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2010년 여름 지리산가족여행>

지리산 노고단과 심원마을에 다녀왔어요^^

묭롶 2010. 8. 8. 10:30

   작년에 화순 안양산 휴양림을 시작으로 친정 가족모임에서 여행을 가기 시작했다.  첫 가족모임을 너무 재밌게 보낸 우리는 곧바로  여름휴가를 계획하게 되었다.  그래서 작년 여름 보성 다비치 콘도에서 해수사우나에 온통 뻘밭인 보성 앞바다에서 해수욕을 한 후, (보성 앞바다는 온통 물이 진흙탕이어서 해수욕은 힘들었다) 완도 명사십리로 넘어가서 신나는 해수욕을 했다.

  처음에 가족들의 여행을 계획하면서 맘에 걸렸던 건 엄마였다.  젊은 우리와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엄마 혼자 너무 심심하거나 여행에 불편을 느끼시진 않을까 내심 우려가 되었고, 엄마도 너희들끼리 다녀오라고 하셨었다.  하지만 완도 명사십리 그 세찬 파도에 휘말려 뒤집어진 튜브를 찾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또 다시 신이 나서 바다를 향해 돌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진작 모시고 여행을 다니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엄마는 여행을 다녀오신 후에도 여러번 "완도 명사십리가 최고로 재밌드라.  막..파도가 쳐불고, 쮸브가 막 엎퍼져불고, 아조 파도속에서 맻바꾸를 굴렀는가 몰라야"라며 거의 무용담 수준으로 얘길하셨다. 

  작년 여름가족모임 이후 우린 좀더 체계적으로 계획을 짜서 올해의 여름휴가를 보내자며 가족당 5만원씩 일년짜리 적금을 넣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바다를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다시 명사십리를 가기로 계획했는데, 7월에 회사모임에서 간 명사십리가 모기가 너무 많아서 밤에 숙박을 하는게 고민이 되었다.  또 동생들 휴가가 다들 제각각이어서 일정을 맞추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렇게 저렇게 시간만 몽땅 흘러가고 막상 휴가즈음해서 우리신랑이 내놓은 의견이 지리산 심원마을이었다.  엄마는 계곡에서 일박은 경험이 없다고 하셨지만, 내심 바다를 가고 싶어하는 눈치셨고 동생들의 반응도 뜨뜻미지근했다.  계곡물 입수가 힘들다는 내 말에 둘째 여동생은 그럼 애들은 뭐하고 노냐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 식구 9명은 12인승 스타렉스에 주류일체를 완비한 아이스박스 두통과 각종 안주류를 싣고 지리산을 향해 오전 11시에 광주친정집에서 출발했다.  스타렉스에 몸을 실은 우리는 중간에 양동시장에 들려 통닭을 두 마리 찾았고, 그 통닭을 안주삼아 아이스박스 안에 담긴 캔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차안에서 계속 뭔가를 먹으면서도 동생들은 점심을 무얼 먹으면 좋겠냐고 물어왔다.  마침 가는 길 경로에 있는 남원 추어탕이나 순창 메기탕을 먹자고 했는데 다들 메기탕을 먹겠다고 해서 순창군청에서 추천해준 xx 식당으로 네비를 찍었다.  xx식당의 초입은 군사목적인지 무슨 목적인지 알 수 없는 일차선 터널이 있었는데, 이 차선 터널과는 달리 너무 좁은 터널입구와 어둑신한 터널 내부에 이 터널의 끝에 식당이 있긴 한 건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걱정과는 달리 터널의 끝은 메기탕집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우리 아홉식구는 메기탕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숲에 나무를 비어내고 그곳에 올린 가건물에 앉아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비는 계속 오락가락 굵은 빗줄기를 뿌려댔다.  기존에도 순창 다리 밑에서 메기탕을 종종 먹기는 했었지만, 질긴 시래기와 민물고기 특유의 과도한 기름기로 인해 이집 메기탕에도 별 기대감은 없었다.

