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어요

<은교> 인간이 느끼는 괴리감에 관한 영화

묭롶 2012. 5. 1. 20:00

  이 영화를 보고 한 없이 슬프고 마음이 아파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적요의 눈에 비친 은교의 젊음이 너무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차마 그 아름다움에 다가가지 못하는 이적요의 마음이 가슴 절절하게 다가왔다.  이적요가 태양쪽으로 더 가까이 날다가 촛농으로 이어부친 날개가 떨어져서 바다에 빠져죽은 이카루스처럼 느껴져서 더 가슴 아팠는지도 모른다.  시인인 이적요의 정적(靜寂)인 세계는 은교로 인해 흔들리게 된다.  은교의 젊음이 발하는 빛은 오랜 가구처럼 하나의 공간에 붙박힌 채 살아온 이적요의 삶을 비추고, 젊음은 보글보글 솟아오르는 공기방울처럼 뿌리박힌 그의 삶을 현재의 자리에서 띄워올린다. 

 

 극중 이적요는 은교에게 시와 원관념간의 관계는 이승과 저승만큼이나 멀리 떨어져있다고 말한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 에서 극중 인물인 미자와 그녀가 꿈꾸는 시의 세계는 삶과 죽음의 거리만큼이나 가까우면서도 멀었던 것처럼, 은교는 이적요에게는 하나의 심상(뮤즈)로 다가온다.  그에게 '은교'는 자신의 시 '동백꽃'에 등장하는 누이처럼 가슴에 박혀 끊임없이 이를 의식하게 한다.

  흔히 '시'는 우리 주변의 사물들을 낯설게 함으로써 읽는 독자로 하여금 그 대상의 원관념에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문학 장르이다.  시가 갖는 언어의 특징이 함축적, 은유적이라면 이에 비해 소설의 화법은 직설화법이다.  또한 시가 사실의 문학이라면 소설은 허구의 문학이다.  바로 이 점이 시와 소설을 가장 크게 구별짓는다.  극중에서 이적요가 읽는 책은 언제나 '시집'이다.  영화의 첫장면에서 그가 노란 봉투의 입구를 가위로 잘라 꺼내어든 책도 '시집'이요.  은교가 청소를 하다가 그에게 온 우편물을 쓰러뜨려 그것들이 한데 섞였을때도, 이적요는 은교가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우편물들을 시집과 소설로 구분지어 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의 가장 진솔한 내면을 '시'가 아닌 '소설'<은교>로 써낸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게 '시'는 알퐁스 도테의 '별'처럼 일반인에게 아름다움이란 고정관념이었던 것은 아닐까?  강의를 진행하며 '별'은 실상 아무것도 아니며, 시에서 쓰인 심상은 독자에 의해 해석이 달리 될 수 있다고 말했으나, 그 자신마저도 자신의 정형화된 이미지(고매하고 아름다운 시인)를 탈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여진다.

 

  다른 시각에서 볼때, 이적요의 소설 <은교>는 '시'가 갖는 언어적 사실성을 벗어난 시인 자신의 상상(은교로 인해 다시 청년으로 인식된 자신)의 산물을 표현할 문학적인 도구가 소설이란 점을 극중인물이 자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그가 소설을 쓴다는 건(순수문학의 표상으로 여겨지는 이적요가) 그 자신이 은연중에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표출하고픈 욕망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장치이다. 

 

  어쩌면 제자 서지우가 극중 작품<심장>을 놓고 이적요 앞에서 천박한 대중소설이라고 말했을때,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부모가 그리 말하면 안되는 법이라고 반박한 점이나 소설<은교>가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을때 단상에 올라서 했던 말은 '시인'도 한 사람의 인간이며 나이가 그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지을 수 없다는 점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동물과 달리 인간의 인식체계는 자신이 처한 현재를 벗어난 범위까지 포함한다.  그러나 개개인에게 부여하는 사회적 고정관념은 범위를 벗어난 인식에 제재나 혐오를 드러내는데, 이러한 한계에 봉착한 인간이 느끼는 괴리감을 영화 <은교>는 극중인물 이적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적요의 역할을 극중인물과 동년배의 배우가 아닌 박해일이 해야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극중 인물인 이적요는 자신의 시인으로서의 이미지와 실제 자신의 감정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는 인물이자, 극중 자신의 시 '동백꽃'에서 누이가 열일곱의 아름다움으로 고정화된 것과 대비하여 늙어버린 자신의 육체와 정신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는 인물이다.  극중 박해일의 문어체적 말투에 대해 연기력의 어색함을 논하는 의견들이 다소 있지만, 내가 보기엔 그 말투가 극중인물을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신이 자신의 작품들과 동일한 심상으로 대중들에게 굳어져버린 극중 인물은 그 자체로 '시'이자 시인이기에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그는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는 법을 잃어버린 인물이다. 

제자 서지우가 끓여준 매생이국이 짜도 짜다는 말 대신 헛기침과 함께 수저를 놓아버리는 그가 은교가 가르쳐준 '헐'이라는 말을 입에서 내뱉는 순간, 그에게서 보여지는 자유로운 해방의 기운은 그의 육신 속에 잠자고 있던 청춘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이 영화가 과감한 노출장면에도 불구하고 성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는 그러한 노출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필연적인 괴리감을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되며, 영화 <은교>가 박해일의 극중 문어체적 대사 만큼이나 문학적인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외로워서 섹스를 한다는 은교의 대사만큼이나 사람과 늙음, 그리고 내게 주어진 한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 <은교>의 방향이 오래 지속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