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자료/현대소설

1910~1960년의 각 10년 주기별로 소설에 나타난 문제적 인물의 유형

묭롶 2008. 12. 23. 16:44

 

< 이광수의 「무정」>

  「무정」의 주인공인 이형식은 동경 유학을 마친 당대 일류지식인으로 독신이며, 경성학교

영어 교사이다.  그는 장안의 부호인 김장로의 딸 선형의 영어 개인지도를 맡게 된다.  선형을

가르치고 하숙집으로 돌아와 예전 은사의 딸인 영채를 만나게 된다.  영채는 과거 정혼녀였으나

현재는 기생인 계월향이 되었다.  영채는 경성학교 교주 아들 김현식과 배명식에게 정조를 잃게

되자 죽음을 결심하고 평양으로 가게 된다.  이에 형식은 영채를 찾으러 가려던 즈음 김장로의

요구로 선형과 약혼을 하게 되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한편 영채는 죽으러 평양으로

가다 병욱이라는 일본 유학생을 만나게 되고 과거의 구습에 얽매였던 것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되고 신여성으로 거듭날 것을 결심한다.  형식과 선형은 미국 유학을 하러 가는 부산행 기차

안에서 병욱과 영채를 만나게 되고 그들은 기차여행 중  홍수가 난 광경을 보게 되고 이들

넷은 합심하여 수재민을 돕기 위한 음악회를 열어 모금을 하지만 한계를 느끼며 어떻게 하면

행한 조국을 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이후 형식과 선형은 시카고대를 졸업하고,

병욱은 음악학교 졸업 후 독일 유학을 마치고 형식 일행과 같이 돌아온다.  영채는 동경

음악학교 피아노과와 성악과를 졸업하여 동경에 있다 서울로 올 예정이다.  이들과 같이

유학을 떠났던 유학생이 조국에 돌아오면 조선은 그 미래가 밝을 것이다.  라는 희망을

보이며 작품을 끝을 맺는다.

  「무정」이 발표된 시기는 서구 문문의 수용으로 우리 민족이 개화의식에 눈뜨기 시작하던

때로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과 항쟁이 공존하던 시대이고 문학적으로는 신소설의 등장에 이어

근대소설이 출발되는 시기이다.  「무정」은 「매일신보」에 연재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이다.  이광수는 1919년 1월에 도쿄유학생들의 2/8 독립 선언서를 기초하지만 이후

1910년대에 지녔던 진보성을 상실하고 친일적인 문필활동과 행적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 뒤 8.15 해방 후에는 친일파로 지목되어 은신하다가 납북도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광수의 작품세계는 「매일신보」에 「무정」이 연재 되면서 근대소설의 효시라는 칭호와

함께 청년계층의 비상한 관심을 얻는다.  이후 상해로 가 임시정부에서 「독립신문」의 주필이

되었지만 귀국한 후 「민족개조론」을 발표한다.  그 뒤 발표된 작품들은 대개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작품 속에 좌익 항일 운동에 반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등의 이념문제를 초조하게

생각한 탓에 작품의 짜임새를 돌보지 않은 부분이 드러난다는 평가를 받는다.  1932년에서

1933년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흙」은 농촌계몽운동을 이해 헌신하는 내용의 야심작으로,

민족운동의 노선을 둘러싼 논란에 깊이 참여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이후 조선일보로 옮겨

간 후에는 이상주의에 몰입하여 작품 속에서 현실과의 괴리가 더욱 확대되기에 이른다. 

「무정」을 현대문학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는 근거로는 근대적인 의식과 자아각성이 보인다는

점, 서술이 비약적․추상적인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구체적이고 세밀 하다는 점, 선과 악의

이분법적 도식에서 탈피했다는 점, 구어체에 접근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무정」은

순 한글로 씌어져 있으며 이는 계몽성을 그 밑바탕에 깔고 있음이 목적이었다.  「무정」은

크게 두 가지 구조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첫 번째 구조적 특징은 1917년을 앞뒤로 한 당시의

시대적 진취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특징은 <교사-학생>의 관계 구조이다. 