 

헐!!! 그런데 이게 왠일!!!! 한 수저를 뜨는 순간 그 매콤하고 개운한 국물의 맛과 입 안에서 확 풀리는 시래기의 구수함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아마도 일반 고춧가루와 청양 고춧가루를 섞어서 양념한 듯한 매콤함이었다.)  메기살에 시래기를 싸서 밥에 놓고 먹는 맛은 정말 예술이었다.  우리 식구들은 다들 연신 감탄해마지 않으며 땀을 뻘뻘 흘려가며 메기탕을 맛있게 먹었다.  조카 두명도 맵다는 투정도 하지 않고 메기살에 밥 한공기씩을 뚝딱해치웠으니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은 우리는 다시 지리산 심원마을로 향했다. 

숙소인 xx흙방을 예약하기전 주인아주머니는 개인취사가 안된다고 당부를 했었는데, 숙소에 도착해서

열쇠를 받고 스타렉스에서 엄청 큰 아이스박스를 두개나 꺼내자 취사가 안된다고 했는데 이러시면 어떡하냐고 야단이셨다.  하지만 그 두 박스가 술이란걸 아신 아주머니는 이후 별 말씀이 없으셨다.

   휴가장소를 급하게 지리산으로 잡았던 탓에 원래 계획했던 노고단 등반을 여동생들은 모르고 있었다.  마침 오락가락하던 빗줄기가 좀 수그러진 듯 싶어서 동생들을 독려해서 조카들과 함께 심원마을에서 차로 15분여 거리에 있는 성삼재휴게소로 향했다. 

  헉!!! 그런데, 성삼재 휴게소에 도착해서 주차를 하자마자 다시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여동생 한 명은 조리를 신고 있었고 초등학교 2학년, 6살인 조카 둘은 슬리퍼 차림이었다.  그래도 우린 노고단을 향해 비를 맞으며 걷기 시작했다.  한 15분여를 걸었을까, 굵은 빗줄기에 첫째여동생은 안경에 김이 서려서 앞이 보이질 않는다고 하고, 조리를 신은 둘째여동생은 발이 아프다고 했으며, 조카둘은 그야말로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쫄딱 젖어서 머리카락 끝에서 빗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건 뭐 완전히 우산도 없이 비맞은 동냥객의 처량함이 우리 일행으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별 수 없이, 노고단은 나, 우리신랑, 남동생(막둥이) 이렇게 셋이서 가기로 하고 가져온 캔맥주가방을 들고 나머지는 숙소로 돌아가고 우린 비를 맞으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성삼재휴게소에서 노고단까지 등반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지만, 비를 맞은데다가 높은 습도로 인해 시야는 온통 뿌옇기만 했다.  출발해서 약 한시간여를 걸어서 노고단에 도착했는데, 역시 안개에 가려 주변정관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비맞은 생쥐꼴로 돌탑에서 사진도 찍고, 노고단비상대기소 옆에서 캔맥주와 통닭을 먹는데 비 맞은 후에 마시는 캔맥주는 정말 시원했다.  (살짝 추울 정도로)  맥주를 마시고 화장실이 급하다는 남동생 덕에 우린 빠른 걸음으로 하산을 해야했다.    

 

  숙소에 돌아와서 비에 젖은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난 후, 우린 저녁을 지리산흑돼지 구이와 송어회로 주문했다.  (옷과 신발이 잔뜩 젖어서 빨랫줄에 널어뒀는데, 별도로 헹구지 않았음에도 그 다음날 옷에서 비냄새가 나질 않았다.  역시 청정자연이라 빗물도 깨끗해서 냄새가 안나는 듯 싶었다, 생수가 떨어져서 물을 사려고 주인아주머니께 갔더니 아주머니 曰: 왜, 일급수를 놔두고 물을 사먹냐고, 가져온 물도 버리고 다들 계곡물 떠서 먹는다고 핀잔을 주셨다.  ㅎㅎㅎㅎ 계곡물을 떠 먹었는데, 차갑고 달고 시원했다.) 

