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자료/마샬 맥루한

<지구촌>

묭롶 2008. 12. 23. 16:16

 

 인류 역사를 들어 새로이 등장하는 모든 형태의 인공물들은 자연발생적으로 역사에 등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환경(그라운드)을 통해 그 안에서 새로운 인공물

(피겨)이 탄생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공물은 과거의 환경(그라운드)의 속성을 내부에

포함하고 있다.  또한 새로이 등장한 인공물은 기존의 환경(그라운드)의 요소에 영향을 미쳐

그 안에서 어떠한 요인들의 퇴화를 촉진하며, 그 속에서 또 다른 형태의 인공물을 낳게 된다. 

이것이 마샬 맥루한이 말하는 테트래드의 대략적인 개념이다. 마샬 맥루한은 지구촌(The

Global Village)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이다.  그가 일부 국가나, 단체에 국한된

것이 아닌 지구촌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이유는 왜일까?  그것은 그가 지구(자연)를 하나의

그라운드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확장할 경우 지구는 우주라는 거대한 그라운드

속에 개별적으로 생성된 피겨의 개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구를 그라운드로 보게

된다면 인류는 자연에서 발생된 하나의 피겨로 볼 수 있다.  인류라는 피겨는 지구라는

그라운드에서 테트래드의 네 가지 변화 단계(증강, 퇴화, 부활, 수정)를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마샬 맥루한은 테트래드에 대입해볼 때 새로운 인공물이 어떠한 형태로 변화하고

사용되어 어떠한 변화를 촉발시킬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물론 심한

비약이지만 이러한 개별적인 인공물에 지구를 그라운드로 상정한 인류라는 피겨의 운명을

예측해볼 수도 있을까?  마샬 맥루한도 그러한 생각을 한번쯤은 해보지 않았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이 책을 하이퍼텍스트 기말고사의 리포트로 지정하신

이유에는 21세기에 나타난 새로운 알파벳이라고 볼 수도 있는 하이퍼텍스트(피겨)의

테트래드적 대입을 통해 기존의 문명(서사적 그라운드)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하고 그 모습이

어떠할지를 예측해보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I. 시각적 공간과 청각적 공간의 탐색


 1. 공명 간격

  테크놀로지는 인간의 감각들 가운데 어떤 한 가지 감각을 강조한다.  동시에 다른 감각들은

점차 약해지거나 혹은 잠시 퇴화한다.  인공물이 완전히 변형되면, 테트래드는 인공물의

은유적 구조가 서로 동적이고 유사한 관계를 지닌 두 가지 피겨와 두 가지 그라운드를 가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공명 간격은 피겨와 그라운드 사이의 관계를 정의하고 그라운드의 형태를

구성한다.  공명 간격은 시각 공간과 청각 공간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으로 간주될 수

있다.  두 개의 다른 세계 사이의 공간이 상호작용 영역과 같지 않을수록, 그 두 세계 사이의

상호교환은 더 큰 긴장을 수반한다.  모든 문화적 상황은 주의라는 한 영역(피겨)과 부주의라는

훨씬 더 큰 영역(그라운드)로 구성되어 있다.  주의와 부주의는, 그것들 사이의 윤곽 혹은 경계

혹은 간격과 함께, 끊임없이 마찰적 상호작용을 하는 상태에 있다. 

사물의 순서에서, 그라운드가 먼저고 피겨는 그 다음이다.  앞으로 발생할 사건은 예고라도

하듯이 그들 앞에 미리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어떤 테크놀로지이든 그 테크놀로지의

그라운드는 테크놀로지가 함께 가져오는 서비스와 역(逆) 서비스의 모든 환경일 뿐만 아니라

테크놀로지를 낳는 환경이다.  이러한 환경은 부작용이다.  그리고 이 부작용은 함부로 그들

자신을 새로운 형태의 문화인 것처럼 내세운다.  오래된 그라운드는 새로운 상태의 내용으로

바꿔지면서, 보통의 주의가 그 그라운드를 피겨로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동시에 새로운 노스

텔지어가 탄생한다.  청각적 공간과 시각적 공간은 사실상 분리가 불가능하다.  피겨와 그라운드는

창조한 상호작용 영역에서는 균형을 유지하지만, 그들을 분리시키는 간격을 건너서는 각각

서로에게 압력을 행사한다.  그러므로 인터페이스는 공명적이고 정적이지 않다.  그 압력은

교차대구법이라고 불리는 계속적이고 잠재적인 변형의 조건을 만든다.  테트래드를 새로운

테크놀로지나 혹은 인공물에 적용할 때, 테트래드는 이용자에게 예측력을 제공한다.  테트래드는

언어와 테크놀로지의 숨겨진 특성이나 효과를 현상학적으로 드러내는 데 있어 과학적인 도구가

된다.  또한 테트래드는 인간의 모든 인공물이 사실은 말이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만들었다. 