「무정」은 작중 인물들이 대개 유학생 지식계급으로 일반 대중과의 거리감이 있으며 막연한

인텔리 근성으로 인해 민족적인 각성을 구호로 하거나 당시의 민중의식을 포착하지 못했고

관념적인 이상주의로 시종일관 했다.  하지만 세련된 언문일치의 문장으로 구성이나 대화

장면 묘사 등 현대소설적인 조건을 갖추고 봉건적인 잔재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3.1 운동 이후

한국소설을 가능케 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 조명희의 「낙동강」 >

「낙동강」은 낙동강에서 타어나 자란 어부의 손자이자 농부의 아들인 박성운을 주인공으로

한다.  그는 아들에게만은 어려운 삶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노력으로 도립 간이 농업

학교에서 고등교육을 받고서 졸업 후에 군청 농업 조수로 일하게 되지만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투옥되고 만다.  옥고를 치르고 돌아온 집은

이미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집도 없이 누이동생에게 얹혀살고 있었다.  성운은 아버지를

모시고 서간도로 이주를 하지만 그곳에서 혹독한 가난과 핍박을 당하게 되고 그곳에서 아버지마저

잃게 된 후 그는 민족주의자에서 사회주의자로 변환하여 고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는 고향

촌민들을 위해 소작 조합 운동을 전개한다.  그러던 중 마을 촌민들의 공동 경작지였던 국유지가

일본인에게 넘어가게 되자 그는 격렬한 항의를 조직하게 되고 이에 성운은 주모자로 일본 경찰에

붙들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병보석으로 풀려난다.

이런 성운의 정신과 사상에 감화된 로사는 선생으로서의 안락한 삶을 버리고 성운과 함께 농민

운동에 뛰어든다.  하지만 성운은 그 와중에 병이 악화되어 죽음을 맡게 되고, 로사는 성운의

뜻을 계승할 것을 결심하며 성운이 밟아왔던 길을 따라 서간도로 향한다.

  「낙동강」이 발표된 1920년대 초의 문단은 3.1 운동의 실패에서 오는 허무의식으로 인해

낭만주의와 유미주의, 퇴폐주의로 일색을 이루었는데, 이에 반발하듯 발생한 문예 운동이 경향

문학이다.  작가인 조명희는 카프로 대표되는 프롤레타리아 문예운동의 정치성을 작품으로

형상화하는데 성공한 대표적인 작가로, 짧은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문학 장르의 작품

활동을 펼침으로 인해 당대의 다른 작가와의 차별을 갖는다.  「낙동강」은 기존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방향 전환 즉, 자연발생적 문학에서 목적의식적 문학으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발표가

된 것으로 「낙동강」을 당대의 목적의식적인 문학운동의 첫 결과물로 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지금까지도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조명희의 초기 시와 희곡의 특징은 애상적 낭만주의와 관념적 인도주의의 성향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더불어 조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어두운 현실은 곧 그의 문학에 절망과

강한 부정정신으로 드러난다.  조명희는 「낙동강」을 통해서 이전의 자연발생적이고 전망

없는 세계 인식에서 탈피하여 좀 더 구체적인 현실인식과 목적의식적인 대안까지 전망하는

그야말로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제1차 방향 전환, 즉 제 1기 문예운동의 반성으로서의 제2기

문예운동의 결과물을 처음으로 선보임으로써 문단의 화제가 되었고, 이때부터 조명희는 막연하게

느껴오던 민족이라는 것과 궁핍한 무산자들의 고통의 원인을 사회적 문제로 부각시킴으로써

좀 더 발전적인 모습을 보인다.

  「낙동강」은 계급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경향문학과 다른 위치에 설 수 있다. 

종래의 경향문학이 개인사의 문제에 국한되어 파국에 다다른데 반해, 조명희의 「낙동강」은

개인사의 문제를 딛고 계급의 문제로 확대되어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지적, 수정할 것을 요구한다. 

