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너는 모른다>

과연 난 누군가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묭롶 2010. 1. 17. 22:23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말할 때, 알고있다의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누군가와 나의 접점에서 행해지는 경험을 통해 이뤄지는 행위로 이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구성되어진 기억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주관적인 개인성을 지닌다. 

봉사가 코끼리를 더듬듯이 코, 귀, 다리, 몸통, 엉덩이 등 국지적으로 손으로 더듬은 그 흔적을 통해 그 전체적인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데,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하나씩 뒤집힌 블럭조각의 문양을 보고 전체적인 그림을 맞춰나가는 퍼즐처럼, 한 사람을 모두 안다는 것은 평생을 건다고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이다.

어느날 더듬었던 경험을 통해 코끼리라고 인식했던 대상이 사실은 위험한 호랑이였음을 깨닫게 되는 황당한 경우가 일상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이 갖고 있는 한계를 명확히 자각하면서도 우리는 종종 누군가를

그 속내까지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곤 한다.  바로 가족간의 관계, 사랑하는 연인과의 관계가 대표적으로 그러하다. 

이 책은 '안다는 행위'에 관한 한 어느 누구나 예외 없이 서로에게 타인일 수 밖에 없는 우리네 인간사의 공통적인 아픔을 가장 가까운 관계로 맺어진 사람들을 통해 드러내 보인다.

 

이 책의 첫머리는 오래도록 물 속을 부유한 알몸의 남자 사체가 한강변에 떠오르면서 시작된다.  그 사체가 살아있던 몸이었을 때의 기억과 죽은 몸이 되어서 물 속을 부유하며 수면에 떠올라 발견되기까지의 시간의 기록들이 <너는 모른다>에 실려있다.  그 죽어버린 남자와 관계가 끝까지 모호하게 밝혀지지 않은 한 여자아이와 그녀의 가족들의 이야기가 소설 속 관찰자의 시점을 통해 전개된다.  하지만 이 관찰자의 나레이션은 다큐멘터리처럼 관찰자의 개인적인 감정을 배제한 채, 독자에게 보여지는 사실만을 전해준다.  그 결과 소설 속 인물들의 심리는 안개에 쌓인 듯 모호하고 불분명한 형태로 전달되어 책을 읽으며 답답함과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소설 속 인물들 각자도 자신의 감정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듯이 보인다.  20여년에 가까운 세월을 친구도 애인도 아닌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하며 현재까지도 상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규정지을 수 없는 '위링(옥영)'과 '밍'의 관계가 그렇고, 아버지를 향한 애증으로 인해 정상적인 사랑을 하지 못하는 '은성'의 상태가 그러하다.  이 가족들 중 그나마 가장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구축한 인물은 아버지 '김 상호'다.  그는 장기 밀거래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 그 부를 이용하여 가족을 부양하지만 그것은 단지 생계를 위한 일이었을 뿐, 양심의 가책같은 것은 느끼지 않았다.  아이의 실종이후 이들은 가족이고 연인이었지만 실제로는 서로에게뿐만 아니라 자기자신조차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책을 읽고서 갈수록 현대인들은 자기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일에 미숙한 존재들로 감정이 퇴화해가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감정상태를 표현하지 못하고 억누른 채, 사람들과의 정상적인 관계맺음을 경험하지 못하고 억눌린 감정을 방화로 표출하는 혜성의 심리상태와 인형처럼 주어진 현재를 받아들일 뿐, 정상적인 의사소통을 수행하지 못하고 인터넷에서 익명의 이름으로 또 다른 익명과 소통하는 유지의 상태는 갈수록 혼자임을 처절하게 자각하며 살아가야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가족내에서 서로가 긍정적인 힘과 에너지를 공유하며 그 힘을 다시 원동력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는 것과는 다르게 갈수록 부양의 의무만을 지닌 부모, 다만 생계를 함께하는 대상으로서의 가족으로 변해가는 세태 속에 인간이 본원적으로 갖고 있던 고독함은 갖가지 병리적인 현상으로 표출되고 있다.  지금도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무얼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자신이 타인에게 어떤 사람인지를 인식할 수 없는 은둔형외톨이들이 우리 주변에 무수히 존재한다.

책의 말미에 혜성이 가족은 자신이 좀 더 알아가야할 사람들임을 깨닫는 구절을 통해 작가는 아마 타인은 물론 자기자신에게도 너무나 무관심해져가는 사람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되묻고 있는 듯 하다.

소설속에서 유지가 실종된 후에야 서로를 몰랐음을 후회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꼭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후회하는 불효자의 마음과 같을 것이다.  가족이기에 당연시하고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을 되돌이켜보며

계속해서 알아나가려는 노력을 해야함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