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2011 이상문학상>

공지영 문학의 새로운 시작을 보여준 <맨발로 글목을 돌다>

묭롶 2011. 3. 1. 23:21

 

  매년 이상문학상을 읽어왔지만, 올해 공지영의 수상소식은 솔직히 의외였다.  그동안  수상작들이 한 해동안 발표됐던 단편소설 중, 문학적 성과가 두드러진 작품을 선정의 기준으로 삼아왔던 예년과 다르게 그간대중적 이미지(대중소설, 상업소설)가 강한 것으로 평가받아온 공지영의 수상소식은 뜻밖으로 받아들여졌다.  

 

  개인적으로 난 공지영의 소설들을 좋아한다.  그녀의 글은 일단 잘 읽히고 재미있다.그간 출간된 그녀의 작품들을 읽으며 느낀 점은 그녀가 이야기를 잘 엮는 작가라는 점이다.  공지영작품의 특징을 꼽자면 자신의 삶을 씨줄 삼아 거기에 날줄로 이야기를 엮는 그녀의 직조능력(글짓기)이 첫번째로 꼽힐 것이다.  하지만 90년대 초반 그칠줄 모르고 뿜어져나오던 그녀의 작품활동은 2000년대에 들어 출간이 뜸해지고 『수도원 기행』,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네』,『즐거운 나의 집』이 나올때쯤 나는 공지영의 글쓰기가 미의 여신에게 저주를 받아 끊임없이 자신의 몸에서 실을 뽑아내다 종내는 몸이 비고 껍질만 남은 아라고네를 보는 듯 그녀 특유의 글쓰기의 한계에 다다른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인터넷 연재소설 『도가니』를 읽으며, 그녀가 이제 자신의 이야기(고통)에서 벗어나 동일체험을 한 이들만의 예민한 감수성으로 타자의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육화)로 표현해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번 「맨발로 글목을 돌다」는 그렇게 다시 찾은 자신감의 기반 위에서 쓰여진 작품으로 보여진다.  그렇기에 더 이상 글 속에 드러나는 자신(손톱으로 얼굴이 북북 그어진 채, 친구 남편 앞에 앉은)을 숨기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자신를 끈덕지게 따라다니는 편견과 오해들로부터도 자유로워졌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러한 자유로움이 기본적으로 허구를 바탕으로 하는 소설문학의 일반적 틀을 벗어나, 글목이라는 모퉁이를 돌며 만나게 되는 사실과 허구, 작가인 나와 H, 프레모 레비, 위안부 할머니, 조카를 통해 완성되는 인류 공통으로 직면하게 되는 고통이라는 종착점에 우리를 이르게 하는 힘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거나 지켜볼 때, 이를 운명이라고 말한다.   다소 산만해보이는 여러개의 서사(자신의 이야기, 강제납북된 H, 나치수용소에 수갑됐던 프레모 레비,위안부 순이, 탈레반에게 친구를 잃은 조카)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의적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운명적 고통(타인에 의한 폭력)의 희생자들이다.  그녀는 고통이라는 글목으로 엮인 조각들을 직조(과거의 그녀작품)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를 고통에 대한 인간의 본원적인 물음의 차원으로 나아간다.  토마스 만의 작품『토니오 크뢰거』의 인용은  글목을 돌던 개별적인 고통(나와 타자, 그리고 우리모두)들을 하나의 귀결로 이끄는 장치로 사용된다.  문학에서 고전은 시대와 인종을 초월하는 힘과 영향력을 갖는다.  이는 고전이 인류사와 합께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인류의 본원적인 물음에 대한 답(인물 형상화를 통한 고전의 '아우라')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에서 인용된 『토니오 크뢰거』는 끊임없이 타인을 의식하고, 그러한 자신에게 모멸감과 경멸을 느끼면서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이다.

 

 

「금발의 잉에는, 그가 그녀 옆에 앉아 있을 때에도, 그에게는 멀고 낯설게 

느껴졌고 전혀 딴 사람같이 생각될 따름이었는데, 그것은 그의 언어는 그녀의 

언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행복했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고 그는 자신에게 다짐했기 때문이었다.p33

 

~그러나 토니오 크뢰거는, 변치 않는 마음이란 이 지상에서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과 환멸감에 가득 찬 채, ~이윽고 그는 양어깨를 한번 으쓱 하고는 자기 갈 길을 갔다. ~아니 희망을 버린 것이 아니라 운명이 내 맘대로 내가 원래 

계획했던 대로 돼야 한다는 집착을 버린 거죠......그래서 살 수 있었어요.」p34~35. 

 

  글의 말미에 인용된 토니오 크뢰거가 리자베타에게 보내는 편지글은 작가 공지영이 바로 자신에게 하는 말이자, 운명이 주는 고통 속에서 자신에 대한 환별마저도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글이다.  그 결과 그녀의 이번 작품은 그녀가 단순히 대중상업소설뿐만 아니라 이제 다른 분야(과학, 의학, 철학 등)에서 답을 얻을 수 없는 인류가 본원적으로 갖게 되는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문학적 힘을 증거한다.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이 보여준 그러한 성과가 금번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도정일 교수님의 공저 『대담의 글중 한 귀절이 나의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는 듯 하다.

 

「~나는 예술이 수행하는 가장 위대한 인문학적 경험은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자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p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