「낙동강」은 주인공의 형상화에 있어서도 동 시대 다른 작품들과 차이를 갖는다.  박성운이

비극적인 개인사에 연연하기 보다는 고향의 계급적 해방을 위해 활동을 하는 사회주의 운동가의

표본으로 등장한다.  이전 경향소설이 최서해 식의 전형적인 인물 유형을 고수한 것에 반해

조명희는 전형적인 인물 대신 이광수의 「무정」에 등장하는 이형식과 같은 인물유형으로 설정하되

대신 스토리 과정에서 충분히 무산자가 되어 대중 속에 있어야만 하는 인물을 문제적 개인으로

삼았다는 데에서 그 차별성을 지닌다.  또한 박성운의 죽음이 이전 경향문학에 나오는 문제적

개인들의 분노의 표출과 그로 인해 파행되는 유산자들의 비극적 결말이 아닌 로사라는 인물을

해롭게 탄생시키는 하나의 요인으로 승화된 점이 다른 점이다.  「낙동강」이 이전의 경향문학과

다른 차별성을 지닌다면 역사인식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수용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전의 KARF 문학과의 차이점은 민족적인 문제를 작품 속에 끌어안고 있다는 점이다.  조명희가

굳이 「낙동강」의 주소재로 낙동강을 삼은 데에는 단순한 원형적 의미인 죽음과 재생의 상징으로

삼기 위한 것보다 오랜 세월 한 민족이 터를 이루고 뿌리를 내려온 역사적 의미까지도 내포하고

있음을 감지 할 수 있다.  즉, 그는 낙동강이라는 원형상징이자 역사적 상징을 통해 좁게는 민족

해방에서 더 나아가 계급해방까지 염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 염상섭의 「삼대」 >

  「삼대」는 대지주인 조부 조의관과 아버지 상훈, 그리고 손자인 덕기 이렇듯 삼대를 통해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시대적 상황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대지주인 조부 조의관은 양반 행세를

하기 위해 족보를 사들일 정도로 명분과 형식에 얽매인 구세대의 전형이고, 아버지 상훈은 신문물의

교육을 받았으나 방탕한 생활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는 인물이며, 손자인 덕기는 선량한 인간성의

소유자이나, 조부와 아버지의 부조리 속에서 재산을 지켜 나가는 일에 한정되어 적극성을 잃은 우유

부단한 인간형으로 그려진다.  조의관은 고루한 봉건 의식의 소유자로 거액의 재산을 바탕으로

가문의 명예를 키워나가는 것을 가장 큰일로 삼으며 칠순 노인이면서 사별한 후 서른을 갓 넘긴

수원댁을 후처로 들여 네살박이 딸까지 두고 있다.  조의관은 맏아들 상훈을 못마땅해 하는데,

이는 상훈이 미국 유학까지 마친 인텔리에 신실한 기독교 신자요 교회 장로이지만 실상 그의 삶이

축첩과 노름, 불륜으로 얼룩진 삶을 살아가면서 그의 재산을 탕진하는데 있었다.  조의관은 손자인

덕기를 통해 가문의 명예와 재산을 지키고자 하는데, 덕기는 조부나 아버지와는 다른 인물이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자인 친구 병화가 하는 일에 심적으로 동조하기는 해도 그 자신은 법과를 마쳐

판사나 변호사가 되려는 꿈을 품고 있다.  병화가 목사인 아버지와 사상대립으로 부딪히는 반면

덕기는 조부나 아버지와 정면충돌하는 일이 없다.  오히려 상황에 따라서는 세대를 달리하는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이해하고 동정하기도 한다.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조씨 가문의 불화와

암투가 정면에 드러난 것은 조부의 임종을 앞두고 생긴 재산 분배 과정에서 였다.  조의관의 후처인

수원집과 그를 조의관에게 소개해 준 최참봉 등은 재산을 가로챌 욕심으로 유서변조를 계획하고

조의관을 독살한다.  의사들의 배설물 검사로 사인이 독살임이 판명되어 아버지 상훈은 부검을

요구하지만 집안 어른들의 반대에 부딪쳐 요구가 좌절되어 범인 찾기는 흐지부지 된다.  그러나

손자 덕기가 나타나 수원집 일당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재산 관리권은 덕기에게 돌아간다. 