각 테트래드는 말이거나 혹은 각 테트래드의 주제의 로고스이다.  말은 뇌 우반구적 커뮤니케이션

이론이나 모형을 구성한다.  그리고 말은 발화를 설명하고 어원을 밝히면서, 전자 테크놀로지가

20세기에 초래한 인식의 형태와 일치하는 방식으로 문법과 수사학의 결합이라는 고대의 중세의

전통을 새롭게 하는 데 이바지한다.  말은 모든 종류의 인간의 인공물에 그것이 하드웨어든

혹은 소프트웨어든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모든 인공물이 꼭 말인 것처럼, 모든 말과 언어는

인공물이다.  말과 인공물은 각각 양끝이 이어진 형태로 네 부분으로 구성된 구조를 드러내

보인다.  이와 같은 구조에는 예외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바로 이것이 언어의 우반구적

국면이다.  테트래드적 은유는 각 인공물의 문법 및 구문론의 문제와 통해 있다.  그 은유의

역할은 숨겨진 그라운드를 감각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테크놀로지는 말처럼 은유이다. 

테크놀로지가 이용자와 그 이용자의 환경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는 한에 있어서 그

테크놀로지는 말과 마찬가지로 이용자의 변화를 포함한다. 

 

  뇌의 좌반구는 사물이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시각적 공간에 정보를 구조적으로 배치한다. 

이 공간은 경계가 고정된 채 서로 독립된 중심들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청각적 공간 구조,

즉 과정이 동시에 관련되어 있는 우측뇌의 기능은 아무 데도 경계가 없이 모든 곳에 중심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반구를 시각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태트래드는 기계적 시대의 잠재적 효과가

그라운드를 잠재의식적으로 모호하게 하는 경향이 있을 때, 우리가 피겨와 그라운드 모두를

볼 수 있도록 돕는다.  테트래드의 중요한 유용성은 테트래드가 분석가로 하여금 인공물이나

아이디어의 수명이 있는 동안 그 인공물이나 아이디어의 시각적인 것과 청각적인 것의 이중적

활동을 지각할 수 있도록 하면서, 숨겨진 그라운드를 가시화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유용성을

지닌 테트래드는 동시성의 힘에 의해 과거, 현재, 미래를 하나로 압축시킨다는 점에서 신화의

기능을 수행한다.  테트래드는 부할과 변형의 내파적 순환의 영역에서 나선형 반복과 재연,

투입과 피드백, 교착과 인터페이스가 발생하는 활동장소로서 청각적 공간과 시각적 공간

사이의 경계선을 설명한다.  테트래드는 시간의 형태적 특성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인공물은

항상 이용자의 정신적 상태의 산물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2. 바퀴와 축

  촉감은 변화와 과정이 일어나는 공명 간격 혹은 변경이고, 또한 테크놀로지의 효과에 대한

연구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상호작용 영역은 시각적 공간과 청각적 공간 사이의

관계의 토대이다.  원형은 공개된 면과 숨겨진 면 양쪽 모두를 가지고 있는데 테트래드는 양쪽

모두를 드러낸다.  어떤 원형적 상태이든 그 상태의 숨겨진 효과는 우리의 행동을 확실히 형성

하는 국면이다.  많은 학문의 연구 분야는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공간이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개념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잘못 이해함으로써 방해를 받아왔다.  이러한 혼란은 우측 뇌의

인식보다 좌측 뇌의 인식을 강조하는 서양 교육의 모든 비체계성을 반영하는데, 테트래드적

분석은 이러한 불균형을 시정한다. 

  상호작용 영역이라는 아이디어 혹은 공명 간격이라는 아이디어는 촉감이라는 요소를 포함한다. 

