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금강산

구룡폭포를 보다.

묭롶 2008. 11. 12. 11:55

  2008년 3월 21일 노동조합 수련회로 금강산을 갔다.  20일 금요일 밤 10시에 출발해서 21일 돌아오는

무박2일의 여행... 버스 한 대(27명 정도)를 인솔하는 인솔자 자격으로 가는 행사라서 책임감에 마음이

무거웠다.  북한을 통관(DMZ)하는 절차와 주의사항을 여러차례 강조해야했고, DMZ를 통과하기전 휴대폰을

차에 수거해서 보관했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핸드폰을 할 수도 없어서 돌발상황에 대한 걱정이 컸다.

 

  20일 밤 10시에 출발해서 KBS에서 방영했던 다큐멘타리 '금강산'을 시청(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금강산'이 꼭 카멜레온 같았다.)했다.  금강산은 계절별로 아름다움과 정취가 각각 달라 봄에는 온갖 꽃이

만발하여 화려하고 산수가 맑기 때문에 금강산, 여름에는 온 산에 녹음이 물들어 봉래산(蓬萊山), 가을에는

단풍이 들어 풍악산(楓嶽山), 겨울에는 기암괴석의 산체가 뼈처럼 드러나므로 개골산(皆骨山)이라 한다.

  금강산은 봄이 늦게 오기 때문에(5월 경) 3월에 온 우리는 금강산을 보지 못하고 사실은 개골산에 다녀온

것이다. 

 

  남북한의 출입국 사무소 역할을 하는 DMZ에 도착하는 새벽 5시 경까지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계속

일행에게 시시때때로 북한에서는 군인들(물론 주체사상관련 비석이나 글씨에도)에게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차 안에서 이동시 카메라로 찍는 행동은 안되며, 길에 침 또는 껌을 뱉어서도 안된다고 만약 그렇게 하면

우리 모두 북한에 억류될 수도 있다고 잔소리를 해댔다.  ㅎㅎㅎ... 북한에 남으면 내가 좋아하는 인스턴트

(피자, 햄버거 등)는 모두 어쩐단 말인가?

 

  장시간의 버스 이동으로 인해 비몽사몽인 일행들을 이끌고 우린 드디어 북한 땅에 들어섰다.  DMZ를

통과하고는 우리가 타고왔던 버스가 아닌 현대아산측의 버스를 타고 금강산까지 이동을 했는데, 이동하는

중간 중간에 어린 군인들이 눈에 띄었다.  3월이긴 하지만 아직 눈이 내리고 추운 온정리(금강산이 있는

북한상 행정구역)에 못 먹어서 키도 작고 바싹 마른데다가 얼굴을 찬바람에 터서 볼은 빨갛고 손도 빨갛게

얼어있는 내 동포들이 눈빛만은 형형하게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는 장면이 내 가슴에 화인처럼 아프게

찍혔다. 

 

  금강산이 있는 온정리는 현대아산에서 금강산관광을 위해 상업적으로 개발하여 관광객에게 공개가 되는

지역과 일반 북한 주민들이 사는 공간이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리잡고 있었다.  개울 너머로 자전거를

(북한에서 자전거가 있는 사람은 엄청난 부유층이다.) 타고 가는 사람도 간간이 보이고 단층으로 지어진

집들도 보이지만 6.25 전쟁 당시 사진으로만 보았던 집들처럼 슬레이트보다도 못한 재질로 지어진 듯 하다.

3.8선을 경계로 하여 남쪽에서는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나는데 같은 동포가 페인트칠은 고사하고 벽돌로

지은 건물 하나 없는 이 황량한 땅에서 손,발 얼어 동상걸리고 굶주린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무박이일인 일정탓에 금강산에서의 일정은 만물상 코스와 구룡연 코스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나는

다수의 일행들이 향하는 구룡연으로 갔다.  원래 구룡연 폭포를 보기 위한 등정은 왕복 1시간 40분 정도가

소요되지만 빨리 내려와서 다음 행사를 준비해야 하는 나는 1시간 정도밖에 여유가 없어서 구룡연을

다녀올 것인지 고민했지만 1시간 안에 구룡연을 왕복하기로 맘 먹고 뛰기 시작했다. 

