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생신
12월 초 친구 아버님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등산 중 쓰러지셔서 전대에서 긴급수술을 받게되어
친구들과 함께 나는 전대병원에 병문안을 가게 되었다. 회사 여직원모임에서 저녁을 먹고 친구들과
병원 앞에서 모여 병문안을 가게 되어 시간은 이미 밤 8시가 넘어 있었다. 그나마 걱정하고 놀랐던 마음보다는
수술경과가 좋다고 하고 아버님의 안색도 밝으셔서 너무나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병원문을 나섰다.
집으로 가는 길, 가까운 거리임에도 병원에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없어 길 건너편에서 택시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데, 무심결에 횡단보도 길가 바로 오른편에 자리 한 생선 노점상이 보였다.
진눈깨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추운 날씨에 해변용 대형 파라솔 아래 앉아 있는 노점상 아주머니 아니
할머니에 가까운 그 분은 이미 무릎 아래는 흠뻑 젖은 채, 탁탁탁 소리를 내며 연신 갈고리로
소라 속 살을 빼서는 다라이에 담고 있었다. 보행신호가 켜지기 전의 그 짧은 시간동안
그 노점상인의 젖은 발이 신발 안에서 온통 젖어 얼어 붙었을 그 발가락들이 그리고
해마다 겨울이면 볼에 얼음이 얼고 봄이면 멍울져서 실핏줄이 터졌을 그 빨간 뺨이 가슴에 아프게 맺혔다.
이미 9시도 한참 넘긴 시간에 검은 매직 글씨로 부안이라고 씌여진 스티로폼 박스에 비늘이 다 벗겨져
볼품이 없는 갈치 두어 마리와 온통 뻘 속에 잠긴채 빨간 고무 다라이에 담겨져 있는
바지락 살들, 진눈깨비를 맞아 축 늘어진 낙지 등을 펼쳐놓고는 연신 '탁탁탁' 갈고리로
소라 껍질을 깨는 그 노점상인은 언제나 들어가려는지 대중이 없어 보였다.
횡단보도를 건너 택시를 타고서도 내내 맘이 좋지 않았던 난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벌써 22년째 새벽 두시면 일어나 우유배달을 하는 울 얼마의 그 얼어터진 볼이 떠올라서
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새벽 배달을 위해 잠자리에 드셨을 엄마를 깨울 수는 없는 일,
마음을 접고 그 다음날 동생들에게 전화를 했다.
나: "이번 엄마 생신때는 밖에서 먹지 말고 우리 집에서 먹자!"
여동생1: "언니가 할라고?"
여동생2: "메뉴는?"
나: "엄마~~~~ 생신 때 뭐 잡숫고 싶은거 없으셔?"
엄마: "잉? 그래? 뭣이가 나을끄나? 소고기가 구워먹을끄나?"
나: "응~~~접수!!! 일단 엄마는 그날 몸만 오셔 내가 준비할랑게"
그렇게 나는 거사를 도모했다. 소고기가 드시고 싶다는 엄마를 위해 동거인과 나는 엄청난
비교검색을 통해 일주일에 두 마리만 도축해서 한우암소를 인터넷으로 예약판매한다는
곳에 주문하기 위해 주문버튼이 열리는 화요일 자정에 맞춰 12시2분에 주문을 했고,
엄마 생신상을 차릴 토요일 하루 전인 금요일에 낑낑대며 장을 봐선 손에 바리바리 들고 왔다.
잡채와 소고기, 굴전, 동그랑땡, 미역국과 각종 야채등을 준비해서 상에 차려놓고
엄마가 오후 5시에 도착하셔서 떡 케잌을 차려놓고 우리 식구들을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매번 엄마가 차려주는 음식을 당연하게 먹곤 했는데, 막상 해보니 10여명의 식구들을 먹이기 위해
상을 차린다는 게 보통일은 아니었다. 그런대도 나와 동생들은 그냥 너무나 쉽게 "엄마 이것 먹고 싶어,
엄마 저것 먹고 싶어" 이렇게 말해 왔으니, 참 염치가 없었단 생각이 들었다.
변변치 않은 상차림에도 기뻐하시고 맛있게 드시고는 "오늘은 딸 집에서 자고 갈란다." 라며 그날
하루는 거실 쇼파에서 편하게 앉아 계시던 엄마의 모습이 참으로 오지게도 좋았다.
준비하느라 고생했다며 그 많은 설거지를 첫째 여동생이 다 하고 거실을 정리하고는 서재방에
엄마의 이부자리를 깔아드리자 엄마는 " 여그는 외풍이 없응께 쓰겄다잉." 하시며 좋아하셨다.
친정집은 아직도 방에 누우면 머리로 외풍이 얼마나 세게 들어오는지 그냥 자면 골이 빠개지게 아파져서
머리맡에 옷을 두툼하게 막아놓고 주무시는 엄마가 그날 하루 외풍 없는 곳에서 주무신다는 것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큰 행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그렇게 내게 당연한 일이어서 엄마에게 어떤 것들이 기쁨이 되는지를 의식하지 못했던
나의 이기심을 또 다시 탓하며 난 앞으로는 엄마 생신상을 계속 차려드려야 겠다고 맘을 먹었다.
물론 엄마가 해준 음식에 비하면 맛은 없지만......,ㅎ