이 이런 사람을 

불러온들 장차 어디다 쓰겠는가?  그런데도 스스로 기대어 글을 지어 말하기를 "나는

 주자를 존중하여 높인다"고 한다.  아아! 주자가 어찌 일찍이 그러했더란 말인가? 

 오학론 1' 5-117. p309~310 」

 

  그의 고뇌와 그가 꿈꿨던 세상이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황희와 율곡 이이의 이 와 기 의 발원에 대한 의견을 놓고 벌어진 첨예한 당쟁과 인순고식하며 활자로서의 지식만을 붙들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며, 세금 탈루를 위한 각종 병폐와 부조리가 판치고 도량형이 통일되지 않아 물류가 정확하지 않은 당시의 조선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끝까지 포기히지 않고 실천해나간 정약용의 고투가 이 책에 담겨있다.  

 

「태사공이 말했다.  "늘 가난하고 천하면서 인의를 말하기 좋아하는 것은 또한 

부끄러워하기에 족하다." 성인의 문하에서는 재물의 이익에 대해 말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오늘날 선비들은 소부(巢父)나 허유(許由)의 절개는 없으면서 누추한 집에 몸을 숨기고 명아주나 비름 따위로 배를 채우며, 부모와 처자를

 얼고 주리게 하고, 벗이 와도 능히 술 한 잔을 권하지 못한다.  ~이것은 천하에

 지극히 졸렬한 것이니, 지혜로운 선비는 피해야 한다.

  윤윤경을 위해 준 말8-3. p533」

   다신의 저작물이 학문뿐만 아니라 전방위(의학, 과학, 법학,지리, 음악,공학 등)에 걸쳐 이뤄졌던 이유는 그가 실사구시 이용후생을 저술의 큰틀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식이 생계를 위해 양계를 해보겠다며 의견을 물었을때 기왕 양계를 할거면 그분야에 전문적으로 매진하여 계경을 저술할 것을 권했는지도 모른다.  (난 이 부분에서 놀랐다.  조선시대 양반가의 자제가 닭을 치겠다는데 아버지가 말리지는 않고 오히려 양계에관련한 책을 쓰라고 권하다니, 지금 시대에도 이런 경우는 찾기 힘들지 싶다) 

 

  다산은 낡은 지식을 붙들어싸앉고 양반입네하는 사람들을 답답해하며 양잠을 하고 과실수를 심어 가계를 탄탄히 하고,  불공평하고 부조리가 많은 세금제도의 개혁을 통해 국가경제를 재건하며 필요에 따라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부국강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년의 귀양살이 동안 저술한 500여권의 저술은 이를 위한 실천방법이다.   하지만 당시 그의 방대한 저술은 주변인을 놀라게했으나 당시의 병폐와 부조리를 바로 잡는데 사용되지 못하고 읽을거리와 논쟁의 대상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  다산은 일본의 앞선 조선기술과 실용적인 주거형태, 그리고 각종 화약(총 등)무기의 장점을 배워와서 조선의 실정에 맞게 도입해야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춘추전국시대 어느나라에서도 등용되지 못했던 공자처럼 정약용은 정조 승하 이후 등용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만약 정조가 일찍 승하하지 않았거나 정약용이 뜻을 펼칠 수 있었다면 우리가 일제에 침략 당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물론 비약이지만)생각되지만 한편으론 등용이 됐더라도 당시의 조직(정치, 이권관련)사회가 그를 매장시켰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모난돌이 정 맞는다며 누구나 중간만 갈 것을 암묵적으로 요구받는다.  자정기능을 잃은 하천에 일급수를 유입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말인가.  다산도 이와 같은 생각에 귀양살이동안 울분이 치밀었지만 그는 복숭아 뼈에 세번이나 구멍이 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뤄냈다. 

 그를 통해 대안없는 분노보다는 현재에 내가 무얼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