촉감은 변화와 과정이 발생하는 공명 간격 혹은 변경으로서, 구조를 연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바퀴와 축 사이 간격의 행동처럼 놀이라는 아이디어도 포함한다.  테트래드를

이용하여 우리는 다음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인공물 형태 혹은 테크놀로지가 새로운 진부한

표현으로서의 호스트문화에 널리 퍼지면서, 그 과정에서, 그것들이 오래된 진부한 표현이나

항상성을 문화적 고물가게로 바꾸어 놓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오래된 진부한 표현은 새로운

그라운드와 새로운 인식을 알리는 고유한 원칙으로 부활되고, 또한 그 새로운 그라운드와 관련하여

원형적이고 과거를 동경하는 노스탤지어 피겨로 부활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볼 때 테트래드는

개혁과 새로운 상황의 역동성을 나타내고 예측하는 도구이다.  맥루한의 테트래드 모형을 구성하는

부활 단계와 역전 단계는 모두 변형을 포함하고 있다.  테트래드 형태로 표면화하는 지배적 과정은

테크놀로지의 잠재의식적이고, 전에는 접근할 수 없었던 국면 중 특정 국면을 드러내려고 의도된

것이다.  인공물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숨겨진 영향을 이러한 관찰이 드러내는 정도만큼 그 관찰은

생물학의 세계와 테크놀로지의 세계를 연결하고자 노력하는 기술이다.  인공물과 개인적 혹은

사회적 반응 사이에는 바퀴와 축 사이와 같은 놀이의 간격이 있다.  이 간격은 상호작용과 변형의

피겨-그라운드 형태를 구성한다.  하나의 피겨는 특별한 정신적 주의의 영역이다.  효과의 법칙은

그라운드 혹은 전체적 상황과 관련된 피겨에 집중되어 있기보다 오히려 피겨와 그리고 그 피겨가

다른 피겨들과의 만남에 이상스럽게도 집중되어 있다.  피겨와 그라운드 사이에 사실은 아무

관계가 없고 단지 상호작용 영역만 존재한다.  서양적 사고에 있어서 피겨나 아이디어 혹은 개념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뇌 좌반구적 편향은 심리학의 특징일 뿐만 아니라 철학의 특징이고 과학의

특징이다.  반면에 인류학은 그라운드나 혹은 전체 문화 그 자체를 관찰 대상 피겨로 사용함으로써

시작되었다. 

하나의 환경으로서, 즉시적 정보는 모든 다른 잠재의식적 효과를 의식 영역으로 밀어 올리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전자적 환경의 효과는 사람들을 내부로 향하게 하여 외부적 탐색 대신 내부적

여행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촉감적 공간은 청각적 공간인 동시에 관계의 공간이듯이, 공명 간격의

공간이다.  실제로 피겨와 그라운드는 그들 사이의 공명 간격에 의해 규정된, 초상적 혹은 촉각적

관계를 형성한다.  즉 피겨-그라운드 관계에는 연속성이나 혹은 연력이 없고, 대신에 변형시키는

일종의 상호작용 영역이 존재한다.  그래서 테트래드의 은유는 불연속적이지만 그러나 서로에게

비례하는 두 가지 노선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은유의 기본적 양식이 공명과 간격 즉 청각-촉각

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언어는 항상 경험과 표현으로 그 경험을 다시하기 사이에 놀이, 혹은 피겨-

그라운드 관계를 유지한다.  구텐베르크에 의한 인쇄물과 함께, 알파벳의 시각적 강조는 서양에 있어

문법과, 수사학, 모든 과학과 함께 예술에 뇌의 좌반구적 특성(시각적)을 주입시켰다.  이러한 형세가

다시 역전되기 시작하는 것은 오직 인간 세계의 청각 공간으로, 우반구적인 다수 감각적 인식 형태로

되돌아오면서부터이다. 

 

 3. 시각 공간과 청각 공간

  시각적 공간은 페니키아 사람들이 발명했고 희랍인들이 확대시킨 표음문자의 균일하고, 연속적이고,

단편적인 특성으로 인한 하나의 부작용이다.  어떤 신경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 위계적 추론이란 뇌의

좌반구가 감각적으로 선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5세기의 주요한 테크놀로지였던 화폐와 나침반은

시각적 공간의 원형이 청각적 공간으로, 즉 만질 수 있는 것에서 만질 수 없는 것으로, 하드웨어의

지배에서 소프트웨어의 지배로 피겨-그라운드가 초기에 변형된 것을 예증한다.  현대 사회에서 시각적

공간 테크놀로지는 청각적 공간 테크놀로지로 현재 빠르게 변하고 있는 중이다. 

