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모파상>

<벨아미>속에서 소설장르의 미학을 발견하다.

묭롶 2010. 7. 19. 11:28

 

                                                                               <모파상>

 

  다큐멘타리나 역사, 사진, 기사들은 단편적인 하나의 사건을 구체적으로 진술하는 기능을 한다.  소설은 이와는 다르게 작품 속에서 한 시대상의 축약된 모습을 표현해낸다.  소설이라는 프리즘에 비친 한 시대는 문화, 종교, 예술, 정치 등 그 사회를 이루고 있던 전반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우리 앞에 펼쳐보이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 시대를 이해하게 되고, 그 시대상을 눈 앞에 그려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소설의 기능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더라도 변하지 않는 '아우라'를 우리에게 선사하는데, 이는 타 예술장르와는 차별화된 위치에 소설장르를 올려놓게 한다.  

 

먼저 모파상이 살았던 시대와 그의 문학의 연관성을 살펴보기 위해 그의 스승인 플로베르와 그 시기의 문화를 알아보자.

「1848년 2월의 혁명으로 7월왕정이 무너지고 제2공화정이 시작되면서 참다운 예술가들은 완전히 독자층으로부터 소외되었다.  이 혁명은  지식인층과 예술가층의 활발한 활동에 힘입어 일어났으나 그 결과는 민주주의와 지적 자유의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그 결과 전례없는 지적 단순화와 취미의 황폐화를 가져왔다.  혁명 이후 프랑스에 형성된 계급투쟁을 국가에 대한 반역으로 규탄하는 태도, 언론자유의 억압, 정권의 가장 굳걷한 밑받침으로서 새로운 관료체제의 창출, 경찰국가의 구축 등은 과거 어느 시대에도 맛보지 못했던 분열을 가져왔다.  이후 야당이 상당히 진출한 1863년의 선거 이후 나뽈레옹 3세의 독재정치가 자기들 자신의 권력을 위태롭게 한다고 느낀 자유주의적 상층 시민계급은 왕정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노동계급을 돕게 되었다.  이러한 지배계급 내부의 갈등은 1860년 이후의 독재정권의 쇠퇴와 舊제정의 몰락을 촉진시켰다. 

  왕정의 쇠퇴 이후 지배계급을 차지하게 된 부르즈와지는 자신만만하고 까다롭고 거만해졌으며, 그들 계층의 잡다한 성격을 단지 외양만으로 감출 수 있다고 믿는다.  예술에 있어서도 그들은 비싸고 화려한 것이라면 무조건 환영했다.  」

 

<바스티엘 르파주의 <추수(『벨아미』에서는 '밀 베는 여인'으로 나옴)>

 

<아르피니의 <숲>>

(이러한 부르즈와지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인물이 <벨아미>의 작중인물인 '왈테르 사장'이다.  그는 배금주의에 충실하며 권력의 시녀로서의 저널리즘의 창시자이자 유미주의적 속물주의 부르즈와지르 대표한다.  그의 집에 걸려있는 미술품들은 그러한 그의 성향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맡는다), 자본주의의 속물적 색채를 예술의 힘으로 겉포장하려는 노력이 그의 소장품들에 담겨있다.

 

  이 시기 발자끄를 대표격으로 했던 사실주의는 일반대중 사이에서 소수파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에밀 졸라와 플로베르로 대표되는 자연주의의 공격의 대상이 된다.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는 '리얼리즘'의 개념에서는 일견 공통점을 갖고 있었으나, 그 둘 사이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후자의 과학주의, 즉 현실의 예술적 묘사에 정밀과학의 원칙을 적용한 데에 있다.  자연주의의 특징은 우연과 기적의 제거를 통한 올바른 플롯의 구성과 아무리 하잘것없는 사실도 흘려버리지 않는 과학적 관찰의 방법등에 있다.  혁명의 실패, 6월봉기, 나뽈레옹 3세의 집권 등 이러한 사건들에 따른 일반적인 환멸감과 민주주들의 실망감으로 인해 사람들은 오직 사실에만 집착하고자 한다. 

