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행>

위험한 그들의 생존방식!

묭롶 2009. 11. 23. 13:09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인가?,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인가?

이 책을 읽고서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물음이다.

아무래도 내 대답은 후자쪽으로 기운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기본적인 속성을 꼽는다면 그 첫 번째로 인성을 꼽게 될 것이다.

  오래전부터 논란이 되어 온 성선설과 성악설, 종교에서 말하는 원죄론, 늑대소년의

 실례를 통한 갑론을박들은 결국 인간다움에 대한 고민들에서 출발한다.

  아마도 이 책의 작가도 '사람은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후자에 무게중심을 더 둔 것 같다.

  늑대소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 즉 대상과의 소통과 감정교류를 통해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어린아이의 경우에는 바람직한 자아이상이 존재하는 경우,

 그 대상과 자신을 비교해가며 자신만의 자존감을 정립해나가게 된다.

그러나 바람직한 대상이 없거나 일관성 없는 그릇된 애정관계에 기초한 부정적인 대상과의 관계는

자아의 상실과 분열, 해체와 같은 결과를 낳게한다. 

 기라사와 유키호는 부정적인 인간관계로 인해 인격이 분열된 경우로 볼 수 있으며,

 료지는 자신의 자아를 상실한 채 유키호의 분열된 인격의 투사가 진행된 경우로 보여진다

. 그 결과 기라사와 유키호와 기리하라 료지는 비록 외견상으로 이성을 지닌 간으로

 성장했으나, 내면에 인성은 결격된 인간으로 커왔다.  그들에게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생존본능과 보호색만이 존재할 뿐, 자신을 둘러싼 주변인에 대한 배려나 이타심은 찾아볼 수 없다. 

맹수에게서 먹이감에 대한 배려심이나 양심을 찾아볼 수 없는 것처럼....,

 

 

작가는 유키호의 눈을 고양이의 눈에 자주 비유하고 있다.  책에도 '주운 길고양이에 관한 비유'를

 통해서 이를 암시한다.  비교적 태어난지 얼마 안돼 버려진  길고양이를 데려다 키울 경우 이 고양이는

 자신을 돌보는 사람을 경계하지 않지만, 어느정도 사람의 손에 키워졌다가 버려진 길고양이를 데려다

 키우는 경우는 주는 먹이는 받아으면서도 경계를 풀지 않는다. 

 유키호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양모의 보호아래 부족함없이 키워지지만 자신에게 위험이

 가해지려는 낌새만 보여도 그 대상을 사전에 제거해나가는 철저함을 보인다. 

 료지는 아버지의 살해사건 이후 엄마이기보다는 여자이고 싶었던 엄마의 방치속에

 학창시절을 보낸 후 고등학교 때 가출해서 슈이치라는 가명의 삶을 살아간다. 

 

 책을 읽으며 소설 속에서 직접적으로 살해를 하는 장면은 묘사되지 않았지만

 살해의 현장에 료지가 있었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또한 유키호가 료지와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그녀가 살해사건에

 관련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전후관계가 명백하게 료지에 의해 이뤄진 살해장면을

 작가가 글로 묘사하지 않았던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작가는 사건의 내용보다는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우선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행동의 결과보다는 그 행동을 낳게 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19년전에 일어났던 미해결 살인사건을 퇴직 후에도 추적하는 사사가키 형사를

등장시켜야만 했을 것이다. 

 모든 살인사건의 뿌리가 19년전의 살인사건이며 나머지는 그 줄기에서 피어난 열매이기에

그 뿌리를 더듬어 그 실체를 확인하는 과정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가 살인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를 료지라는 인물이 지닌

 특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릴적부터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자란 료지는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는 인물로 성장한다.  거위가 알을 깨고 처음보는 대상을 엄마로 인식하는 것처럼

, 그는 자신이 유일하게 마음을 연 대상인 유키호를 태양으로 삼아 자신을 어둠 속에 숨긴 채 살아간다.

  그나마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대상(아버지)의 끔찍한 실체(유아성애자)를 눈으로 목격한

 순간 그는 자아를 지킬 수 있는 의지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판단력도 모두 상실해 버렸다.

그런 상태에서 만난 유키호가 그에게는 자신을 둘러싼 암흑 속에서 낮처럼 자신이 걸어야 할 방향을

 밝혀주는 밝은 태양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자신이 유키호의 그림자였음이 밝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도마뱀처럼 유키호에게 드리워졌던 자신의 어둠을 지워버린다.

  소설의 말미에 이르기까지 유키호의 거짓된 삶은 깨어지지 않을 완벽하게 방어력을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그림자인 료지가 죽음을 인식하는 그 순간까지도 뒤돌아보지 않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사사가키형사의 두 눈에 비쳤던 것은 아마도 섬뜩함보다는 서글픔(가엾음)이었을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가족과 타인에 의해 괴물이 되어버린 한 존재에 대한 연민이

이제 모든 것의 뿌리인 실체를 확인해버린 노형사의 눈에 어리지 않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