어떤 문화에서든 만약 하나의 감각만이 에너지가 집중적으로 공급되고 모든 다른 감각보다 더 많은

자극을 받는다면 항상 문제가 발생한다.  현대의 서양인에게 그 문제란 시각적 문제이다.  표음문자는

우리에게 관점을 제공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물체에서 분리시키는 환상을 만든다.  모든 것은 순서대로

 -적장한 장소에, 적당한 시간에, 선형관계 속에-존재한다는 생각을 부추기는 것이 인간 눈의 생리적

기능이다.  눈은 사물의 존재 유무에 대한 배타적인 추론을 장려한다.  반면에 뇌의 우반구가 관련되는

동시적 이해의 세계에서는 연대기적 사고가 아닌, 우측 뇌의 이미지 패턴에 관한 한 모든 사건은 동일한

시간이라는 특성을 지닌다. 

15세기의 테크놀로지인 화폐를 테트래드에 대입시켜 보면 기존의 그라운드였던 물물교환은 새로운

피겨인 화폐가 등장함에 따라 초기에는 잠시 서로 보조를 맞추다가 그 다음에는 화폐가 뒤를 이어

받아서 물물교환을 능가하게 된다.  물물교환이 크게 쇠퇴하게 되면 재력을 과시하기 위한 낭비가

가장 쉽게 나타나는데, 이러한 부의 과시는 상거래 분위기의 변화를 촉발시킨다.  그래서 부의

이미지가 돈을 갚을 실제 능력보다 더 중요시 되는 곳에서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  즉 지폐와 법정

불환 수표의 본질인 신용으로 바뀌는 것이다.  금속 화폐는 하드웨어의 원형과 같은 종류로 간주

될 수 있다.  화폐는 인간이 자신의 육체를 외면화하는 것 가운데 하나인 인간 욕구의 외적 표현이다. 

나침반은 또 다른 외면화이다. 즉 이 지구상에서 인간의 방향 감각의 외적 표현이다.  최초의 나침반은

회로의 원시적 형태로 간주될 수 있다.  그것은 사용자로 하여금 세상을 구상공간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나침반의 테트래드는 인간의 환경이 인간이 발명하는 인공물에 의해서 변할 뿐만 아니라

인간도 역시 자신이 생소한 인공물을 접할 때마다 자신의 세계를 재평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공물은 인간이 앞을 보도록 만들뿐만 아니라 뒤를 보도록 만든다. 

테트래드는 통합적이다.  즉 서로 접촉하는 모든 감각 과정을 보는 것이다.  그것은 통합적이므로

청각과 같은 다차원적 특성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청각적 성질과 시각적 성질은 서로가 볼 수 없는

것을 서로에게 보여준다. 

 

  4. 뇌의 좌․우반구와 동․서양의 만남

  왼쪽 뇌의 배열 기능은 양적이다.  그 기능은 중요한 위계질서 범위 내에서의 읽기, 쓰기,

명명하기이다.  오른쪽 뇌는 질적인 것의 영역이고, 공간적-촉각적인 것, 음악적인 것 그리고

청각적인 것이 솟아 나오는 원천이다.  이 좌우반구의 기능이 정말로 균형이 잡혀 있을  때

그 결과는 “포괄적인 의식”이다.  진정한 의식은 항상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성격을 지녀왔다. 

소쉬르는 지리적으로 한정된 영역에 사는 사람들의 대집단이 한 언어를 어떻게 말하는가에

의해서만 그 언어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느끼는 대로 말했고 동료의 압력에 의해

국어의 사용을 서로 강화시켰다.  그러나 그 언어란 무정하게도 시간이 흐르는 동안 새로운

내포적 의미가 나타남에 따라 변했다.  따라서 그 언어는 사용을 통해 본질적으로 언어 자체를

형성하는 성향, 즉 공시적 구조를 가졌다.  그리고 동시에 그 언어는 또한 시간을 통한 움직임,

즉 그 언어의 통시적 성격에 반응했다. ⇒이 부분에서 마샬 맥루한이 좌뇌와 우뇌의 균형적인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형태를 말(언어)로 상정하는 것에 대한 근거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나의 종으로서 인간의 미래의 발전에 대한 비결은 포괄적 의식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지각과 분석의 두 가지 양식 사이의 상호작용 영역에서 우리 자신이 중심이 되도록 우리

자신을 가르치는데 있다.