  숙소는 1층에 식당, 2층에 숙소로 나뉘어 있었고 식당의 전면부에는 대형수조가 비치되어 있어서 그 안에 일급수에서만 산다는 산천어와 은어, 송어가 헤엄치고 있었다.  여름이 제철인 송어는 칼질을 굵게 해서 씹는 맛(붉은 살과 맛이 연어와 비슷했다)이 좋았다.  흑돼지구이는 주인아저씨가 너무 신경을 쓰신 탓에 바짝 구워져서 육즙이 거의 남아있질 않아 딱딱했지만 그래도 먹을만했다.  반찬으로는 지리산에서 아주머니가 직접 캔 각종 산나물들이 나왔는데, 산나물의 향이 그대로 살아있어서 나물을 좋아하는 우리신랑이 그자리에서 몇 접시를 비워냈다.  음식 가격도 성수기 휴양지치고는 저렴한 숙소비용(방 하나당 6만원)과 마찬가지로 보통 식당들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흑돼지구이 일인분 일만원, 산채비빔밥 6,000, 도토리묵 8,000, 송어회 25,000 등) 주류도 우리가 가져간 걸 그대로 마실 수 있게 해주셔서 음식값만 내면 되었다.  저녁을 먹으며 시작한 술자리는 방에 들어와서도 계속되어서(엄마는 일찍 주무시고), 가져간 술이 다 떨어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징한 우리 식구들) 

   비에 젖고 술에 젖었던 휴가 첫날이 끝나고 둘째날이 밝았다.  (여섯살인 둘째조카는 전날밤 술에 취해 코를 심하게 골고 잔 우리 신랑이 일어나자마자 : "큰이모부! 어젯밤에 왜 코로 막 시끄럽게 했어" 라고

물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크게 코를 고는 사람을 처음본 둘째 조카 덕에 우린 아침부터 배꼽을 잡고 웃었다)   10시경 우린 숙소아래에 있는 계곡으로 내려갔다.  계곡물은 발을 담그고도 5분을 있기 힘들 정도로 차가웠다.  수온이 낮은 탓인지 바위들도 차갑고 세찬 물줄기에 이끼도 끼어 있지 않았고, 세찬 물살 탓인지 헤엄치는 물고기도 보이질 않았다.

  계곡물에 입수한 조카들은 금방 입술이 파래졌고, 우리신랑의 손에 의해 차례차례 계곡물에 입수한 내 동생들도 물에 젖는 순간 너무 차가운 물에 비명을 질러댔다.  나도 갈아입을 옷이 없다며 극렬 저항해봤지만, 끝내 계곡물에 풍덩이었다. 

   유일하게 계곡물 입수에서 열외되신 울 엄마는 쪄오신 옥수수(출발할때부터 도착할때까지 저 한통을 다 먹었더랬다)를 드시며 햇살이 비치는 따뜻한 바위 위에서 우리의 입수장면을 관람하셨다. 

 

 

신나는 물놀이를 구경하신 탓인지, 바닷가도 좋지만 모래가 없고 시원한 계곡도 참 좋다고 하셨다.  ㅎㅎㅎ.튜브타고 바다에 못가셔서 서운해서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이었다.   

   엄마만이 유일하게 젖지 않은 우리 가족의 사진(조카들은 추워서 몸을 달달 떨고 있었다).  옆에서 계곡에 빠져 비명을 질러대던 다른 가족이 사진을 찍어주셨다.  다들 차가운 물에 정신을 못 차리며 햇빛이 드는 바위를 찾아 걸음을 옮기기에 바빴다. 

   휴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리산을 배경삼아 단체사진을 찍었다.  우리 식구들 비 맞고, 술마시고

계곡물에 빠져서 완전 초췌하구나.  내년엔 다시 적금을 넣어서 울 엄마 제주도 바닷가에서 해수욕을 시켜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