  하지만 자연주의 문학 자체 내에도 두 가지 다른 경향이 있다.  하나는 원래 보헤미안적 환경에서 나온 자연주의자들, 즉 샹플뢰리, 뒤랑띠, 뮈르제 등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금리생활자들', 즉 플로베르나 공꾸르 형제 같은 작가들이다.  반정부적인 사회비평은 모든 자연주의 문학에 공통된 것이며 플로베르, 모파상, 졸라, 보들레르 및 공꾸르 형제는 각자 정치적 입장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 비순응주의에서는 모두 완전히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 모두는 기존 사회의 기반을 파괴하는 데 기여한다.  플로베르는 발자끄의 과장되고 부자연스러운 효과와 반대로 멜로드라마적이고, 모험소설적이며 스릴만을 주는 플롯을 포기하고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일상생활을 즐겨 그리고, 인물 창조에서 모든 극단을 피하고 선.악 어느 한 면만을 강조하지 않으며, 모든 주의와 선전과 도덕적 교훈 등 사건진행에 대한 일체의 직접적 간섭이나 사실의 직접적 해석을 피하는 태도를 상징한다.(바로 이 부분에서 모파상 작품의 문체적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플로베르의 이러한 비정함은 단순한 하나의 수법상의 원칙이 아니라 예술가의 새로운 도덕 관념, 새로운 사상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  아르놀트 하우저 著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권 중>

 

  모파상은 1850년에 태어나 1892년까지 43년의 생애를 살았다.  그의 스승이었던 플로베르의 영향으로 치밀한 관찰에 의한 사실주의적 표현법을 통해 그는 '조르주 뒤르아'라는 한 인물 속에 프랑스의 한 시대상을 축약시켜 놓았다.  왕정의 쇠퇴와 부르즈와지(속물주의와 유미주의 성향)의 성장, 저널리즘의 형성 등 19세기 중반의 프랑스가 <벨아미>속에 담겨있는 것이다.  특히 작품 속 신문기자로서의 '조르주 뒤르아'의 모습 속에서 '저널리즘'이 이 시기 프랑스에서 맡았던 역할을 추측해보게 된다.  이 시기 신문언론으로 대표되는 저널리즘은 새로운 집권세력으로 떠오른 지배계층의 실리를 위해 봉사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지배층의 의도를 지식인과 부르주아지에 설득시키고, 자신들의 목적을 실행시키기 위한 도구로 신문언론은 사용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갖은 중상, 모략 등이 남발되었다.  또한 '벨아미'가 살았던 이 시기는 왕정의 쇠퇴로 인한 빈 자리를 차지하게 된 부르즈와지의 특성상 새롭게 대두된 자본의 힘 앞에 과거의 모든 도덕과 사회질서가 힘을 잃었던 시기였다.  기회주의와 배금주의, 인간의 물권화 등 현대사회의 모든 병폐들의 잠재적 형태성을 이 소설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소설 속에서 인간은 더 이상 인격적 가치를 가진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 진다.  선술집을 하는 부모밑에서 태어나 하사관으로 퇴역한 그는 자신의 삶을 격상시킬 수 있는 기회로 여자들을 이용한다.  자신의 외모를 주무기로 그는 친구의 아내, 드 마렐 부인, 왈테르 부인등을 차례로 이용하는데, 나중에는 자신과 밀애관계를 가졌던 왈테르 부인의 딸 쉬잔과 결혼까지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뒤르아'는 어떤 죄책감이나 후회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 모습에서 그 시기의 문란한 사회풍조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작중에서19세기 초부터 시작된 프랑스의 식민지 정책에 의한 북아프리카 점령계획을 통해 알제리와 튀니지의 정세와 향후 프랑스가 겪게 될 역사적 사건들의 단초들도 확인하게 된다. 

(여기에서 알제리 이민계 출신으로 1917년에 태어난 알베르 카뮈가 프랑스와 알제 사이에 가졌던 인식의 정체 또한 짐작하게 된다.   역사는 흐르는 물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의 예술사적 흐름이 가져오는 반동의 결과 태어난 다른 예술사조가 또 다시 반작용으로 가져오게 되는 결과물들을 통해 각기 색깔을 띨지라도 결국은 인류사라는 큰 물결 속에 하나의 사조로 흐르게 됨을 발견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앞 시대의 문학 속에서 건져올려진 통찰력이 이후 시대의 문학에서 총체성의 결과물을 드러내보임을 발견하게 되는 것 또한 소설장르가 갖는 미학의 특징일 것이다.

  <벨아미>는 자본주의가 앞으로 드러내게 될 모든 병폐의 씨앗(인간의 사물화, 황금만능주의, 권력층의 비도덕성 등)을 '왈테르 사장(속물자본주의)',  '라로슈 마티외(부패한 권력층)', '드 마렐 부인(부패한 성도덕)','조르주 뒤르아(기회주의자)'등의 인물을 통해 성공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작가 자신의 도덕적 관념과 일체의 자의적 판단을 배제한 채, 오로지 '벨아미'의 관점에서 쓰여진 이 작품 속에서 '소설'이 간직해야할 미학적 특징과 역할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