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스티븐 킹[유혹하는 글쓰기]

글쓰기란 무엇인가?

묭롶 2008. 11. 10. 11:51

  작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어느순간 내 머릿속을 맴도는

이 의문이 독서를 하는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무엇이 이 작가에게 이 작품을 쓰게 했을까란

의문으로 자리잡았다. 

  황석영선생님의 '개밥바리기별'을 읽으며 선생님의 젊은날 글쓰기의 시작을 짐작

해보기도 했고,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과 신경숙의 '외딴방',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보며 글쓰기가 작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풀어내기 위한 기제로 작용하지 않았나를

짐작하게 되었다.  신경숙의 글선생님이 그녀에게 했다는 '너무 한꺼번에 많이 길어내지

말아라... 그러면 네가 아프다.'라는 충고에 비춰보면 작가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모습을 녹여내고 또 그 과정을 통해 일정부분 치유받기도 하는 것 같다.

아마 내가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그 시작은 나의 상처에서부터일 것이다. 

 

  스티븐 킹은 글쓰기에 대한 나의 생각을 뒤집었다.  그는 뮤즈의 신이 자신을 방문하는

일은 정말 드문일이라며 뮤즈의 신(갑작스런 글쓰기의 영감)을 기다리기보다는 글쓰기를

위한 자신만의 연장통(문법, 어휘, 낱말 등)을 채워나가며 끊임없이 규칙적으로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전통적으로 글쓰기는 영감의 구체화라는 생각을 부정하는 것이다.

  방충망을 정비하러 가면서 그 작업에 필요한 장비만이 아닌 무겁고 커다란 연장통을

들고 가는 이모부가 스티븐 킹에게 준 가르침은 삶의 어떠한 변수(혹 그것이 글쓰기에도

해당되겠지만)에 대처하기 위해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했다.

  실제로 그의 글쓰기는 초등학교부터 시작되어 각종 잡지와 문고에 투고한 원고의 거절쪽지가

커다란 대못 하나를 다 채운 후에도 지속되었고, 그가 생업을 위해 학교교사 생활을 하던 중에도

그리고 엄청난 교통사고로 제대로 앉을 수조차 없을 때에도 계속되었다.  그가 알콜중독과

마약에 빠져 제정신이 아닌 중에도 글을 썼다고 하니... 그가 성공하지 못했다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하지만 그의 성공에는 자신의 글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해줄 조언자(킹의

아내 태비)와 이를 퇴고에 반영하려는 그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랜 세월을

글쓰기에 투자한다고 해서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므로(쓰레기 같은 글을 쓰면서도 자신의

글에 스스로 감탄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가?)...

 

  그는 평상시 많은 독서를 통해 자신의 글쓰기를 위한 자양분을 튼튼하게 쌓고 또 규칙적인

글쓰기를 위한 자신만의 장소를 마련하라고 말한다.  (실제로 스티븐 킹은 세탁소 일을 하면서

더러운 세탁물을 빨며 시끄러운 기계방에서도 글을 썼다.)  그는 다른 작가들과는 다르게 플롯이나

구성에 주안점을 두지 않고 주인공들이 구현해가는 이야기에 치중했다.  실례로 영화로 제작되었던

'캐리'의 경우 처음 시작은 고등학교 시절 어느 학교에나 있음직한 '왕따'에 관한 기억에서 출발한다. 

'왕따'의 구체적인 모습을(전형적인) 떠올린 후 사건을 구상하고 그 사건 속에서 움직이는 인물의

행동을 예의주시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사건에 처한 인물의 상황만이 처음에는 존재할 뿐 구체적인

이야기는 글을 써나가는 중에 만들어지며 작가는 그들의 상황을 흥미롭게 관찰하는 관조자적 입장이다.

바로 이 점이 스티븐 킹의 작품들이 영화로 성공할 수 있었던 근거가 된다.  일반적으로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이 성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스티븐 킹의 경우는 이와 달랐다.  이미 구체적으로 이야기

속에 살아서 움직이는 영상을 글로 구체화한 작품을 다시 영화화한다는 건 텍스트로 존재하는 인물을

실제화하는 것보다는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영화로 제작하더라도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성의 훼손없이 이야기의 진행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다.(캐리, 미져리, 샤이닝, 옥수수밭의 아이들, 돌로레스 크레이븐, 1408 등)

  또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의 특징을 살펴보자.  그 인물들은 100%작가의 상상만으로 구축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다.  현실에 존재하는 전형에 기초한 인물이지만(어딘가에 있을법한-그래서 더 충격적인 인물)

그 안에 평범함을 넘어서서 사건을 이끌어나갈 힘을 가진 존재들이다.  킹은 전형성에 착안해서 인물을

구성하면서 그 인물들에게 부여된 특징으로 인해 이야기가 확대되고 지속될 수 있게 할지를 고민한 것

같다.  글쓰기에서 플롯이 갖는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에 얽매어 이야기가 갖는 상상력의

세계가 위축되서는 안될 것이다.  결국 스티븐 킹!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머릿속에 있는 상상력을

구현하기 위한 언어적 기술과 기법을 꾸준히 익혀 자신만의 세계를 좀 더  설득력있게 글로 작성하라!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