이에 아버지 상훈은 법적 상속자인 자신을 건너뛰고 아들인 덕기에게 그 권리가 넘어가자 유서와

토지문서가 든 금고를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 붙잡힌다.  한편, 상훈에게 농락당하고 아이까지

낳은 후 버림받았던 홍경애는 포면적으로는 술집 여급으로 생계를 꾸려 가지만, 해외의 독립

운동가인 이우삼과 연계를 가지면서 그를 뒤에서 돕는 역할을 한다.  경애는 병화와 자주 만나는

사이에 애정을 느끼게 되고 그들은 조그마한 잡화상을 경영하며 경찰의 눈을 속이지만 그것이

다른 운동가인 장훈일파의 오해를 사게 되어 테러를 당하게 되고, 이후 대대적인 검거 열풍이

불어 장훈 일파와 병화, 경애는 검거된다.  그리고 덕기도 병화에게 자금을 대주었다는 혐의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는데, 그 과정 중 장훈은 비밀유지를 위해 음독자살한다.  장훈의 자살로

조사가 미궁에 빠지자 연행되거나 검거되었던 사람들은 다 풀려 나오게 되고 상훈도 훈방 조치로

풀려나게 되고 덕기는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공백을 느끼면서 자신의 몫이 된 조씨 가문의

유업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가 망연해 한다.

  염상섭이 활동하던 20세기 초는 근대 사회로의 이행 과정과 동시에 민족 해방을 위한 투쟁이

치열하게 진행되던 시기였다.  특히 1920년대 말과 1930년대 초에 발생한 경제 공황으로 인해

일제는 보다 강제적으로 조선을 착취하였고 한반도를 병참기지화하기 위해 강압적으로 수탈을

하였으며 조선 민중의 민족해방운동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염상섭은

사회 현실의 문제와 지적 분위기를 치밀하게 묘사하며 한국 문학사를 통틀어 독보적인 작가적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투철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주어진 현실을 냉철하게 파헤침으로써

일제 식민지시대를 파악하는데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염상섭은 당대 사회의 현실을 냉혹하게 드러내고 그리는 행위를 통해 당대 사회의 현실을

그 누구보다도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래서 그는 당대 사회와 자신이 속한 계층의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는 것이다.   소설이 ‘있을수 없는’ 세계를 다룬다고 생각하는 김동인과 달리 염상섭은

소설은 ‘있는 세계’를 사실대로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삼대」는 염상섭의 대표작으로 1931년 1월 1일부터 9월 17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 되었다가,

해방 이후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이 작품은 당대의 조선사회를 극명하게 통찰하고 그 시대의

갈등의 핵심을 포착 표현한 성과이자, 현실사회의 움직임을 피로 삼고 중산계급의 삶과 의식을

살로 삼아 1920년대의 전체 한국사회를 핵심적으로 부각시키기에 온힘을 기울였던 작품으로,

1920~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다면적․다층적으로 형상화가고 있다.  「삼대」의 독창적인

면모는 작중 인물들 간의 대립과 갈등을 인물들 상호간의 간섭 속에서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대」는 우리 소설 가운데 서울말을 가장 풍부하게 살려 쓴 작품이기도 한데, 이는 방언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주변부 인간의 삶과 의식을 존중하는 정신의 실현으로 표준어의 획일성과

배타적 차별성에 근거한 가치의 중앙집권주의에 대한 반성의 의미를 지닌다. 


< 이범선의 「오발탄」 >

  「오발탄」은 계리사 사무실 서기인 철호를 주인공으로 한다.  그는 음대 출신의 아내와

제대후 2년이 되도록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동생 영호, 그리고 양공주가 된 여동생

명숙, 전쟁통에 정신 이상이 된 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살고 있는 월남 가족의 가장이다. 

퇴근 후 집에 들어서니 정신이상이 된 어머니의 “가자! 가자!”라는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철호는 삼팔선 때문에 고행에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 하지만 이를 알아듣지

못하는 어머니는 아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영호가 집에 돌아오자 철호는 그의 불성실한 태도를

나무라지만 영호는 자기 방식대로 살겠다고 하고 철호의 아내는 10여년전 대학시절의 아름다움을

잃은 채 아무런 희망도 가지려 하지 않는다.  영호는 대상 없는 분노를 터트리면서 눈물을 흘린다. 

