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은희경

<소년을 위로해줘>

묭롶 2010. 12. 23. 11:42

 

  어른이 된다는건 어쩌면 고독이라는 괴물과 맞닥뜨린 인간이 자신안의 괴물을 이해받고 싶어졌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어린시절에는 누군가에게 나를 납득시킨다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지만 자신이라는 정체성을 타인에게 이해시킬 필요성을 느끼게 되거나 또 나를 설명하려다 실패하는 순간에 인간은 자신안에 남과 다른 괴물이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 깨달음 이후 사람들은 어른이 되기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주변의 인물을 이상향으로 삼아 그 사람을 흉내내기 시작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어떻게 하는게 옳은 건지를 판단할 수 없어서 주변의 눈치를 보기도 한다.  개개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공통점이라면 어느 누구도 자신의 완전성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물론 통념상 어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조차도 자신의  정체성이 완전함을 자신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에게는 불완전함에서 오는 불안감을 다소간 해소시키는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사회생활을 위한 포즈(『소년을 위로해줘』 작중에서 연우엄마 신민아가 말하는 채영아빠의 빌려입은 옷)가 존재한다.

습관적으로 형성된 포즈로 통용되는 세상을 사는 일명 어른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청소년들에게 그 포즈가 어른들의 사회에 편입하는 진리인 양, 권유 내지는 강요를 하기도 한다. 

  

  내가 남하고 다르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  그거 몹시 힘든 일이야.  

모든게 다 자기 책임이 되거든.  ~정해진 가치에 따르지 않으려면 하나하나 자기가 만들어가야 해.  또 무리에서 떨어져나가면 끊임없이 자기에 대해 설명해야 해.p171

 

  은희경의 『소년을 위로해줘』는 반항과 혁명으로 상징되는 힙합을 소설 문장 아래 베이스로 깔고 그 위에서 이야기가 변주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보호색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삶을 살던 연우가 전학갈 학교를 배정받는 과정에서 독고태수라는 친구를 만나 그 친구를 통해 힙합을 접하게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게 되고 또 힙합이라는 음악을 통해 세상과의 접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주 내용으로 한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남의 옷을 빌려입은 것 같은 포즈로 가득찬 어른들(채영의 부모나 독고태수의 부모, 선생 등)의 세계와 병치되는  아이들의 세계 간의 대비가 힙합배틀을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아마 은희경작가는 이런 효과를 위해 본인의 문체적 특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책은 은희경 작가의 초기작 (새의 선물)의 화자인 열두살의 여자아이가 열일곱살이 됐을 때 겪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의 다른 유형으로도 보여진다.

 

 

Ps: 되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남에게 내가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비우는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마다 '이번에는 이해받을 수 있을까'라는 기대감이 들기도 했지만 반복된 실망을 통해서 어쩌면 상대방도 나와 같은 실망감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그런 공통의 실망감을 이해한다는 건 어쩌면 상대방에게 다가가는 하나의 다른 방편일지도 모른다.

 

  결국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상대방의 차이에 대한 배려와 인정에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차원에서 보면 우리 주변에는 어른인양 하지만 어른이 아닌 사람이 너무 많다.  나역시 연우와 독고태수처럼 어른들의 가식을 조롱하며 반감을 품은 경험이 있었고, 지금도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걸 보면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나 보다.  (아~ 그럼 난 언제 어른되지?  어렸을때는 서른살만 넘으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는데, 이젠 삼십도 중반이 넘어는데 아직도 난 미완성???, 우리 아가가 나한테 "엄마, 몇살되면 어른이돼 "라고 묻는다면... 난 OTL)

  하지만 '소년을 위로해줘'라는 힙합의 가사처럼 다른 누군가에게 '누구처럼'이라는 말이 아닌 '나도 아직 어른은 아니라는'고백은 해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