 

 5. 플라톤과 천사론

  동양인은 모두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조건에 즉각적으로 다시 순응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러한 능력은 삶을 우선순위가 없는 다(多)-감각적 균형으로 보는 것과 관계가 있다.  경험의

그라운드는 끊임없이 조율된다.  모두가 그라운드다. 피겨는 없다.-청각적 양식이다.  반면에

서양인은 고정된 관점에 열중한다.  이 관점에서는 그라운드가 위계질서에 대한 욕망을 일으

키면서 파편화되어 있다. -모두가 피겨다.  그라운드는 없다.  로봇티즘은 많은 영역에서 동시에

똑같이 감정이입적인 능력이다.  천사론은 그라운드가 없이 고정된 관점에 묶여 있다.

플라톤의 초기 노력은 희랍 부족주의의 동양적 편향성을 깨뜨리는 데 집중 되었다.  그는 우측

뇌 인식보다 좌측 뇌 인식 혹은 천사론을 강조했다. 플라톤은 뇌 우반구적 성향을 지닌 모방적이고

공명적인 인물들의 침투를 일종의 “정식적 독”, 혹은 개인주의화한 폴리스라는 목적을 가진 그의

뇌 좌반구적 성격을 띤 아카데미에 대한 위협으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우반구의 감정 이입은

좌반구의 감정 초월과 양립할 수 없다.

알파벳은 서비스와 경험의 선형적이고 시각적인 환경을 창조했다.  이런 환경은 좌측, 혹은

선형적 반구의 우월 혹은 지배에 기여했다.  유클리드의 분석적 기하학의 공간은 뇌 좌반구의

개념이다.  한편 전체론적인 감각 기관의 다차원적 공간은 뇌 우반구의 지각 대상이다.  표음

문자가 사용되기 시작하는 곳에서는, 시각적 기능이 추상적인 유클리드의 공간을 지각할 수

있게 만들면서, 다른 감각으로부터 분리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다른 감각으로부터

극단적인 전위 혹은 분리를 의미한다.  표음문자는 다른 언어를 표음문자로 번역하고, 또한

정보 흐름의 침투성이 강한 모체로서 행동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문자는 또한 우반구

문화를 침입하는 힘도 가지고 있다.  이 두 힘은 서로 어울린다.  통례적으로, 부족적인

우반구 문화는 전체론적이고 완전하며 문자 이전의 다른 문화에 대한 침투에 저항적이다. 

그러나 좌반구적 표음문자의 전문화 경향이 있는 특성을 이러한 우반구적 사회를 침입하고

점거하는 유일한 도구적 수단을 오랫동안 제공했다.  우반구 문화는 전자 정보 시대의

동시성과 커다란 관계가 있다.  우반구 문화는 상태와 관계를 연결하기보다 오히려 간격을

조정하거나 혹은 재배열하기 위해 자연히 노력한다.  그리고 우반구 문화는 진술 대신

“암시의 가치”를 강조한다. 

우리는 바퀴와 축 사이의 간격을 접촉뿐만 아니라 노이의 한 예로서 이용하는 것에 오랫동안

익숙해져 왔다.  놀이가 없이는, 그와 같은 피겨-그라운드 간격이 없이는, 바퀴도 존재하지

않거나 축도 존재하지 않는다.  바퀴와 축 모두를 규정하는 바퀴와 축 사이의 공간은 “행동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 공간은 청각적이고 촉각적이다. 

 

  6. 숨겨진 효과

  언어, 법, 아이디어와 가설, 도구, 의복과 컴퓨터 등 인간이 만든 모든 인공물은 인간 육체의

연장이다.  테트래드는 어떤 인공물이든 그 인공물의 잠재의식적 효과를 드러내기 위해 필요하다. 

모든 인공물은 하나의 원형이다.  그리고 오래된 인공물과 새 인공물 사이에서 진행하는 문화적

재결합은 모든 발명의 수단이고, 또한 발명의 광범위한 후속적 사용을 추진한다.   이것을

개혁이라고 부른다. 