골목 밖에서 명숙의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게 들여온다.  그녀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채

아랫방으로 가서 가로 눕는다. 다음날 경찰로부터 영호가 강도혐의로 붙잡혔다는 애기를 듣고

경찰서에서 나온 철호는 집으로 돌아가지만 아내가 위독하다는 말을 듣게 되고 명숙으로부터

돈을 받아 병원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이미 아내는 시체로 변해 있었다.  철호는 순간 충치가

아파옴을 느끼고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충치를 모두 뽑은 후 택시를 타고서는 목적지를

잃은 채 해방촌으로 가자고 했다가 경찰서로 행선지를 바꾸고, 또 다시 병원으로 목적지를 바꾼다. 

 이에 운전사는 ‘오발탄’과 같은 손님이 걸렸다고 투덜대고 차는 목적지도 없이 차량 행렬에

끼어들고 철호는 입에서 선지 같은 피를 흘린다.

  이범선은 전쟁을 직접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월남한 실향민으로 전쟁으로 인한 정체성의

파행을 끈질기게 추구한 전후세대 작가이다.  그는 6.25의 여파로 인해 파괴된 서민의 일상성을

문제시하면서 현실의 부당함을 리얼하게 드러냄과 동시에, 나아가 현실의 모순을 극복해보려는

노력을 시종일관 보여준 작가이다.  그에게서 주목해야할 점은 전시대의 누구도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참인간의 실상을 현실의 차원에서 찾아보려는 노력이다. 

  작가 이범선은 그 스스로 실향민으로서 자연스럽게 갖게 된 실향의식에서 출발하여 사회

현실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고, 그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극복의 의미로써 따스한 인정의 제시나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함으로써 시대 상황에 반하는 인간애의 회복에 초점을 두었다. 

  「오발탄」은 한국 사회가 겪고 있던 참다운 시련을 가장 적나라하게 제시하고 있으며, 

가중되는 생활의 압박에 의한 자포자기적 상태의 소시민 누구나가 겪고 있던 사회 부정에 대한

반감을 가장 직설적인 방법에 의해 표상시켜 내고 있다.  「오발탄」은 궁핍과 부조리 등의 합리적

극복이 불가능했던 전후 사회를 살아가는 한 가족을 통해 가치관이 부재한 사회를 보여준다. 


< 최인훈의 「광장」>

 「광장」은 해방이후 좌파 운동을 했던 아버지를 둔 철학과 재학 중인 이명준을 주인공으로

한다.  그는 아버지가 월북한 이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 친구인 변성제에게 맡겨져서

아버지 친구의 자녀인 영미, 태식과 의미 없는 나날을 보내던 중 아버지로 인해 형사에게

조사를 받게 되고 그 과정에서 폭력을 당하면서, 남한사회에서의 삶에 대한 정체성에 혼란을

갖게 된다.  그는 세상으로 나가는 ‘광장’에 이르는 길을 알고 지내던 윤애와의 사랑을 통해

찾고자 하지만, 윤애를 통해서 관념과 현실의 간격을 좁힐 수 없었기에 우연히 알게 된 경로를

통해 월북을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월북 후에 보게 되는 북한 사회의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빈껍데기뿐인 그림자였음을 깨달으면서 북에서도 ‘광장’을 찾지 못하게 되자 이명준은 절망하여

방황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윤애와 비슷한 국립극장 소속 발레리나 은혜를 알게 되고

은혜를 통해서 ‘몸의 길’을 통해 ‘광장’에 이르고자 한다.  이후 6.25 동란이 발발하게 되어

명준은 인민군 정치보위부 장교가 되어 서울로 남하한다.  그는 서울에서 간첩혐의로 잡혀온

옛날 친구 태식과 태식의 아내가 된 그의 옛날 애인 윤애를 만나게 된다.  그는 태식과 윤애에게

예전에 자신이 형사에게 당했던 폭력을 되돌림으로써, 적응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악인이 되고자

하지만 그렇게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보게 되고 전쟁터에서 우연히 은혜와 재회를 하게 된다. 

