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

소설의 상상력과 영화의 상상력의 차이.

묭롶 2008. 11. 3. 23:09

   우린 그동안 소설로는 성공했지만 영화로 제작되서 실패한 작품들을 많이

봐왔다.  대표적으로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그리고

  전경린의 「내게 하루뿐인 꼭 특별한 날」일 것이다.  전경린의 작품을 영화

화한 영화 「밀애」를 살펴보면 김윤진의 호연이 안타까울 정도로 평론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던 문어체 대사와 영화 속의 주인공들이 이야기 속에 녹아들지

못하고 걷도는 듯 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특히 소설을 읽었던 독자들이라면

이를 영화화한 작품에 대한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오죽하면

소설을 영화화해서 성공한 작품은 '해리포터 시리즈' 하나일 것이라고 단언

하는 사람까지 생겼겠는가!

 

  이러한 문제점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건 소설과 영화가 갖는

내러티브(이야기) 구현방식의 차이에 있을 것이다.  소설의 경우 이야기는

책을 읽는 독자의 기존 가치관(지식, 환경 등)의 틀 속에서 구현되는 반면,

 영화의 경우 이미 완성된 캐릭터가 이야기를 진행하는 형식이다.  

  책을 먼저 읽었던 독자의 머릿 속에서 이미 구현된 인물들이 영화에서

구현된 인물들과 간극이 크게 벌어지게 되면 독자는 영화에 쉽게 호응할 수

없게 된다.  책이 베스트셀러였을 경우 영화로 성공할 가능성은 오히려 더

낮다고 봐야하는 것이다.  책이 백만부가 팔렸다면 그 책 속의 주인공은

백만명 이상이 존재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독서를 통해 구현되는 상상력은 그 한계점이 없으나 영화는 다르다. 

소설 속에서 많은 독자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킨 주인공이 영화에서만은

공감대 형성에 실패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2006년도 제2회 세계문학상 당선작인 『아내가 결혼했다』는 발간 후 얼마되지 않아 베스트셀러를 기록했고 문제성 있는 소재(일처다부)로 인한 논란이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나는 이 작품이 제작된다는 사실을 접하고서

'과연 사회통념을 넘어서는 여주인공의 캐릭터를 어떻게 설득력있게 구현

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  소설의 상상력은 그 근간에 허구라는 전제를 포석하는 것이기에 현실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도 소설이기에 독서의 과정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영화라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남자가 사랑을 고백하자 "~덕훈 씨만 사랑하게 될 것 같진 않아요.  ~나는 덕훈 씨를 독점할 생각이 없어요.  덕훈 씨도 나한테 그렇게 대해 줄 수 있나요?"라고 말하는 비범한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한단

말인가? 

  아마도 이 여성 캐릭터를 관객에게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원작의 모습대로 상업성을 구현할 수 있을지를

감독과 제작자는 고심했으리라 판단된다.  그 결과는 손예진의 캐스팅과 영화 홍보 마케팅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소설에서 이목구비는 뚜렷하지만 눈도 크지 않고 가슴도 크지 않는 눈에 확 뜨일 정도의 미인도 아니

었던 주인공이 영화에서는 사내에서 섹시함으로 뭇 남성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여인으로, 그리고 자신의

요구사항을 애교로 관철할 수 있는 캐릭터로 변형되었다.  또 영화의 홍보에서도 손예진의 섹시함과 사랑

스러움이 금기적인 소재(일처다부)와 적당히 버무려져서 사람들의(특히 남자들) 호기심을 자극했다.  단순히

남성관객들은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손예진에 더 큰 호기심을 느꼈을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특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결혼하기 위해 남편을 설득하는 모습에서 원작에서 인물의 주관이

일관성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기 보다는 손예진이 그동안 구축해 왔던 캐릭터성(남자들이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애교와 사랑스러움)에 의해 남편이 설득당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안타까웠다. 

  김주혁은 극중에서 "왠지 이 여자를 이해할 것만 같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 대사를 들으며 과연 손예진이 아닌 다른 여배우가 연기를 했어도 이 상황이 설득력이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그런 아내를 버릴 수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없어서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은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을 선택하는 김주혁의 연기는

공감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하고 싶을 정도로 자연스러웠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는

내내 소설과 달리 이야기에 힘이 없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결국 소설을 영화화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힘을 잃지 않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살아

숨쉬던 이야기가 영화로 옮겨오면서 약화되거나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내심 한편으로는 소설『아내가

결혼했다』에서의 기존 가치관에 대한 새로운 전복의 충격이 영화를 통해 어느정도 표현되기를 바랬었

는데 그 부분이 많이 약화가 된 것 같아 아쉽다.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일처다부'의 상황은 아니더라도

예전과는 다른 형태의 가족들을 흔히 찾아볼 수 있으며 결혼과 사랑에 있어서도 가치관과 현실의 차이는

나날이 커져만 간다.  '아내가 결혼했다'를 통해 그러한 간극과 괴리감을 드러내고 그 속에서 해결점을

향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모습을 기대했다면 너무 큰 기대였을까?  그런 기대를 하기에는 영화는 상업성에

너무 큰 빚을 지고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