각 매체 혹은 테크노로지에 의해서 활동하게 되는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그라운드는 좌우반구

및 인간 감수성과 평형 상태에 있으면서 그 좌우반구와 인간 감수성의 균형을 항상 재조정한다. 

읽고 쓸 줄 아는 서양인은 분리된 피겨로서의 이미지의 선형적 움직임 혹인 연속적 운송이라는

관점에서 매체의 연구에 접근한다.  한편 우반구적 접근은 대신 환경적 매체 효과의 그라운드에

의해서 이뤄진다.  시각적 공간은 객관적인 관찰자를 강조하는데, 객관적 관찰자란 사실상 경험의

테두리 바깥에 위치한다.  따라서 과학적 방법이라는 아이디어가 탄생한다.  시각적 공간이 지배하기

전, 형식적 원인은 다양한 유관원인 가운데 일부분이었다.  그것은 새로 생기는 모든 사물은

사용자들의 그라운드에 영향을 미치는 부작용의 모든 패턴을 구조적으로 포함했다.  최초의 문제는

어떤 것을 창조하는 것이 가능한가 안한가가 아니라, 그것이 인간적인 관점에서 바람직한가 안

한가였다.  원형 그 자체는 그라운드가 없는 하나의 피겨다.  모든 서양의 과학적 커뮤니케이션

모형은 모두 좌반구의 그라운드가 없는 피겨양식이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의 우반구 모형은

전자 시대에 사용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것은 전자 매체 자체가 패턴과 운영에 있어서

우반구적이기 때문이다.


II. 비디오 관련 테크놀로지의 세계적 영향


 7. 글로벌 로봇티즘:만족효과

  로봇티즘, 혹은 우반구적 사고는 동시에 많은 장소에 의식적으로 존재하는 능력이다.  미래의

커뮤니케이션 매체는 육체에서 분리될 수 있고 또한 완전히 집단적으로 될 수 있는 인간의 신경

시스템의 연장을 강조할 것이다.  비디오 관련 테크놀로지의 궁극적인 상호작용 특성은 우반구가

지배하는 21세기 사회적 패턴을 만들 것이다.  그래서 사용자들은 동시에 생산자와 소비자가 될 것이다. 

현대의 모든 매체는 재구성이다.  인간의 신체 수행 능력 이상을 실행하는 신체 기관이 연장이

될 것이다.  미디어는 서로 협력하여 행동함으로써 인간의 의식을 변화시킬 것이다.  비디오 관련

테크놀로지의 특성은 미국 경제를 제조에서 마케팅 사회로 전환시킬 것이다.  케이블은 양 방향

전송이라는 특징을 통해 중심과 변두리의 개념을 해체하고, 수많은 커뮤니케이션 장치를 통해

수집된 잠재 고객들의 구매 요구는 제조업에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비디오 관련 테크놀로지,

컴퓨터․데이터베이스가 갖는 동시성의 힘은 어떤 비즈니스와 공공 서비스를 문자 통합시킬 것이다. 

이것이 로봇티즘의 본질이다. 

 

 8. 글로벌 로봇티즘:불만족효과

  로봇티즘은 또한 탈집중화시키고 있다.  알파벳과 문자의 발명은, 이동하지 않고 정주하는 식으로,

권력과 자원을 집중화시키는 고대의 경향을 보완하는 데 이바지했었다.  전자적 인간은 상호연관에

토대한 사회적 규칙의 속박뿐만 아니라 지배적 중심지라는 개념과의 공감을 상실한다.  정보 시대는

우리는 이미지 속에서 세계를 재구성한다.  미디어에 의한 인간의 확장은 지구의 인간화이다. 

인간이 자신의 중추 신경 시스템을 전자 회로로 변형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인간은 바야흐로 자신의

의식을 컴퓨터 속으로 확장하려 하고 있다.  우리는 3000년 동안 계속되었던 외부로의 폭발의 시대가

끝나고 내부로의 폭발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컴퓨터 은행은 인간의 이미지를 해체시키는데,

대부분의 데이터 은행들이 결합하여 서로 주고받는 하나의 전체가 될 때 모든 서양 문화는 뒤집히게

될 것이다.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통찰력으로 드러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빛의 속도로 살도록 만들

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연 법칙과 물리적 법칙의 상쇄적 균형이 없이는, 새로운 비디오 관련

미디어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내부적으로 파괴하도록 만들 것이다.  인간은 전자적 지각이 장소와

관계가 없기 때문에 개인적 정체감을 상실한다.  컴퓨터는 우리를 하나의 세계의식을 향해 움직이게

하는 비디오 관련 테크놀로지 혼성물의 최초의 구성요소이다.  컴퓨터가 한계에 도달하면,

그 컴퓨터의 산물은 동시적 패턴 인식으로 되돌아가고 모든 연산에서 기계적 과정을 쇠퇴하게 하거나

회피한다.  인공위성은 인간을 지구 표면에서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해방시킬 것이다. 