현실과 사상 사이에서의 갈등 속에 있던 그는 은혜를 만나면서 사랑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지만 은혜는 전사를 하게 되고 그는 전쟁포로가 되어 제 3국으로 향하는 배를 타게

된다.  그는 배안에서 제 3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기도 하지만 결국 ‘밀실’에서 ‘광장’에

이르는 길을 찾지 못한 채 실종된다.

  최인훈 작품의 연구 내용을 요약해보면, 첫째, 문학과 현실의 관점에서 최인훈의 위치를

지나친 관념주의로 비판한 것, 둘째, 식민지적 상황과 분단 상황을 분석, 목표를 상실한 당대

현실을 다루고 있다고 지적한 것, 셋째, 자아정체성의 모색과 인간소외를 다루었다고 지적,

그 사유체계를 분석한 것, 넷째, 기존의 소설과 다른 서사양식과 기술방법을 쓰고 있음을

지적, 분석한 것 등이 있다.  이러한 다양한 연구들이 공통되게 지적하는 것은 최인훈 문학이

‘사유와 문학의 통합’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 있다는 점이다.  최인훈의 문학은 인간주의를

근간으로 하고 있으며 추상과 구상을 구별 짓지 않고 현실과의 조율을 중요시 한다. 

최인훈의 글쓰기는 문학의 오랜 의문점인 ‘문학으로 철학을 할 것인가?’, ‘철학으로 문학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사유로써의 문학을 보여준다.  또한 글쓰기를 통해 끊임없는

자기반성의 양상을 나타냄으로써 패배자로서의 문제적 주인공이 아닌 현실에 대한 각성으로

도출된 미래의 염원을 형상화한다. 

  「광장」은 일곱 차례의 개작을 통해 작가의식의 변모와 결말부의 변화, 외래어의 한글표기,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단어의 변환을 하고 있으며 개작의 과정 속에서 변하는 시대에 맞는

살아남을 수 있는 언어를 찾았다.  「광장」이 이전 한국 소설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6.25라는

아픔과 분단이라는 경험이 기존 작품들과는 달리 지식인의 입장에서 좀 더 깊은 사유에 의해

씌어졌다는 점, 더 나아가 이데올로기적 접근을 통한 사회의 진단, 갑자기 불어 닥친 근대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엿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이분법적 사고관에서

남도 북도 아닌 제 3의 중립국을 선택했다는 내용 자체가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광장」의 형식을 살펴보면, 주인공 이명준이 배를 타고 제3국인 인도로 가능 상황에서

시작하여 그 사이사이에 과거의 일을 삽입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시간적

재구성이라는 특징을 볼 수 있다.  내용적으로는 분단과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상황을 설정하고

그 속에 이명준이라는 지식인을 배치하여 분단 상황을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 점검, 남북

분단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 속의 바다라는 공간은 ‘재탄생’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나타내며 갈매기는 그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상징한다. 

그래서 주인공이 갈매기를 보고 바다 속으로 사라짐으로 해서 주인공의 새로운 삶에로의 의지를

보여준다.

 

책을 읽고서 ‘인류사를 통해 소설이 역사와 다르게 갖는 가치가 무엇일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역사는 있는 사실을 기록함으로서 그 당시의 사실들에 대한 증언을 하는 것인데

반해 소설은 그 당시의 시대상을 상상력을 빌어 표출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당시 올바르게 역사로 기술할 수 없었던 사실들을 문학적 상상력을 빌어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출할 수 있었고 시대상을 반영한 문제적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형상화함으로써 현실세계에서의 대안을 고민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소설이

갖는 문학사적 가치입니다.  이광수는 「무정」의 주인공들을 통해 구습에 젖어 어두움에 잠겨

있는 민족을 계몽시켜야 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주인공들은 민족을 계몽하는

방법으로 민족 내부의 역량의 결집이 아닌 외세의 힘(외국 유학 등)을 빌어서라는 방법을 제시

함으로써 근대화의 혼란한 시기에 적절한 대안이 되지 못한 채 현실과의 괴리감을 드러내고

있으며, 식민지 시대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 없는 단순히 계몽만을 목적으로 하여 일제라는

지배체제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시대를 대표할 만한 작품을

쓰고도 이후에 작품을 쓰지 못하는 작가들에 대한 애기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무정」을 읽으면서 작가가 작품을 통해 문제적 시대 상황에 대한 고민과 문제제기 의식,

그리고 문제의 형상화를 통한 간접적인 해법의 제시가 없는 소설을 단순한 흥미위주의 읽을

거리밖에 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에 대한 고민이 작가정신이라 판단됩니다. 

