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제리>

<제리> '젊음'이라는 이름의 십자가

묭롶 2010. 7. 1. 21:30

 

 나는 간혹 주변에서 과거의 한때나 젊었던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말을 하며 그 좋았다던 시절을 회상하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여운을 즐기는 그들을 보노라면, 난 매번 의아하기만 했다.  나에겐 과거의 그 어느시절 한때도 절대로 되돌아가고 싶은 때가 없었기 때문다. 

 

사람들이 보통 '젊다'고 분류하는 시기는 연령대로 볼때 이십대일 것이다.  십대는 아직 어리고 삼십대부터는 젊다고 말하기는 어딘지 좀 어색한게 사실이다.    '젊음'을 빛나고 행복한 시절로 표현하고 있는 TV나 영화와는 다르게 난 불치병에 걸린 소녀도 아니었건만 굉장히 우울하고 힘들었다.    영화나 TV처럼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사랑에도 성공하는 그런 멋진 젊음은 내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지금의 처지도 굉장히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난 언제나 현재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19살에 입사한 회사에서 난 어른이어야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난 어른이 아니었지만 갑작스레 주어진 어른의 역할을 어떻게 수행해야 할지 참 막막하기만 했다.  사실 나의 이십대는 어떤게 나인지 모른 채 지나갔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어이없고 난처하고 부끄럽고 슬펐다는 기억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내 모습들은 완성되지 못한 채 폐기되어 수조 속을 떠다니는 에반게리온 속 마리의 복제품들과도 같은 것이었다.  어떤 건 눈이 없고, 어떤 건 팔이 없었으며, 또 다리가 없는 나의 이십대들이 너무 끔찍해서 난 그것들을 죄다 내 기억의 어둔 방에 쓸어담고는 애써 잊은 척 살아왔다.  그런데,  너무나 빨리 그리고 단숨에 읽어버린 이 책이 내 기억의 어둔방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제리>의 주인공인 '나'는 인천에 있는 2년제 야간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이십대초반의 학생이다.  매일매일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을 마시고 헤어진 남자친구 강과 의미없는 섹스를 하며 일상을 보낸다.  가족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하지만, 심각한 고민도 생각도 없이 그저 일상을 견디며 사는 그녀에게 처음으로 갖고 싶은 남자(제리)가 생겼다.  그녀는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제리에게 집착하는 자신의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의아하기만 하다.  그녀는 뒷골목 노래방에서 제리와 관계를 나눈 후, 불꺼진 노래방의 수조를 뒤적이며 자신이 누군가에게 이해받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부터 '나'를 이해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제리>를 읽으며 5년 정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시내 중심가에 있던 지점에서 근무했던 때인데, 공교롭게도 사무실근처가 온통 호스트바가 밀집된 곳이었다.  아침에 내가 출근할 즈음이면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정말 외모와 몸매가 샤방샤방한 남자애들이 두명, 세명씩 모여 퇴근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떤 날인가는 한 명의 호스트를 차지하여 2차를 가기 위해 육탄전을 불사하는 여자 내지는 아줌마들을 보는 날도 있었다.  속으로는 내심 저 인물로 왜 저러고 사나 싶어 한심하기도 하고, 내 동생이라고 생각해보면 가슴아프기도 했다. 

 

  하지만 누가 누구의 인생에 대해 제멋대로 판단할 수가 있을까?  <제리>에서 여주인공인 '나'가 현실 속에서 모호하기만 한 자신의 위치(실존)를 고통(가학적인 섹스와 피어싱, 과도한 음주)을 통해 서만 자각할 수 있었던 것처럼 누구나 화인처럼 낙인 지워진 '젊음(혼돈과 방황)'의 상흔을 저마다의 십자가처럼 짊어지고 고난의 언덕을 오르는 것은 아닐까?   아마도 자신 또한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삶을 살았던 저자가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나'의 고통을 통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그들도 이해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과 위안이었음을 짐작해본다.  나 또한 위로받았으므로.......

 

PS:  이 책을 읽고 어쩐지 내 부족했던 이십대의 모습을 하나씩 끄집어내서 그 상처나고 부족한 '나'들에게 눈을 맞추고 '미안하다'라는 말을 하고 싶어졌다.  어렸을적에는 나이만 많이 먹으면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삼십대가 중반이 넘고서도 난 어른은 아닌 것 같다.  그저 조금더 조금더를 외치며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만 배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