구룡연폭포를 향하는 길 중간 중간마다 경관이 수려한 곳에는 어김없이 김일성을 향한 찬양의 글이

새겨져 있었고 그 앞에 설명을 위한 북한 안내원들이 있었는데, 마구 뛰어올라가는 나를 보며 그들은

"동무! 와 기카게 가는 기요?"라고 물었고 난 "구룡연 1시간 안에 주파해야 되요"라고 크게 대답하고는

미친듯이 올라갔다.  금강산까지 왔는데 구룡연 폭포(선녀와 나뭇군의 전설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선녀가 내려와서 목욕을 했다고 한다)를 못보면 안되지 싶어서 두껍게 입은 옷을 다 벗어서

손에 들고 폭포로 가는 길에 비취색으로 고여있는 아홉개의 소를 눈에 담고서 폭포에 도착했다.

 

 

 

   금강산 산세가 정말 험하고 구룡연 폭포로 가는 길도 길이 좁고 얼어있어서 아차 잘못하면 바로 옆의 계곡으로

잠수할 것 같았다.

   물이 박태환이 선전하는 해양 심층수보다도 더 깨끗해 보였다.  (너무 맑은 비취빛에 이끼 한점이 없고

산천어들이 지천으로 헤엄치고 있었다.) 

   구룡폭포에서 시작된 폭포수가 온정리 마을까지 흐르고 온정리에서는 온천까지 나온다고 하니, 이 맑은 물에

몸을 담그면 심신이 다 정화될 것만 같다.  물론 시간 관계상 온천욕을 할 수는 없었지만 풍경만으로도 머릿속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아홉개의 '소' 중의 한 곳이다.  과연 선녀가 와서 목욕을 하고 갈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여름이면 풍덩

몸을 담그고 있으면 신선놀음이겠다.)

  경치가 장관인 곳마다 빨간 글씨로 바위에 파서 남긴 글들이 내 개인적으로는 눈살을 찡그리게 했다.  기껏해야 100년 남짓 사는 한 인간을 우상화하기 위해 억겁의 시간을 살아온 자연에 붉은 글씨를 새긴다는 게 흡사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뛰노는 손오공과 같지 않은가!   

  폭포에 가까워질수록 길은 좁아지고 얼어있었으며, 계곡에도 눈과 얼음이 남아있었다.

   저 첩첩의 산세가 흔들리지 않는 민족의 혼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숙연해졌다.  뉘라서 금강산의

호연지기에 대적한단 말인가!

 

 

   물 빛이 고려청자의 빛을 닮아 있다.  비취 옥을 갈아 물에 풀어 놓은 듯한 빛깔...보고 있으면 신라시대

반가사유상의 오묘한 미소를 보는 듯 마음이 평안해졌다.  (참고로 물 위에 떠 있는 하얀 것은 스티로폴이

아닌 얼음조각이다)

 

   구룡연 폭포다.  곧게 뻗어 떨어지는 물줄기...가슴 속까지 뻥 뚫리는 것 같다.  저렇게 오연하게 수천년 이상을

흘렀을 것이다.  폭포를 보며 현실에 비겁하게 핑계대지 않고 저렇게 자신있게 열심히 살자고 다짐해 본다.

  내가 생각해도 난 정말 징하다.  북한 안내원들이 전부 1시간 안에 못간다고 말했지만 난 머리가 이렇게

산발이 될 정도로(몸에서 김이 났다... 안경에 뿌옇게 김이 서릴 정도로) 뛰어 올라온 보람(겉옷 다 벗어

제끼고)이 있다.  이런 날 보고 일행들은 북한 안내원들이 나를 북파 공작원으로 착각하겠다며 한 동안

볼 때마다 '북파공작원'이라고 놀려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