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4월의 물고기>

사랑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묭롶 2010. 2. 1. 11:41

 

 사랑이 피어나고 머무는 곳은 어디일까?  머리일까?  가슴일까? 

만약 사랑이 머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성에 의한 감정조절이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그 반대로 가슴이라고 생각해봤을 때, 그것은 그 어떤 상황과 조건도 극복할 수 있는 감정이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트리스탄과 이졸테>,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현실에서 가능할 거라고 믿지 않는다.  특히 '사랑'이라는 감정을 겪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더더욱 그런 이상적인 사랑의 가능성을 부정하게 된다. 

  우리는 사랑에 빠져있으면서도 소설과는 다르게, 현실의 제약과 상황들을 넘어서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자각하게 된다.  분명 상대방을 사랑하지만 머릿속에서 자꾸만 이성이 개입하는 것을 느끼며 과연 이게 사랑이 맞는것인가를 자문하기도 한다. 

  사랑하면 상대방보다 더 많이 감정을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아야하는데, 항상 저울에 달아보고 내가 더 줬는지 너가 더 줬는지를 따져 묻고, 서운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또 사랑이 우릴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어찌보면 모양새가 저마다 다른 그릇에 담긴 물과도 같지 않을까!  또 서로 다른 색을 풀어놓은 물감통에 떨어뜨린 선명한 물감 한 방울이 물 속에 섞이며 퍼지는 모양과도 같을지도 모른다.  저마다의 삶이 제각각의 무늬를 그리고 있는것처럼, 사랑은 어떤 무늬 위에 실이 섞여 짜이느냐에 따라 다른 문양을 만들어낸다.  누구나 나름대로 자신의 삶 속에 섞여들어온 낯선 빛깔의 존재를 자신나름의 기준에서 해석하려 한다. 

내 삶이라는 물감통에 섞여 들어와 퍼지는 색깔이 녹색인지, 빨강인지 대략적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검정색 물감통에 녹아든 색깔처럼 섞여든 색이 무슨 색이었는지를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경우에는  완전히 섞이고 나서야 아 ~ 무슨색 물감이었구나! 라고 깨닫기도 한다. 

 

  이 작품은 김형경작가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은 어린시절 성폭행의 충격으로 정체성을 잃어버린 여자와 또 다른 여자에게 찾아온 사랑을 통해 사랑이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작중 인물이 받는 정신치료과정 속에서 치밀하고도 치열하게 드러낸다.  이 작품을 읽으며 일반적으로 문학이 다루고 있는 범주와는 다르게 '사랑'을 해석하려 시도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느꼈었다. 

 

  <4월의 물고기>는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만우절의 장난처럼 삶 앞에서 미숙하기만 한 우리네 인간들 속에 스며든 '사랑'이라는 감정의 정체를 낮은 자존감의 연약한 끝을 힘겹게 잡고 살아가는 진서인과 해리성다중인격으로 고통받는 강선우의 사랑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려고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가?  '사랑'은 사람에게 새로운 삶을 혹은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줄 수 있는가?  '사랑'이 이성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작중에서 그들의 사랑은 결코 이 같은 질문에 답이 되지는 못한다.  그 알 수 없는 모호함의 결론은 앞으로도 알 수 없는 것이지만, 다만 문학은 여러가지 시도를 통해 우리가 가보지 못한 위험한 사랑의 궤적을 대신 허공에 그려보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