결국 이광수는 이러한 민족의 계도자로서의 선구자적 역할에만 집착한 나머지 현실과 괴리된

작품 활동을 하게 되었고 「무정」이후의 작품들이 오히려 후퇴한 이유도 시대적 요구에 부합

하지 못한 작가정신의 부재라고 판단됩니다.  조명희의 「낙동강」은 당시 KARF 문학이 현실에

대한 구체적 해법 없이 단순한 구호성에 그쳤던 것에 반해 박성운이라는 인물을 통해 개인적인

비극에 연연하지 않는 사회운동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비극이 일본의 수탈로 인한

것임을 나타냄으로써 식민지 시대의 사회상을 나타내고 박성운의 죽음으로 끝이 아닌 로사라는

새로운 운동가를 배출함으로써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일방적인 이데올로기의 전파가 아닌 작가 자신이 주인공 박성운을 통해 현실세계에서의 프롤

레타리아 문학의 방향에 대한 고민을 작품으로 형상화 했다고 생각합니다.  염상섭의 「삼대」를

읽으면서 저는 작가가 ‘돈’을 도구로 하여 주인공들의 갈등을 그린 점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식민지 사회에서 개인의 치부를 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조씨 가문의 명예를 세우려는 조부 조의관과,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표면적으로는 신앙심 강한 인텔리의 모습을 보이지만 그 이면에 방탕한

생활을 하는 아버지 상훈, 그리고 문제의식 없이 우유부단한 손자 덕기에 이르기까지 주인공들

간에 발생하는 모든 갈등은 결국 ‘돈’이 중심입니다.  염상섭이「삼대」를 통해 보여준  ‘돈’에

반응하는 다양한 인간의 군상들은 지금의 현재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모습들이어서

물질이 주는 가치와 모순을 다시 한 번 고민하게 합니다.  이범선의 「오발탄」철호 가족을 통해

많은 월남가족들의 정신적 혼란과 극빈의 상황을 표출합니다.  철호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그 안에서 양심을 지키고자 하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동생의 구속과 아내의 죽음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는 살아가야 할 가치를 찾지 못하고 오발탄처럼 목적지 없이 방황하다 택시

안에서 죽음을 맞게 됩니다.  6.25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위협받고 정신적인 공황상태에서

그 시대를 어떠한 의지로 살아내야 하는가를 작가는 되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전후에 다른

작가들이 인간의 내면을 그리는데 집중한 반면 시대 상황에 대한 고발성 짙은 문학을 통한 문제

제기를 하여 실향가족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희망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최인훈의 「광장」은

이명준이라는 주인공을 통해 이데올로기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모두 각각의 이데올로기의 전파에 집중하던 시대에 그 속에서 갈등하는 문제적 인간을

형상화함으로써 제도화 되어버린 이데올로기가 아닌 그 이면을 고민하게 합니다.  그래서 결말

부분에 남과 북 어느 곳도 선택하지 못한 주인공이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선택한 제3의 중립국으로

가는 도중에 재탄생을 상징하는 바다 속으로 실종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광장」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일방적으로 받아왔고 믿어왔던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성과 제가 나아가야할

‘광장’이 어디일까?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광장」이라는 한 작품에 일곱 차례의 개작을

한 최인훈 작가의 작가정신에 존경심을 갖게 됩니다.  「광장」서문에 작가가 ‘이명준이라는

주인공을 깊이나 속을 알 수 없는 바다 속에 잠수부로 내려 보낸다’는 글을 읽으면서 결국

소설이라는 것이 모순된 삶을 살아가는 문제적 주인공들이 겪는 갈등과 해결에 대한 고민들을 통해

시대적인 문제 상황을 보다 더 공감 있게 구체화 시키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