텔레비전은 그라운드가 없는 피겨이다.  인공위성환경의 특성은 유일한 중심이 없고 가장자리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심들” 도처에 있다.  인공위성 환경이 제자리를 잡을 때, 소프트웨어는 좌반구에서

우반구로, 시각적인 것에서 청각적인 것으로 바뀔 것이다.  세계적 일들에서, 탈집중화 현상이 다양성과

파편화를 눈에 띄도록 만들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송신 속도는 인간의 해독 능력을 방해할 것이다. 

그 결과, 직업적 전문성은 기업의 대규모 역할 놀이에 굴복할 것이다. 

시간의 틀 속에서 연속적인 고속도로와 철도와는 달리, 전화는 특별한 형태의 즉각적인 접촉을 창조한다. 

전화는 공간을 즉시 무(無)로 변화시킨다.  전화는 인간의 육체를 퇴화시키고, 텔레파시에 대한 우리

인간의 예로부터의 우반구적 친근성을 되가져온다. 

 

  9. 로봇의 천사:유클리드 공간에서 아인슈타인 공간까지

  알파벳과 함께 시작된 유클리드식의 직선이나 평면은 우리의 좌반구를 점거하고 있다.  이러한

유클리드적 세계 혹인 기계적 세계는 현대 서양인에게 익숙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여져서 그 결과

현대 서양인은 자신의 집 바깥의 모든 것을 자연으로 간주한다.  청각적인 공간은 중심이 없는

것으로, 그것은 경계가 없는 임의적 공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청각적이라는 것은 되돌아온

소리의 메아리를 의미한다.  겉으로 보기에 무질서해 보이는 청각적 공간의 “중심”은 어디에나 있다. 

유클리드적 사고는 사람이 궁극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작고 다루기 쉬운 환경을 창조하기 위해

물질세계의 모든 것에서 물러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래서 유클리드적 사고는 기계적인 것은

강조하고 하드웨어를 창조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설명하는 시각적

공간은 선형성, 연결성, 동질성, 정지성의 기본적 특성을 가진다.  전기는 청각 세계의 모든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동시적이고 또한 동시에 어디에나 존재한다.  360도의 특성입니다. 

전화의 경우 수신자가 송신자에게서 듣는 메아리 효과는 전환점 혹은 교차 대구법의 소리 상징이다. 


  III. 미국과 캐나다:공명 간격으로서의 국경


 10. 에필로그:반대 환경으로서의 캐나다

  우리는 비디오 관련 테크놀로지가, 좌반구의 과부하를 이용하여 좌우반구 사이에 있었던 이전의

불균형을 파괴하면서, 우리의 내적 감수성을 어떻게 내파 할 것인지를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이 테크놀로지는 우리의 내적 평화를 침입할 것이므로 우리는 숨을 장소가 필요하게 되었다. 

미국인이 이러한 피난처를 찾는다면 아마 캐나다는 그들에게 거대한 정신적 테마 공원이 될 수 있다. 

캐나다 사람들은 세계 도처의 테크놀로지를 실험하면서도 좀처럼 어떤 기술적 전략을 광범위하게

채택하지는 않는다.  미국이 세계적 환경이 되었기 때문에, 캐나다는 세계의 많은 소국들이 미국을

더 받아들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 반대 환경이 되었다.  반대환경은 어떤 환경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불가결이다.  캐나다는 미국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지만 그 안에 또 다른

심리적 경계선을 갖는데 그 중 하나가 미개척지에 대한 생각이다.  전자적 정보는 또 다른 숨겨진

국경선 혹은 개척지를 형성하면서, 현재 전 지구를 에워싸고 있다.  이 국경선 혹은 개척지의 활동은

현재까지 많은 국가가 그들의 이전의 정체성을 잃게 했다.  국경선이란 반복과 재연을 증진시키는

영역, 투입과 피드백 모두의 영역, 상호 얽힘과 상호 접촉 모두의 영역, “두 개의 끝이 한 곳에서

만나는” 영역, 그리고 재생과 변형의 영역이다. 

캐나다에는 확실하게 정의된 국가적 정체성이나 개인적 정체성이 없는데 이것이 가지고 있는 이점은

다음과 같은 일반적 상태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강한 정체성에 의해서 오랫동안 축복을

받았던 나라들이 오늘날 전자 시대에는 그들의 정체성 이미지가 미리 형성되어 있고 침투 당하기 쉽기

때문에 지금은 당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세의 캐나다인들은 그와 같은 뚜렷한 특성이 없이

생활하는 법을 배웠다.  그들은 강대국들이 느끼지 못하는 안전과 자신감을 경험하기 시작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저자세적 정체성과 다수의 국경선이라는 캐니다의 조건이 전자적 생활의 이상적

패턴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을 읽어가면서 책의 뒷면에서 보았던 ~이런 의미에서 「지구촌」은 21세기의 미디어와 인류의

삶에 일어날 수 있는 변화를 미리 알려주는 예언서라고 할 수 있다. 부분에 다시 한 번 공감하게 되었다. 

알파벳의 전파로 인해 서양문명은 표음문자의 특징인 뇌의 좌반구적인 특성에 지배당해왔다.  그래서

피겨로 존재하는 인공물은 인정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우반구적인 세계에 대해 플라톤 이후로

우반구적인 특성을 좌반구적인 특성으로 눌러왔다.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 이후 이러한 뇌 좌반구적

특성을 서양문명은 성경을 비롯한 많은 문자 정보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전파가 되어 왔다.  그래서

인쇄 문명에 근간을 둔 문학, 예술, 기타의 모든 장르들은 시간과 선형성의 구조에 한정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전화를 시작으로 하여 TV, 각종 미디어의 등장은 인류라는 그라운드 앞에 새로운 피겨로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과거 뇌 좌반구에 치중했던 시각중심의 문화는 통시적, 공감각적인 뇌

우반구적 문화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  뇌 우반구적 문화는 과거와 다르게 시각, 촉각, 청각,

후각을 동시에 아우르거나, 촉각과 청각의 특성을 시각에 비해 강조함으로써 사람에게 장소적,

시간적 경계를 넘어선 경험을 제공한다.  하지만 한 가지 감각에 치중하는 것은 위험하다.  뇌의 좌,

우반구적 특성을 고루 교류하고 이러한 특징을 매체에도 적용시키는 것이 부작용을 줄이는 길이

될 것이다.  뇌 우반구적 특성은 우리를 과거의 구비문학 시대로 되돌리고 있다.  그래서 서사에

의한 기록이 아닌 언어를 통한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가 반영되는 새로운 언어의 세계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하이퍼텍스트가 바로 그러한 세계를 표현하는 새로운 언어가 될 것이다.  과거 뇌

좌반구적 개념에 의해 분리되고 선형적으로 배열되었던 각개의 인공물들은 하이퍼텍스트를 통해

연결되어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뇌의 좌,우반구가 균형을 이룬 통시적이고 공감각적인

세계로 이끌어나갈 것이다.  그래서 하이퍼텍스트는 마샬 맥루한이 언어를 뇌의 좌,우반구의 균형

있는 조화로 보았듯이 21세기의 새로운 언어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결국 과거의 선형적인 서사의

형태들을 자유로운 인간의 사고에 가까운 형태로 변형되어 시각뿐만이 아닌 청각, 촉각, 나아가

그것들이 합쳐진 자유로운 공감각의 세계를 인간에게 제공하여 또 다른 형태의 인공물이 나올 수

있는 그라운드가 될 수 있다.  과거 알파벳이라는 피겨는 과거의 구비의 시대(그라운드)를 기록

문학이라는 서사의 선형적인 시대(그라운드)로 변형을 가져왔고, 이제 하이퍼텍스트가 서사의

대(그라운드)의 새로운 피겨가 되었다.  그래서 그 속에서 생겨난 하이퍼텍스트는 돌고 도는

순환관계와 같이 바퀴와 축으로 서로의 긴장을 통해 공명하며 인류 문명을 다시 새로운 과거의

구비시대보다 훨씬 더 많은 상상력과 가능성의 시대로 이끌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